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준도 극찬한 이 뿌리, 지금이 딱 제철입니다!

구수한 한 잔의 둥굴레차가 전해주는 계절의 향기

by 데일리한상

언젠가 저녁 식사 후, 따뜻한 둥굴레차 한 잔을 들고 앉았던 날이 있다. 그 구수하고 은근한 향이 마음을 부드럽게 감싸 안던 순간. 그때는 몰랐다. 우리가 늘 마시던 그 향이, 산속 깊은 곳에서 자라나는 한 뿌리 식물의 긴 생애 끝에 피어난 선물이라는 걸.


둥굴레, 한자 이름으로는 ‘황정(黃精)’이라 부른다. 이름부터 품격이 있다. ‘노란 정수’, 태양의 기운을 품었다는 뜻처럼, 예부터 신선이 즐겨 먹었다는 전설이 전해진다. 이 식물은 봄에는 여린 순으로, 가을에는 뿌리로 쓰인다. 즉, 싹부터 뿌리까지 버릴 게 없는 귀한 존재다.

dung-gul-le2.jpg 둥굴레 열매 / 게티이미지뱅크

봄날의 둥굴레는 순한 초록빛으로 산을 채운다. 땅을 밀어올리듯 돋아난 어린순은 아스파라거스처럼 통통한 모양새를 하고 있다. 끓는 물에 살짝 데쳐 쓴맛을 빼고 나면, 된장에 무쳐도 좋고, 고추장에 살짝 버무려도 그만이다.


씹을 때마다 퍼지는 은은한 단맛과 아삭한 식감이 입안에 봄을 불러온다. 그렇게 계절을 지나 가을이 오면, 둥굴레의 진짜 시간이 찾아온다. 땅속 뿌리에는 긴 여름 동안 모은 영양이 가득 차 있고, 바로 그 뿌리가 우리가 아는 둥굴레차의 재료, 황정이다.

dung-gul-le5.jpg 볶은 둥굴레 / 게티이미지뱅크

전통적으로 둥굴레차를 만드는 과정에는 정성이 많이 들어간다. 뿌리를 깨끗이 씻고, 찜통에 쪄서 단맛을 끌어올린 다음, 그늘에 말리고 다시 볶는다.


이렇게 손수 덖어낸 차는 티백에서 느낄 수 없는 깊은 구수함을 품는다. 목을 타고 내려가며 속이 따뜻해지는 그 감촉은 단순한 음료가 아니라, 마치 몸과 마음을 다스리는 시간 같다.


차 외에도 황정은 다양한 음식으로 변신한다. 말린 뿌리를 곱게 빻아 쌀과 함께 끓이면, 부드럽고 향긋한 황정죽이 된다. 피로할 때 한 숟갈 떠먹으면 속이 편안해지는 보양식이다.

dung-gul-le3.jpg 둥굴레 열매 / 게티이미지뱅크

생뿌리를 장에 박아 장아찌로 만들어도 맛이 좋고, 술에 담가 두었다가 황정주로 즐기면 은은한 단맛 속에 약재의 기운이 배어든다.


둥굴레의 효능은 예로부터 높이 평가됐다. 동의보감에는 황정을 ‘태양의 정기를 받은 상약(上藥)’이라 기록하며, 인삼에 견줄 만큼 귀하게 여겼다.


신라의 화랑들이 수련할 때 먹었다는 이야기도 전한다. 피로를 풀고 기운을 돋우며, 오래 먹으면 얼굴빛이 고와진다고 했다.

dung-gul-le4.jpg 둥굴레 열매 / 게티이미지뱅크

하지만 이토록 귀한 식물에도 주의할 점이 있다. 둥굴레를 직접 캐러 산에 오를 때, 반드시 은방울꽃과 구별해야 한다. 두 식물은 놀라울 만큼 닮아 있지만, 은방울꽃에는 ‘콘발라톡신(Convallatoxin)’이라는 강한 독이 있어 심장을 마비시킬 수도 있다.


둥굴레는 잎이 줄기를 감싸며 번갈아 나지만, 은방울꽃은 뿌리에서 잎자루가 달린 잎 두세 장이 마주나듯 올라온다.


꽃대의 색으로도 구별할 수 있다. 둥굴레는 붉은빛이 돌고, 은방울꽃은 연한 녹색이다. 헷갈린다면, 절대 손대지 않는 게 가장 현명하다.

dung-gul-le6.jpg 둥굴레 열매 / 푸드레시피

또 한의학에서는 속이 찬 사람이나 소화가 약한 사람은 둥굴레를 많이 먹지 말라고 한다. 특히 매실과 함께 먹는 것은 피해야 한다. 자연의 선물일수록 올바르게 알고 섭취해야 비로소 그 이로움을 온전히 누릴 수 있다.


언제나 곁에 있었지만, 제대로 들여다본 적은 없던 식물 둥굴레. 그 뿌리 속에는 계절의 인내와 햇살의 정수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


오늘 저녁, 주전자에 둥굴레차를 한 번 우려보자. 찻잔에서 피어오르는 향 속에서 흙내음 가득한 자연의 숨결이 느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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