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콤한 열매보다 더 귀한 줄기, 동의보감이 주목한 이유

열매보다 더 귀한 건 줄기… 으름덩굴, 동의보감 속 신장 약재 ‘목통’

by 데일리한상

한여름의 끝자락, 뜨거운 햇살 아래에서도 유난히 푸르게 자라는 덩굴이 있다. 담장을 타고 오르며 잎사귀를 흔드는 그 식물, 바로 으름덩굴이다.


가을이 오면 마치 바나나처럼 생긴 보랏빛 열매를 주렁주렁 매달지만, 정작 진짜 보물은 열매가 아니라 줄기와 잎에 숨어 있다.


예전엔 담장을 덮은 덩굴이 성가시다며 마당 정리를 할 때마다 베어냈지만, 알고 보면 그 줄기가 바로 《동의보감》 속 귀한 약재 ‘목통(木通)’이다.

akebia-quinata3.jpg 으름덩굴잎 / 국립생물자원관

조선 시대의 의서에는 “심장의 열을 내리고, 가슴의 답답함을 풀며, 소변을 원활히 하여 부기를 없앤다”고 기록되어 있다. 열을 식히고 흐름을 도와 몸의 순환을 바로잡는 데 탁월하다는 뜻이다.


그래서 옛사람들은 으름덩굴의 줄기를 신장과 방광을 돕는 약재로 귀하게 썼다. 지금도 국산 자연산 목통은 구하기 어려워 1kg에 수만 원을 넘는다.


줄기의 겉껍질을 벗겨 햇볕에 바짝 말려야 비로소 약재로 완성되기 때문인데, 그 정성과 시간이 값으로 매겨지는 셈이다. 줄기뿐 아니라 잎 역시 소중하다.

akebia-quinata2.jpg 으름덩굴잎 / 국립생물자원관

예부터 여름철엔 으름잎차를 마시며 더위를 식히고 기운을 보충했다고 한다. 현대의 시선으로 보면, 그 이유는 사포닌과 플라보노이드 덕분이다. 이 성분들이 염증을 줄이고 노폐물을 몸 밖으로 배출시키는 이뇨 작용을 돕는다.


나도 지난해 여름, 지인의 권유로 으름잎차를 처음 마셔봤다. 은은한 풀향과 함께 몸이 가볍게 정리되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만드는 법도 간단하다.

akebia-quinata5.jpg 으름덩굴 줄기 / 국립생물자원관

깨끗이 씻은 잎을 바람이 잘 통하는 그늘에서 완전히 말린 뒤, 따뜻한 물(약 80도)에 몇 장만 넣어 3~4분 우리면 된다. 쓴맛이 거의 없어 부담 없이 마실 수 있지만, 이뇨 작용이 강하므로 하루 한 잔이면 충분하다.


다만 꼭 알아두어야 할 주의점이 있다. 으름덩굴의 줄기는 ‘천목통(川木通)’이라 부르지만, 이름이 비슷한 ‘관목통(關木通)’은 전혀 다른 식물이다.


관목통에는 신부전을 유발할 수 있는 독성 물질인 아리스톨로크산이 들어 있어 현재는 사용이 금지되어 있다. 따라서 야생에서 채취하거나 시장에서 구매할 땐 반드시 전문가의 확인이 필요하다.

akebia-quinata6.jpg 으름덩굴 차 / 푸드레시피

가장 안전한 방법은 직접 집에서 으름덩굴을 키우는 것이다. 한 번 뿌리를 내리면 매년 새순이 돋고, 여름이면 푸르게 담장을 덮는다. 그리고 필요한 만큼 잎과 줄기를 따서 정성스레 말리면 된다.


매일 보던 담장 위의 덩굴이 사실은 약초라니, 자연은 늘 우리가 무심히 지나치는 곳에 귀한 선물을 숨겨둔다. 가을의 달콤한 열매만큼이나, 그 뒤를 묵묵히 지탱해온 줄기와 잎에도 우리 조상의 지혜가 깃들어 있다.


오늘은 잠시 담장가에 눈길을 줘보자. 바람에 흔들리는 푸른 으름덩굴 속에서, 오래된 자연의 약방이 조용히 숨 쉬고 있을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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