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뇨에 좋다는 약초, 가막사리의 두 번째 얼굴
여름 끝자락의 논두렁을 걷다 보면, 옷자락에 어김없이 무언가가 달라붙는다. 손끝으로 떼어내도 잘 떨어지지 않는 작은 가시 씨앗들.
바로 가막사리다. 농부들의 시름을 깊게 만드는, 그야말로 여름의 골칫거리 같은 풀이다. 하지만 이 지독한 잡초가 알고 보면 여름철 입맛을 돋우는 나물이자, 혈당 조절에 도움을 주는 귀한 약초였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가막사리는 국화과의 한해살이풀로, 논두렁이나 개울가처럼 물기가 많은 곳이라면 어디서든 쉽게 자란다. 8월 무렵 가지 끝에 피는 노란 꽃은 작고 수수하지만, 진짜 존재감은 꽃이 지고 난 뒤에 드러난다.
갈고리 같은 가시털이 달린 씨앗이 옷이나 털에 달라붙어 먼 곳까지 옮겨가는 생존 전략 덕분이다. 산책 후 바짓단에 붙은 이름 모를 씨앗, 그 대부분이 바로 이 녀석이다.
요즘엔 토종보다 훨씬 번식력이 강한 ‘미국가막사리’가 도심의 빈터까지 점령하고 있다지만, 사실 이 강한 생명력은 다른 의미로 보면 그만큼 끈질긴 자연의 의지이기도 하다.
나는 어릴 적 여름이면 논두렁에서 놀다 집에 돌아올 때마다 바짓단에 붙은 씨앗을 털어내며 할머니께 혼이 나곤 했다. 그런데 어느 날 부엌에서 익숙한 향이 풍겨왔다.
그 향의 주인공이 바로 가막사리였다. 할머니는 부드러운 어린순을 데쳐 된장에 무치시곤 했다. 살짝 쌉싸름하면서도 장맛이 어우러져 여름철 잃었던 입맛이 살아났다.
끓는 물에 잠시 데쳐 찬물에 헹구면 쓴맛이 사라지고 향긋함만 남는다. 그렇게 무쳐낸 나물 한 젓가락에는 여름 들판의 냄새가 배어 있었다.
가막사리는 단순히 밥상 위의 나물에 그치지 않는다. 예로부터 한방에서는 ‘낭파초(狼杷草)’라 불리며 귀한 약재로 쓰였다. 이름의 뜻은 ‘이리의 갈퀴’인데, 씨앗의 갈고리 모양에서 비롯된 말이다.
폐의 열을 내려주고 염증을 가라앉히는 데 도움을 준다고 하여, 기관지염이나 인후염 치료에 쓰이곤 했다. 그런데 현대에 들어 더욱 주목받는 효능은 바로 혈당 조절이다.
가막사리에 들어 있는 플라보노이드와 폴리아세틸렌 성분이 혈당 수치를 낮추는 데 잠재적인 효과가 있다는 연구들이 이어지고 있다. 오래전 민간에서 당뇨병 관리에 이 풀을 썼다는 이야기가, 과학적으로 근거를 얻고 있는 셈이다.
물론 약초라 해서 마냥 안전한 것은 아니다. 가막사리에는 자궁 수축을 유발할 수 있는 성분이 있어 임산부는 피해야 하며, 간 질환이 있는 사람 역시 주의가 필요하다. 하지만 적절히 알고 쓰면, 논두렁의 잡초가 그저 성가신 존재만은 아니라는 걸 알게 된다.
매년 여름이면 농부들의 땀을 뺏던 풀 한 포기가 알고 보면 우리의 몸을 살리는 풀일지도 모른다. 자연은 그렇게 늘, 겉모습만으로는 알 수 없는 선물을 품고 있다.
다음에 논길을 걷다 옷자락에 씨앗 몇 개가 달라붙는다면, 귀찮다고 털어내기 전에 잠시 생각해보자. 그 씨앗 안에도 어쩌면, 우리 삶을 돕는 조용한 힘이 깃들어 있을지 모르니까. 오늘은 그런 자연의 지혜에 살짝 고개를 끄덕여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