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박덩굴 순의 독성과 봄나물의 맛 사이에서
숲길을 걷다 보면, 어느새 발목을 휘감으며 나무를 타고 오르는 덩굴을 만날 때가 있다. 뱀처럼 유연하게 꿈틀대며 나아가는 그 모습 때문에 예부터 ‘남사등(南蛇藤)’이라 불려온 식물, 바로 노박덩굴이다.
길을 막는다는 뜻에서 이름이 붙었다고도 하지만, 알고 보면 봄철에만 허락되는 아주 귀한 별미이기도 하다.
봄이 오면 이 덩굴의 어린 순은 부드럽고 쌉싸래한 향을 품어낸다. 쓴맛이 거의 없어 홑잎나물을 닮았는데, 그래서인지 된장에 무쳐내면 그 담백한 맛이 밥 한 그릇을 순식간에 비우게 만든다.
하지만 이 순을 그냥 먹을 수는 없다. 노박덩굴에는 독성이 숨어 있기 때문이다. 어린 시절 시골집 마당에서 할머니가 봄나물을 다듬던 기억이 떠오른다. 늘 “이건 꼭 데쳐야 한다”던 목소리가 아직도 귓가에 남아 있다.
방법은 의외로 간단하다. 갓 꺾어온 어린 순을 소금을 약간 넣은 끓는 물에 살짝 데치고, 숨이 죽자마자 찬물에 담가 오래 우려내는 것이다. 그렇게 몇 시간을 보내고 나면 비로소 식탁에 오를 수 있는 순이 된다.
물기를 꼭 짜서 된장과 마늘, 참기름만 더해 무치면 숲에서 갓 건져온 듯한 싱그러움이 그대로 전해진다.
노박덩굴은 나물로만 쓰이는 것이 아니다. 『동의보감』에는 이 식물이 어혈을 풀고 통증을 가라앉히는 약재로 기록되어 있다. 가을이면 노랗게 벌어진 열매껍질 속에서 붉은 씨앗이 고개를 내미는데, 그 모습은 마치 보석 같다.
그러나 아름다움에 속아서는 안 된다. 열매와 뿌리는 어린 순보다 훨씬 강한 독성을 지니고 있어 전문가의 손길 없이 함부로 차로 끓이거나 먹는 일은 위험하다.
이렇듯 노박덩굴은 우리에게 자연의 두 얼굴을 보여준다. 한쪽은 향긋한 나물의 맛으로 다가오고, 다른 한쪽은 약성과 독을 동시에 품고 있다. 그래서 더더욱 조심스럽게 다가가야 하는 식물이다.
우리는 흔히 길가에 스쳐 지나가는 풀 한 포기에도 무심하지만, 사실 그 안에는 오랜 세월을 거쳐 내려온 지혜와 질서가 숨어 있다. 노박덩굴을 바라보고 있으면, 자연과 더불어 산다는 건 결국 이런 균형을 배우는 일임을 새삼 느끼게 된다.
다가올 봄, 숲길에서 노박덩굴을 만난다면 그저 귀찮은 덩굴로만 여기지 말고, 언젠가 식탁 위에 올릴 수 있는 작은 선물로 기억해 두자. 오늘은 그 이야기만으로도 마음이 한결 따뜻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