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당귀, 산자락의 보랏빛이 미국을 물들이다

여성의 ‘보약’에서 세계가 주목하는 약초로

by 데일리한상


아침 이른 산길을 걸을 때, 안개 사이로 은근한 자줏빛 줄기가 스며드는 풍경을 본 적이 있다. 그때 마주한 식물이 바로 ‘참당귀’였다.


미나리과에 속한 이 토종 식물은 오래전부터 우리 어머니 세대가 ‘여성을 위한 보약’이라 부르며 귀하게 다뤘던 약초다.


그런데 이제 이 고운 풀 한 포기가 미국의 공식 생약 규격집에 이름을 올렸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세계 최대 의약품 시장이 인정한 ‘K-생약’의 첫 주인공이 된 것이다.

korean-angelica-gigas-hmc-listing3.jpg 참당귀 / 게티이미지뱅크

식품의약품안전처가 미국 약전위원회와 함께 연구를 이어온 끝에, 우리 자생종 참당귀(Angelica gigas)가 미국 생약 규격집인 HMC(Herbal Medicines Compendium)에 정식 등재되었다. HMC란 생약의 성분, 함량, 품질 기준을 세세히 기록해두는 공신력 있는 규격서다.


여기에 이름을 올린다는 건 단순히 수출이 쉬워진다는 의미를 넘어, 우리 땅의 식물이 국제 무대에서 ‘의약품으로서의 신뢰’를 인정받았다는 뜻이기도 하다.

korean-angelica-gigas-hmc-listing2.jpg 참당귀 / 게티이미지뱅크

그동안 우황청심원이나 은교산처럼 참당귀를 쓰는 한약제들은 미국 수출길이 멀고도 험했다. 원료의 안전성을 증명하는 자료만 해도 산더미처럼 쌓였다고 한다. 하지만 이번 등재로 그 문턱이 한층 낮아졌다. 이제 품질 그 자체가 이미 신뢰의 증거가 된 셈이다.


광동제약의 연구진은 “전통의 약재가 세계로 나아가는 첫 걸음”이라며 기대를 전했다. 참당귀의 등재는 단지 한 식물이 해외에 진출한 사건이 아니라, 오랜 세월 구전으로 이어온 우리 생약의 가치가 과학의 언어로 공인받은 순간이다.

korean-angelica-gigas-hmc-listing1.jpg 참당귀 / 푸드레시피

참당귀의 뿌리는 오래전부터 여성의 몸을 다스리는 데 탁월하다고 알려져 있다. 한의학에서는 피를 보하고, 순환을 돕고, 어혈을 풀어주는 약재로 기록되어 있다.


월경 불순이나 산후 회복에 쓰였고, 빈혈로 기운이 없을 때 어머니들은 달인 물을 한 모금씩 권하시곤 했다. 그 따뜻한 잔을 들이키며 몸이 서서히 풀리던 기억은, 어쩌면 과학이 밝히기 전부터 이미 삶 속에서 증명된 효능이었는지도 모른다.


현대 연구에 따르면 참당귀에는 ‘데쿠르신(Decursin)’이라는 핵심 성분이 들어 있어 혈류를 개선하고 염증을 억제하며, 뇌세포를 보호하는 작용까지 한다고 한다. 일본의 일당귀와 혼동되곤 하지만, 참당귀는 그 짙은 향과 높은 데쿠르신 함량 덕에 약효가 한층 깊다.

korean-angelica-gigas-hmc-listing5.jpg 참당귀 / 푸드레시피

이번 미국 HMC 등재는 단순한 소식 그 이상이다. 수천 년간 우리 산과 들에서 자라온 약초가 세계의 표준이 되었다는 것, 그것이 주는 의미는 깊고도 넓다. 인삼과 홍삼이 그랬듯, 이제 참당귀 역시 K-생약의 새로운 시대를 여는 문을 연 셈이다.


언젠가 우리 고유의 생약들이 세계인의 건강을 지키는 이름으로 불릴 날이 오겠지. 산길에서 은은한 자줏빛을 다시 마주한다면, 그 속에 담긴 세월의 지혜와 과학의 빛을 함께 떠올려보고 싶다. 오늘은, 따뜻한 차 한 잔에 참당귀 향을 조금 우려내어 그 이야기를 곱씹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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