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속의 와사비라 불리는 산의 매운 향기
여름의 끝자락, 바람은 여전히 뜨겁고 몸은 묘하게 무겁다. 그럴 때면 문득 산속의 그늘이 그리워진다. 나무들이 빽빽하게 들어선 계곡 어귀에서 들려오는 물소리, 그리고 그곳에서 은은하게 퍼져 나오는 알싸한 향기.
아는 사람만 안다는 ‘는쟁이냉이’가 바로 그곳에 숨어 있다. 이름은 냉이지만 우리가 봄마다 밥상에서 만나는 그 냉이와는 전혀 다르다. 계곡의 물기를 머금고 자라난 이 산나물은 배추나 겨자, 와사비의 사촌 격으로 십자화과에 속한다.
햇볕이 강한 들판 대신, 물안개가 맴도는 그늘진 숲속을 좋아하는 독특한 식성의 식물이다.
봄이면 흰빛 혹은 연분홍빛의 작은 꽃을 피우지만, 그 향과 효능은 계절을 가리지 않는다. 조선의 <동의보감>에서도 는쟁이냉이는 위장을 보호하고 몸의 독소를 풀어주는 약초로 기록되어 있다.
현대 연구에 따르면 비타민 B1과 비타민 A, 그리고 강력한 항산화 물질인 베타카로틴이 풍부해 피로한 여름철에 잃었던 활력을 되찾게 해준다고 한다.
는쟁이냉이의 매력은 단연 그 톡 쏘는 매운맛이다. 와사비를 닮은 알싸한 향 뒤에는 ‘글루코시놀레이트’라는 성분이 숨어 있다.
이 성분은 식물 세포가 손상되는 순간 효소 반응을 일으켜 이소티오시아네이트로 변하며, 그때 특유의 자극적인 매운맛이 피어난다.
입 안에 퍼지는 그 짜릿함은 단순한 맛이 아니라 몸을 깨우는 신호처럼 느껴진다. 다만 날것으로 먹으면 혀끝이 얼얼할 만큼 강하니, 살짝 데쳐 향만 남겨두는 것이 좋다. 그렇게 하면 매운맛은 부드러워지고, 숲의 향기 같은 은은함이 입안에 감돈다.
나는 봄이 오면 가끔 산을 찾는다. 계곡 근처에서 는쟁이냉이를 만나면 그날은 괜히 든든한 기분이 든다. 데쳐서 국간장과 참기름, 다진 마늘을 넣고 조물조물 무치면 밥 한 그릇이 금세 사라진다.
된장국에 넣어도 구수함 속에 시원한 향이 피어나고, 뿌리를 갈아 간장 한 방울 떨어뜨려 밥 위에 얹으면 그야말로 산속의 와사비다. 일본에서는 ‘야마와사비’라 부르며 귀하게 여긴다는데, 그 이유를 한입만 맛보아도 알 수 있다.
하지만 이 나물은 함부로 다가서면 안 된다. 비슷한 모양의 독초가 많고, 잘못 채취하면 위험할 수 있다. 무엇보다 자연의 것을 얻을 때는 책임이 따른다.
전문가의 도움 없이 채취하지 말 것, 오염된 곳에서는 절대 손대지 말 것, 그리고 국립공원이나 사유지의 식물은 그대로 두는 것. 자연의 보물은 그 자리에 있을 때 가장 아름답다.
늦여름의 피로가 쌓여 몸이 무거운 날, 나는 가끔 그 산속의 냉이를 떠올린다. 청량한 물소리와 함께 떠오르는 매운 향은 이상하게도 마음까지 맑게 만든다.
지금은 계절이 아니지만, 언젠가 봄이 오면 다시 찾아가 그 신비로운 향을 느껴보고 싶다. 자연이 건네는 작은 강장제, 는쟁이냉이. 오늘은 그 이름만으로도 마음이 조금은 시원해진다. 언젠가 봄이 오면, 꼭 한 번 직접 만나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