깻잎보다 진한 향… 수까치깨, 여름 밥상 살리는 토종 허브의 재발견
한여름, 논두렁과 밭둑을 따라 걷다 보면 어디선가 푸른 향이 코끝을 스친다. 자세히 보면 쑥갓처럼 생겼지만 줄기가 단단하고 잎은 더 좁은 풀, 바로 수까치깨다.
이름은 낯설지만, 향을 맡는 순간 “아, 이 냄새!” 하고 무릎을 치게 된다. 들깻잎보다 진하고 시원한 그 향은, 한때 우리 밥상을 지배하던 여름의 향기였다. 꿀풀과에 속하는 한해살이풀인 수까치깨는 예전엔 일부러 씨를 받아 심을 만큼 귀한 허브였다.
지금은 잡초로 여겨지기도 하지만, 그 맛을 기억하는 사람들은 여전히 여름이면 논두렁을 따라 수까치깨를 찾는다. 특히 전라도와 경북의 일부 마을에서는 지금도 그 향을 지키며 여름 밥상에 올린다.
수까치깨의 향은 ‘페릴알데하이드’라는 성분 덕분이다. 깻잎의 향을 내는 바로 그 물질이지만, 수까치깨 속에서는 훨씬 진하고 맑게 퍼진다.
그래서인지 삼겹살을 싸 먹을 때 깻잎 대신 수까치깨 잎을 올리면 느끼함이 사라지고 입안이 시원하게 정돈된다. 나는 작년 여름, 시골 장터에서 우연히 수까치깨 한 다발을 샀다.
푸른 잎을 데쳐 국간장과 참기름, 다진 마늘만 넣어 무쳤더니 밥 한 공기가 순식간에 사라졌다. 소박한데도 입안에 퍼지는 청량한 향이 더위를 잊게 해주었다. 부드러운 잎은 쌈으로, 단단한 줄기는 장아찌로 쓰인다.
질긴 아랫부분을 잘라내고 연한 윗줄기만 골라 된장이나 막장에 박아두면, 시간이 지날수록 짭조름한 장맛 속에 향이 깊이 스며든다. 간장, 식초, 설탕을 끓여 부어 만든 장아찌는 새콤달콤하면서도 향긋해 여름 밑반찬으로 그만이다.
이런 향긋한 허브가 단지 입맛만 살리는 건 아니다. 옛 문헌에는 수까치깨가 열을 내리고 염증을 완화하며 속을 편하게 해준다고 기록되어 있다. 실제로 페릴알데하이드가 항균·항염 작용을 해 장내 유해균을 억제하고 소화를 돕는다고 한다.
그래서 예전 사람들은 배가 더부룩할 때 수까치깨 나물이나 차를 끓여 마셨다. 지금은 마트에서도 보기 어렵지만, 여름 시골 장터를 걷다 보면 여전히 다발로 묶인 수까치깨가 놓여 있다.
그 향을 맡는 순간, 어릴 적 마당에서 할머니가 된장에 박아두던 장아찌 냄새가 스쳐 간다. 잡초라 여겼던 풀 속에 이런 맛과 향, 그리고 오랜 지혜가 숨어 있었다니 새삼 고마운 마음이 든다.
올여름에는 밭둑에서 피어난 이 작은 허브를 다시 기억해보자. 깻잎보다 진하고, 여름보다 향기로운 수까치깨 한입이면 잃어버린 여름의 밥상 풍경이 다시 살아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