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고 보면 ‘서양 허브’와 한 뿌리, 이 나물의 정체!

맵지 않은 고추나물, 알고 보면 마음을 다독이는 풀

by 데일리한상

‘고추나물’이라는 이름을 처음 들었을 때, 누구나 한 번쯤은 혀끝이 얼얼해지는 매운맛을 떠올릴 것이다. 하지만 막상 만나보면, 이 식물은 그 이름과는 정반대의 성격을 지녔다.


고추의 친척도 아니고, 매운맛도 없다. 대신 들과 산을 노랗게 물들이며 피어나는 여름의 꽃, 그리고 봄날 입맛을 깨워주는 고운 나물로 우리 곁에 오래 머물러온 풀이다.


고추나물(Hypericum erectum)은 물레나물과의 여러해살이풀로, 한국의 산과 들, 양지바른 풀밭 어디서나 만날 수 있다. 7월이 되면 줄기 끝마다 선명한 노란 꽃을 피우는데, 해바라기를 닮은 듯 작고 단정하다.

gochunamul5.jpg 고추나물 / 국립생물자원관

햇빛이 강한 날이면 꽃잎이 한껏 펼쳐지고, 구름이 낀 날에는 다시 살짝 오므라드는 섬세한 성격을 지녔다. 꽃이 지고 나면 가을에는 작은 고추 모양의 열매가 맺히는데, 바로 이 모습 때문에 ‘고추나물’이라는 이름이 붙었다고 한다.


하지만 고추나물의 진짜 매력은 봄에 있다. 4월에서 5월, 땅에서 막 올라오는 어린순은 그 자체로 훌륭한 나물이 된다. 산에서 갓 딴 순을 살짝 데쳐 찬물에 헹구면 특유의 은은한 쌉쌀함이 살아난다. 너무 오래 데치면 이 맛이 사라지니, 불 앞에서 잠깐만 머무는 게 좋다.


간장과 참기름, 다진 마늘, 깨소금으로 조물조물 무치면 봄 한 끼 밥상에 딱 어울리는 반찬이 된다. 된장국에 넣어 끓이거나, 고추장 양념에 볶아도 어색하지 않다. 그 쌉싸름한 향이 묘하게 입맛을 당기고, 밥 한 숟갈이 절로 따라온다.

gochunamul1.jpg 접시에 담긴 고추나물 무침 / 푸드레시피

고추나물은 단순히 맛있는 나물을 넘어 오래전부터 약재로도 쓰였다. 한방에서는 꽃이 필 무렵의 온전한 식물을 말려 ‘소연요(小連翹)’라 부르며, 지혈과 해열에 사용했다.


상처가 나거나 피가 멈추지 않을 때 달여 마시거나 찧어 붙이곤 했다. 타닌 성분이 풍부해 염증을 가라앉히는 데 도움이 된다고 전해진다.


흥미로운 건, 서양에서도 이 식물과 같은 속의 식물인 ‘세인트존스워트(St. John’s Wort)’가 우울증 완화 허브로 널리 쓰이고 있다는 점이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사람들은 오래전부터 고추나물 속에서 마음과 몸을 다스릴 길을 찾아왔던 것이다.

gochunamul4.jpg 고추나물 / 국립생물자원관

다만 조심할 점도 있다. 서양고추나물에 들어 있는 히페리신이라는 성분은 일부 약물과 상호작용을 일으켜 약효를 떨어뜨릴 수 있고, 햇빛에 대한 피부 민감도를 높일 수도 있다.


우리나라의 고추나물은 상대적으로 안전하지만, 약용으로 쓸 때는 반드시 전문가의 조언을 받는 것이 좋다. 식용으로 즐길 때는 봄의 어린순만 가볍게 맛보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다.

gochunamul3.jpg 고추나물 / 국립생물자원관

이름 때문에 괜히 피했던 고추나물, 사실은 그 어떤 산나물보다도 정갈하고 깊은 맛을 품고 있다. 여름엔 노란 꽃으로 들판을 밝히고, 봄엔 한 그릇 나물로 밥상에 오르는 풀. 그 소박한 존재감 속에서 자연이 전해주는 위로를 느낄 수 있다.


오늘 저녁, 봄이 오면 한 번쯤 그 쌉싸름한 향을 떠올려보자. 이름에 속았던 이 풀이, 어쩌면 마음을 가장 부드럽게 데워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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