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질 위기에 선 귀한 뿌리, 고본의 이야기
여름 숲을 걷다 보면 이끼와 부엽토 사이로 붉은빛 줄기가 슬며시 얼굴을 내밀곤 한다. 그 자리에 손을 대어 조심스레 땅을 파내면, 은은한 향을 품은 단단한 뿌리가 모습을 드러낸다.
바로 예로부터 ‘두통 잡는 뿌리’라 불리던 약초, 고본이다. 뿌리를 살짝 상처 내면 흘러나오는 하얀 진액과 깊은 향은 이 식물이 품은 강한 생명력을 보여주는 듯하다.
고본은 오래전부터 귀한 약재로 여겨졌다. 인공 재배가 쉽지 않아 오직 깊은 산의 그늘진 곳에서만 자생했기에, 발견하는 순간의 설렘은 곧 귀한 보물을 만난 듯한 기쁨이었다.
하지만 오늘날 그 가치는 오히려 고본을 위협하는 칼날이 되고 있다. 수요가 늘어나며 무분별하게 뿌리째 채취되는 탓에, 이 식물이 머물던 자리는 점점 사라져 가고 있다.
민간에서는 감기나 코막힘, 특히 편두통이 찾아올 때 고본을 달여 마셨다고 한다. 나 역시 어릴 적 시골집에 갔다가 고본 향을 처음 맡은 기억이 있다.
머리가 지끈할 때 작은 종지에 담긴 약차를 한 모금 들이켰는데, 특유의 쌉싸름한 맛 뒤로 맑게 뚫리는 듯한 기운이 퍼지던 순간이 아직도 생생하다. 현대 과학은 이 전통의 지혜를 조금씩 확인해주고 있다.
고본의 뿌리에는 혈액순환을 돕고 항염 작용을 하는 성분들이 들어 있어, 예로부터 내려온 용법이 단순한 속설만은 아님을 알려준다.
하지만 귀한 만큼 주의도 필요하다. 공복에 많이 섭취하면 속을 상하게 할 수 있고, 무엇보다 외형이 비슷한 독초와 혼동하기 쉬워 전문가가 아니면 함부로 채취해서는 안 된다.
실제로 미나리과에는 독성이 강한 식물들이 많아, 잘못 손댔다가는 치명적인 위험에 빠질 수도 있다.
더 큰 문제는 남획이다. 고본은 뿌리를 캐내는 순간 식물 전체가 고사하고, 같은 자리에 다시 자리잡기까지는 오랜 세월이 필요하다.
연구에 따르면 특정 지역에서 무분별하게 채취가 반복되면 불과 3년 안에 군락이 사라질 수 있다고 한다. 그래서 지금은 일부 지자체와 환경 단체들이 자생지를 보호하고, 복원 사업에 나서고 있다.
시장에서 건조된 고본을 비싼 값에 만날 수도 있지만, 그 한 뿌리가 지닌 무게에는 숲의 상실이 담겨 있을지 모른다. 고본은 단순히 사람의 약초일 뿐 아니라 숲의 습도를 유지하고 생태계를 지탱하는 중요한 존재이기도 하다.
그렇기에 고본을 만났을 때 가장 바람직한 태도는 뿌리를 캐는 것이 아니라, 그 자리에 서서 향과 모습을 눈과 마음에 담는 일일지 모른다.
꼭 필요한 경우라면, 정식으로 허가받은 농가나 약초상을 통해 윤리적인 방식으로 얻어진 고본을 찾는 것이 바른 길일 것이다. 귀한 뿌리의 진짜 가치는 우리 몸을 잠시 편안하게 하는 데 있지 않다.
자연 그대로의 모습으로 숲속에서 살아가도록 지켜내고, 그 풍경을 미래에도 이어주는 데 있다. 올해 여름, 숲길을 걷다 고본을 만난다면 잠시 멈춰 서서 그 향을 깊이 들이켜 보자. 보호라는 선택이야말로, 우리가 자연에게 건넬 수 있는 가장 따뜻한 배려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