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뿌리에 수만 원? 귀하디귀한 뿌리 약초

사라질 위기에 선 귀한 뿌리, 고본의 이야기

by 데일리한상

여름 숲을 걷다 보면 이끼와 부엽토 사이로 붉은빛 줄기가 슬며시 얼굴을 내밀곤 한다. 그 자리에 손을 대어 조심스레 땅을 파내면, 은은한 향을 품은 단단한 뿌리가 모습을 드러낸다.


바로 예로부터 ‘두통 잡는 뿌리’라 불리던 약초, 고본이다. 뿌리를 살짝 상처 내면 흘러나오는 하얀 진액과 깊은 향은 이 식물이 품은 강한 생명력을 보여주는 듯하다.


고본은 오래전부터 귀한 약재로 여겨졌다. 인공 재배가 쉽지 않아 오직 깊은 산의 그늘진 곳에서만 자생했기에, 발견하는 순간의 설렘은 곧 귀한 보물을 만난 듯한 기쁨이었다.

gobon5.jpg 고본 뿌리 / 푸드레시피

하지만 오늘날 그 가치는 오히려 고본을 위협하는 칼날이 되고 있다. 수요가 늘어나며 무분별하게 뿌리째 채취되는 탓에, 이 식물이 머물던 자리는 점점 사라져 가고 있다.


민간에서는 감기나 코막힘, 특히 편두통이 찾아올 때 고본을 달여 마셨다고 한다. 나 역시 어릴 적 시골집에 갔다가 고본 향을 처음 맡은 기억이 있다.


머리가 지끈할 때 작은 종지에 담긴 약차를 한 모금 들이켰는데, 특유의 쌉싸름한 맛 뒤로 맑게 뚫리는 듯한 기운이 퍼지던 순간이 아직도 생생하다. 현대 과학은 이 전통의 지혜를 조금씩 확인해주고 있다.

gobon3.jpg 고본 / 국립생물자원관

고본의 뿌리에는 혈액순환을 돕고 항염 작용을 하는 성분들이 들어 있어, 예로부터 내려온 용법이 단순한 속설만은 아님을 알려준다.


하지만 귀한 만큼 주의도 필요하다. 공복에 많이 섭취하면 속을 상하게 할 수 있고, 무엇보다 외형이 비슷한 독초와 혼동하기 쉬워 전문가가 아니면 함부로 채취해서는 안 된다.


실제로 미나리과에는 독성이 강한 식물들이 많아, 잘못 손댔다가는 치명적인 위험에 빠질 수도 있다.

gobon2.jpg 고본 / 국립생물자원관

더 큰 문제는 남획이다. 고본은 뿌리를 캐내는 순간 식물 전체가 고사하고, 같은 자리에 다시 자리잡기까지는 오랜 세월이 필요하다.


연구에 따르면 특정 지역에서 무분별하게 채취가 반복되면 불과 3년 안에 군락이 사라질 수 있다고 한다. 그래서 지금은 일부 지자체와 환경 단체들이 자생지를 보호하고, 복원 사업에 나서고 있다.


시장에서 건조된 고본을 비싼 값에 만날 수도 있지만, 그 한 뿌리가 지닌 무게에는 숲의 상실이 담겨 있을지 모른다. 고본은 단순히 사람의 약초일 뿐 아니라 숲의 습도를 유지하고 생태계를 지탱하는 중요한 존재이기도 하다.

gobon4.jpg 접시에 담긴 약재 고본 / 게티이미지뱅크

그렇기에 고본을 만났을 때 가장 바람직한 태도는 뿌리를 캐는 것이 아니라, 그 자리에 서서 향과 모습을 눈과 마음에 담는 일일지 모른다.


꼭 필요한 경우라면, 정식으로 허가받은 농가나 약초상을 통해 윤리적인 방식으로 얻어진 고본을 찾는 것이 바른 길일 것이다. 귀한 뿌리의 진짜 가치는 우리 몸을 잠시 편안하게 하는 데 있지 않다.


자연 그대로의 모습으로 숲속에서 살아가도록 지켜내고, 그 풍경을 미래에도 이어주는 데 있다. 올해 여름, 숲길을 걷다 고본을 만난다면 잠시 멈춰 서서 그 향을 깊이 들이켜 보자. 보호라는 선택이야말로, 우리가 자연에게 건넬 수 있는 가장 따뜻한 배려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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