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숙한 그 달콤한 향, 곧 사라질지도 모릅니다

기후변화가 빼앗아갈지도 모르는 바닐라의 향기

by 데일리한상

아이스크림 한 스푼을 떠먹을 때마다, 혹은 갓 구운 쿠키에서 피어오르는 따뜻한 향을 맡을 때마다 우리는 어느새 미소 짓는다. 부드럽고 은은한 달콤함, 그 중심에는 언제나 바닐라가 있다.


하지만 이제 이 익숙한 향이, 언젠가 우리의 기억 속에서만 남게 될지도 모른다는 소식이 들려온다. 과학자들은 기후변화가 바닐라의 생태계를 송두리째 흔들고 있다고 경고한다.


바닐라는 난초과 식물이다. 섬세하고 까다로운 식물이라 오직 특정 종의 벌이 꽃을 수분시켜야만 열매를 맺는다. 그런데 지구의 온도가 오르고 강수 패턴이 바뀌면서, 그 벌들이 더 이상 바닐라 나무 곁에서 살 수 없게 될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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벨기에 루벤대학교와 코스타리카의 랑케스터식물원연구센터가 발표한 연구에 따르면, 2050년이면 바닐라와 수분 곤충이 더 이상 같은 땅에서 공존하지 못할지도 모른다고 한다.


온화한 기후에서는 곤충의 서식지가 급격히 줄고, 기후 대응이 늦어지는 시나리오에서는 그 감소 폭이 훨씬 더 심각해진다. 결국 바닐라가 살아남더라도, 그 곁에는 꽃가루를 옮겨줄 친구가 없게 되는 것이다.


생각해보면, 바닐라는 늘 사람의 손끝에서 다시 피어나야 했다. 바닐라의 고향은 멕시코지만, 지금 우리가 먹는 바닐라의 대부분은 마다가스카르에서 온다.

vanilla2.jpg 바닐라 스틱 / 푸드레시피

그곳에서는 자연 수분이 거의 불가능하기 때문에, 농부들이 하나하나 손으로 꽃을 수정시킨다. 하루 중 몇 시간만 피는 꽃을 붙잡고, 작은 막대로 암술과 수술을 조심스레 맞닿게 하는 일.


그 섬세한 노동 덕분에 우리는 매년 바닐라의 향을 즐길 수 있다. 그런데 이 정성스러운 수작업이 점점 더 위태로워지고 있다. 잦은 사이클론, 가뭄, 이상기후가 농지를 무너뜨리고, 그나마 있던 곤충들도 자취를 감추고 있다.

vanilla4.jpg 접시에 담긴 바닐라 아이스크림 / 푸드레시피

만약 바닐라가 사라진다면, 식품 산업은 인공 바닐린으로 급히 대체할 것이다. 하지만 천연 바닐라가 가진 향의 층위는 단순히 한두 가지 성분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다.


수백 가지의 아로마가 겹겹이 쌓여 만들어내는 그 부드럽고 깊은 향을 인공으로 재현하는 건 불가능에 가깝다.


아이스크림의 달콤함은 조금 밋밋해지고, 향수의 잔향은 어딘가 빈 듯할 것이다. 프리미엄 브랜드들이 강조하던 ‘자연의 향기’는 더 이상 그 이름에 걸맞지 않게 된다.

vanilla5.jpg 바닐라향이 나는 향수 / 푸드레시피

그 여파는 산업을 넘어 사람의 삶으로 번진다. 바닐라 재배로 생계를 이어온 마다가스카르의 농가들은 수입이 끊기고, 지역 경제는 휘청일 것이다.


향수나 세제, 디퓨저처럼 우리 일상 속에 은근히 스며들어 있던 익숙한 향도 점점 사라질 것이다. 어쩌면 우리는 하루의 끝, 바닐라 향 초를 켜놓고 마음을 가라앉히던 그 평화로운 순간을 더 이상 누리지 못할지도 모른다.

vanilla6.jpg 바닐라 스틱, 꽃, 잎 / 푸드레시피

바닐라의 위기는 단순히 하나의 향신료가 사라지는 이야기가 아니다. 그것은 기후변화가 우리의 감각과 기억, 그리고 삶의 리듬을 얼마나 쉽게 흔들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상징 같은 일이다.


우리가 무심히 즐기던 달콤함이 미래 세대에게는 책 속의 향기가 되어버릴지도 모른다는 사실. 그래서일까, 오늘따라 아이스크림 한 입이 유난히 아련하다. 달콤한 향이 사라지기 전에, 지구를 조금 더 아껴야겠다는 생각이 문득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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