무지개떡건축?
무지개떡 건축은 새로운 개념의 건축은 아니다.
건축가 황두진 님이 기존에 존재하는 건축의 한 카테고리에 대해 정리하고 몇 가지 규칙을 정의한 도시건축의 컨셉중 하나다.
하나의 건물이 주거, 상업, 공업 같은 한 가지 카테고리의 역할만 하는 게 아니라 서로 다른 역할을 하는 다양한 기능이 층층 쌓여있다 해서 무지개떡 건축이라고 이름 붙였다.
무지개떡에 관한 컨셉은 저자가 직접 집필한 무지개떡 건축, 가장 도시적인 삶, 그리고 다른 건축가들이 황두진 건축가에 대해 쓴 다른 몇 가지 책에도 소개돼 있다. 건축가는 직접 서촌에 자신의 아뜰리에를 무지개떡 형태로 지어 살며 도시의 변화와 삶을 체험하고 있다고 한다.
[책 무지개떡 건축은 무지개떡 건축에 대한 개요를 가장 도시적인 삶에는 <세계일보>에 무지개떡 건축의 사례에 대해 쓴 기사를 책으로 다시 엮은 것이다.]
서울은 효율적인 도시의 형태인가?
서울은 휴전 이후 공업화를 거치며 급성장했지만 그 이전부터 몇 백 년간이나 존재해 왔던 도시다. 애지 간한 세계의 수도들에게도 뒤지지 않을 만큼 나이 먹은 도시인 셈이다.
때문에 구도심(흔히 말하는 사대문 안쪽)은 급격한 변화를 겪었지만 오랜 세월 축적된 길이라던가 건축유산이 아직도 남아 지금의 도시형태에 영향을 주고 있다.
급격한 도시화를 거치며 빠르게 늘어나는 서울 인구 때문에 이들이 주거할 주거지와 이들이 활용할 상업지 그리고 국가 수익의 기반이 되는 공업지를 구축하는 과정에서 도시에 대한 깊은 논의를 할 기회가 없었고 고밀도 된 지금에서야 더 많은 비용과 희생을 들여 여러모로 놓인 부작용들을 해결해야 하는 시점에 이르렀다.
무지개떡 건축은 주상복합이다.
무지개떡 건축은 지금의 베드타운이나 산업지구처럼 도시를 한 가지 카테고리로 구획화하지 말자고 한다. 복합적인 사용성을 가지는 저층의 고밀도 건축을 하자는 말이다.
더 구체적으로 주장하는 것은 건축면적 100 평남 짓의 5층 정도인 주상복합으로 도시를 채우자는 것이다.
간략히 예를 들면 고층부인 4~5층은 사람이 주거하고 중층부인 2~3층은 일할 수 있는 사무실이 있고 1층은 가게가 들어서는 형태의 건물을 말하는데 저서 '무지개떡 건축'에는 이 컨셉의 효율성이 극대화되기 위한 대지의 규모나 주차장 입구 등의 컨셉도 자세히 소개되어 있다.
무지개떡 건축은 한 개의 건축물로 보면 그냥 지금도 존재하는 상가주택이다. 이런 상가주택이 수십 채 수백 채 모여있을 때 비로소 무지개떡 건축이 되는 것이다. 유럽의 구도심에 가면 오래된 건축물의 보호와 보수 그리고 관광지로서의 역할 덕분에 건물들이 무지개떡 형태의 역할을 해내고 있다. 어쩌면 도보생활권을 오랫동안 유지한 도시의 가장 원초적인 형태일지도 모르겠다.
욜로, 워라밸과 상가주택이 무슨 상관?
서울은 100년 전에 비해 엄청난 크기로 확장되어 있다. 경기도의 베드타운들은 서울 타이틀을 달고 있진 않지만 서울의 일자리에 의해 유지되고 있다. 사실 서울의 경제, 문화 권역이다.
80년대~ 90년대에 지어진 베드타운들은 단순히 주거 역할만 했기 때문에 교통량이 많아짐에 따라 갈수록 출퇴근 시간은 늘어났고 안 그래도 좁은 땅덩어리에 도로가 점유하는 땅이 늘어나 비효율적임을 증명하고 있다.
이런 상황을 피하고자 마곡지구, 판교 상암 같은 지역개발을 통해 각각의 목적에 맞는 비즈니스 타운으로 서울을 5개~10개(나누기에 따라 달라진다)의 권역으로 구분하고자 했다. 교통의 집중화를 막고 새로 생긴 주거타운들이 자립 가능하게 하는 방식이지만 이미 지어진 베드타운들의 문제를 해결하는 데는 적극적이지 못하며 단지 위주의 대규모 아파트가 선호받다 보니 고층의 고립된 아파트 주거문화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직주분리에서 직주근접으로 도시 개발의 방향을 바꾸었지만 저층 지구의 고층 아파트로의 재개발이라는 개발 선로에서는 조금도 벗어나지 못했다. 아파트 단지는 끝에서 끝까지 도보 15~20분씩 걸리는 곳도 많다.
사람들은 대규모 아파트 단지에서 대규모 오피스로 긴 출근과 퇴근을 반복하고 주말이면 거대 쇼핑몰과 마트로 다시 긴 이동을 한다. 직주근접과 편의를 누리는 것은 소수의 지역뿐이고 직주근접 지라는 딱지가 붙어 가격이 천정부지로 상승한다. 한번 생긴 지역 간 격차는 고착화되고 도시에 음영이 생기게 되어 부작용도 생긴다.
길고 긴 출퇴근 시간과 이동시 길에 쏟아지는 휘발유값 노동력을 아끼는 방식이 바로 도시건축으로서의 무지개떡 건축이다. 주장되는 건축형태는 평면으로 나뉜 주거와 상업시설, 생산시설을 위로 쌓는 컨셉이다.
공동주택이 가지는 에너지 효율성을 가지는 동시에 출퇴근 이동시간을 해결할 수 있어서 친환경적이고 도보 이동으로 사람들의 활동을 유도해 자연스럽게 골목엔 활기가 생긴다. 주거 역할을 하지 못하는 상업 지구의 도심공동화와 그에 따른 치안과 서비스의 부재는 20년 전부터 교과서에 실린 도시화의 고질적인 문제다.
지금과 같이 워라밸이 중요한 세상에서 길에 뿌려지는 1시간~2시간의 출퇴근 시간은 1년에 350~700시간이라는 어마어마한 시간인 데다 이 시간 동안 개인이 활용할 수 있는 다양한 가능성의 총합은 길 위에 버려지는 중요한 자원이다.
황두진 건축가 본인도 <세계일보>에 연재 당시 굉장히 바쁘고 힘들었다고 한다. 하지만 지금의 목련원에 거주함으로 인해 생겨난 1~2시간으로 그 지난한 시간들을 위로받았다고 했다. [목련원이 위치한 서촌도 젠트리피케이션이 진행되며 도심 공동화 현상을 겪고 있다고 한다. 주민들이 빠져나가면 세탁소 같은 주거에 필요한 시설이 사라지게 되고 주거목적으로 살기 안 좋은 곳으로 인식되면 또다시 공동화 현상이 가속된다]
도시의 용적률 게임.
용적률. 말 그대로 얼마나 많은 집을 위로 쌓는가 하는 개념이다. 많이 쌓으면 쌓을수록 땅의 가치는 높아진다.
임대할 수 있는 면적이 늘어나기 때문이다. 무한히 쌓을 수 있는 건 아니다. 땅에는 종으로 구분되는 개발 허용한도가 있다.
때문에 도심에 집을 짓는 건축주들과 건축가들은 이 용적률 안에서 어떤 퍼즐을 맞추어 땅의 사용성을 극대화할 것인지 게임을 한다.
이상하게도 서울에 고층건물과 아파트가 늘긴 했지만 주택 혹은 사무실 용적률은 평균 200%을 넘지 않는다. 서울은 생각보다 저밀도의 건축을 하고 있는 것이다.
서울에 비해 유럽의 고도시들은 평균 용적률이 250 제곱이 넘는 곳도 많다. 이렇게 직접도가 높으면 1인당 점유면적이 늘어나서 주거환경 사무환경이 쾌적해진다. 물론 용적률이 높아지면 유동인구나 해결해야 할 제반 서비스 시설도 더 많이 필요하기 때문에 도로망도 확충해야 하고 도시시설도 더 많아져야 한다. 이런 구조상의 문제를 무지개떡 같은 도시건축 개념으로 해결하고자 하는 게 무지개떡 건축의 골자로 보인다.
[한국의 건축법에는 합벽 건축을 제한한다거나 일조권의 보장을 중요시해서 건물과 건물 사이에 사용성이 떨어지는 빈 공간이 많아지는 약점이 있다. 때문에 200%의 용적률이지만 250%나 300%의 유럽 고도시에 비해 실내가 상대적으로 넓다거나 쾌적하지는 않다.]
한 구역에서 상행위 주거 그리고 비즈니스까지 해결이 된다면 출퇴근에 사용되는 사회적 비용은 급감하고 도시는 더 작은 단위로 쪼개질 수 있다.
골목상권을 굳이 살리지 않아도 적당한 인구가 적당한 지역에 골고루 퍼져있어서 곳곳의 골목들은 효율적으로 흘러가게 된다. 과도한 임대료를 지불하지 않아도 동네에서 적절한 위치에 맛집을 운영할 수 있고 굳이 인기 있는 상권으로 몰리지 않아도 골고루 좋은 상권을 가질 수 있다.
실제로 인터넷과 스마트폰의 발달로 역세권 대로변의 공실이 늘고 이면도로나 골목상권의 발전이 뚜렷하게 늘고 있어서 골목상권의 발달은 트렌드에 가깝다. 다만 책에서 몇 번 지적하듯이 이런 식의 골목상권 발달이 주거기능을 밖으로 내몰아 다시 골목이 공동화되는 현상도 무시할 수는 없다. 주거의 쾌적함이 떨어지게 되고 지가가 상승해서 주거의 효율성이 떨어지는 문제는 건축가들이 해결해야 할 문제고 설계로 충분히 해결 가능하다고 본다.
결국 도시화로 확장되고 비인간적으로 변한 건축의 규모가 다시 인간이 포용할 수 있는 크기로 작아지고 작아진 건축물들은 다양한 생활패턴의 변화와 새로운 활기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는 게 골자다.
정원은 옥상으로
도심 녹지의 중요성은 현대 도시에서는 너무 당연한 상수다. 의외로 서울은 산으로 둘러싸여 있어 녹지비율이 낮지 않다. 다만 물과 기름처럼 도시와 녹지의 접근성이 부족하다. 공원이 크고 멀어서 삶에 가까이 있는 녹지가 부족하다는 것이다.
물론 무지개떡 같이 용적률을 가득 채운 상가주택이 녹지 확보에 도움이 될 리 없다. 다만 무지개떡 건축에서는 옥상정원을 만들어 이를 해결하고자 했다.
나는 현재 3층짜리 건물에 살고 있다. 옥상을 우리 세대만 사용할 수 있는 구조라 옥상에 차양막과 의자 화분 등을 많이 두고 있는데 옥상에 올라 있으면 주변 집들의 옥상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모두들 고기를 굽거나 빨래를 말리고 이런저런 식물들 혹은 나무까지 가꾼다. 30평 규모의 땅에 지은 옥상도 활용도가 굉장히 높은데 100평 규모의 옥상이라면 간단한 커뮤니티 시설이나 휴게시설이 저마다 생길 수 있다. 날씨 좋은 날 옥상에 의자를 펴고 기대 있으면 주변 이웃들이 저마다 옥상에 올라 날씨를 즐기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다만 옥상은 방치되기 가장 좋은 공간이기도 하다. 사용할 이유가 없어서 그렇다.
옥상의 폐쇄적이고 단절된 구조 때문인데 옥상은 개별층이 아니라 옥상 마당으로서 존재해야 이 문제를 해결 가능하다. 현대의 수많은 건축가들은 이런 문제점을 해결하고자 주방 혹은 세탁실 같은 공용시설이나 주로 이용하는 시설을 옥탑에 배치한다. 동선상 옥탑을 강제적으로 활용해야 한다면 옥상도 버려지지 않고 공간으로서 사용이 가능해진다.
다만 옥상의 녹지는 유지보수면에서 오히려 에너지 낭비라는 연구결과도 있다.
물론 녹지가 주는 기능에만 몰두한 연구결과라서 녹지가 주는 감수성과 수치화될 수 없는 혜택을 이야기한다면 더 좋은 점수를 받을 수 있지 않을까?
혹여 수많은 옥상 녹지들이 구름다리로 서로 연결되는 풍경도 새롭고 멋들어질 것 같다.
문제점?.
물론 무지개떡 건축을 한국에 적용하기엔 산업의 특성 때문에 무리가 있다. 무지개떡 건축의 사이즈는 건축면적이 200평 남짓의 규모일 때 가장 효율적인 다공성과 주차장을 가질 수 있다고 했다. 다만 거대한 장비나 각 비즈니스 타운만의 협업공간 자재보관이나 연구 등 시설의 인프라가 한 곳에 모여있어야 하는 제조업 강국인 우리나라의 특성상 무지개떡 건축의 작은 규모가 효율적일까 하는 의구심은 든다.
삼성현대 엘지 같은 거대 시설이 필요한 산업이 주 종목인 우리나라 산업 특성 때문이다.
소규모 서비스업이나 스타트업 같은 100명 안팎 규모의 인적자원이 중요한 비즈니스 모델의 경우에 최적화된 아이디어라 유럽처럼 이미 3차 산업과 4차 산업의 비율이 높은 곳에서 효율이 높으리라 생각한다. 서울 권역은 환경 규제상 오염을 일으키는 공장은 들어설 수 없지만 마곡 타운처럼 첨단 제조시설이 입주하는 대규모 생산시설에 근무하는 인원들이 거주할 근접한 대규모의 베드타운이 필요하다.
다만 한국도 3차~4차 산업 위주로 넘어가기 전에 무지개떡 건축의 도입과 실험을 했으면 한다. 이미 아파트 타운이 되어 버리고 나면 이것을 철거하고 다시 고밀도 저층으로 변경하기엔 천문학적 금액과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 서울 70% 이상이 아파트에 거주하고 있어서 이미 남은 땅이 많지도 않다. 적극적으로 도입을 고려해봄직한 시기라고 생각한다.
설계가 해결해야 할 문제도 있다.
현존하는 상가주택의 경우 대게 1층 상가의 업종이 제한된다. 음식점의 냄새 때문이다. 고깃집의 경우는 이에 대한 합의가 없을 경우 위에 거주하는 주민들에게 소송까지 당할 만큼 주거환경에 악영향을 끼친다. 커피집의 콩 볶는 냄새도 제연시설 등이 완벽하지 않을 땐 민원의 문제가 될 수도 있다. 주거의 질이 떨어지지 않으려면 이에 대한 규제나 건축의 해결이 필요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