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조들이 ‘약’으로 쓴 과일, 잘못 먹으면 독?

발효와 기다림이 빚어내는 자연의 약

by 데일리한상

여름의 끝자락, 시장 골목을 걷다 보면 초록빛 매실처럼 생긴 작은 과일들이 눈에 들어온다. 자세히 보면 매끄럽지 않은 털과 단단한 빛깔이 조금 다르다. 바로 ‘개복숭아’다.


생으로 한입 베어 물면 혀끝이 오그라들 만큼 떫고 신맛이 강해 고개를 젓게 되지만, 참 신기하게도 이 투박한 과일이 시간과 정성을 만나면 여름의 보약이 된다. 어릴 적 할머니는 늘 장독대 앞에서 개복숭아를 손질하셨다.

wild-peach2.jpg 바구니에 담긴 개복숭아 / 푸드레시피

손끝으로 씨앗을 골라내며 “이건 그냥 먹는 게 아니란다, 시간을 먹는 거지”라던 그 말이 지금도 기억에 남는다. 개복숭아는 야생 복숭아의 일종으로, 작지만 속은 알차다.


구연산과 사과산 같은 유기산이 몸속 피로를 풀어주고, 폴리페놀과 플라보노이드가 세포를 지켜준다. 여름 내내 더위와 싸운 몸이 이 과일을 통해 다시 기운을 차리는 셈이다.


풍부한 식이섬유 덕분에 속이 편안해지고, 칼륨이 나트륨을 내보내 혈압도 안정시켜준다니, 자연이 만든 영양제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지만 이 과일에는 반드시 알아야 할 ‘양날의 성분’이 있다.

wild-peach3.jpg 개복숭아 열매 / 푸드레시피

바로 씨앗 속 아미그달린이다. 그 자체로는 무해하지만, 으깨지거나 물과 만나면 독성 물질인 시안화수소로 변할 수 있다.


그래서 개복숭아를 청이나 담금주로 만들 때는 반드시 씨앗을 제거하거나, 씨앗을 함께 넣을 땐 백일 이상 숙성시켜야 한다. 서두르지 않는 기다림이 곧 안전의 지혜가 되는 것이다.

wild-peach6.jpg 통에 담긴 개복숭아청 / 푸드레시피

제대로 숙성된 개복숭아 효소는 여름날 시원한 탄산수에 한 스푼 섞으면 그 자체로 달콤한 피로회복제가 된다. 따뜻한 물에 타 마시면 기관지가 한결 편안해지고, 살짝 쓴듯 향긋한 향이 여운을 남긴다.


담금주로 만들면 한 모금의 온기 속에 여름 내 쌓였던 피로가 녹아내리는 듯하다. 하지만 역시, 그 어떤 약도 지나치면 독이 되듯 과음은 금물이다. 개복숭아는 단지 과일이 아니다.

wild-peach5.jpg 개복숭아나무 / 푸드레시피

발효와 숙성, 그리고 기다림이라는 시간의 손끝에서 비로소 완성되는 여름의 약이다. 씨앗 속에 숨은 위험을 알고 다루면, 그 안에 담긴 자연의 힘은 오히려 우리 몸을 살린다.


올해 여름이 아직 끝나지 않았다면, 장독대 한켠에 개복숭아 한 통을 담가보자. 서늘한 바람이 불어올 무렵, 그 기다림의 결과가 유리병 속에서 은은히 빛날 것이다. 오늘은 그 작은 보석을 한 번 다뤄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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