붉은 열매 하나에 담긴 불로초의 비밀

진시황이 찾고, 오늘 우리가 마시는 불로초의 이야기

by 데일리한상

여름의 열기가 서서히 식어가고, 바람이 조금씩 선선해지는 8월의 끝자락. 그때 들판 어딘가 작은 나무에는 붉은 보석 같은 열매들이 익어간다. 햇빛에 반짝이는 그 작은 구슬들, 바로 구기자다.


어릴 적 어른들이 기력이 떨어지면 몰래 꺼내 드시던 붉은 열매, 그게 이렇게 과학적으로 증명된 건강식품이었다는 사실을 알고 나면 새삼스러워진다.

gugija2.jpg 구기자 열매 / 국립생물자원관

구기자는 가지과 식물로, 우리나라 어디서든 잘 자라지만 특히 충남 청양과 전남 진도의 구기자는 품질이 뛰어나 국가가 보호할 만큼 귀하다.


여름엔 연보라색 꽃이 피고, 가을이 오기 전 서리 내리기 전까지 그 꽃이 열매로 변해 붉게 익는다. 이 작은 열매 안에는 우리의 간과 눈, 그리고 세포의 건강을 지켜주는 수많은 영양이 숨어 있다.


예로부터 구기자는 ‘불로초’라 불렸다. 진시황이 영생을 찾아 헤맸다는 전설 속의 약초 중 하나이기도 하고, <동의보감>에는 “오래 복용하면 몸이 가벼워지고 늙지 않는다”는 기록도 있다.

gugija5.jpg 구기자 잎 / 국립생물자원관

신화와 의서가 전해준 이 믿음은 이제 과학으로 증명된다. 구기자의 핵심 성분인 베타인은 간에 지방이 쌓이는 것을 막고 손상된 간세포를 재생시키는 데 도움을 준다. 그래서 예로부터 구기자는 간 기능 강화나 숙취 해소에 탁월한 약재로 쓰여왔다.


뿐만 아니라 지아잔틴과 루테인은 눈의 피로를 풀고 황반을 보호해 시력을 지켜주며, 비타민 C와 항산화 성분들은 세포의 노화를 늦춰준다.

gugija7.jpg 접시에 담긴 구기자 뿌리 / 푸드레시피

그래서일까, 구기자를 오래 복용한 사람들은 “피로가 덜하고 몸이 가볍다”고 말하곤 했다. 그건 단순한 느낌이 아니라, 몸이 진짜로 젊어지는 방향으로 작동하고 있었던 것이다.


흥미로운 건 구기자나무의 어느 한 부분도 버릴 게 없다는 점이다. 뿌리를 말린 ‘지골피’는 폐의 열을 식히고 염증을 가라앉히며, 혈압을 낮추는 약재로 쓰인다.

gugija4.jpg 구기자나무 / 국립생물자원관

봄에 돋는 어린잎인 ‘구기엽’은 살짝 데쳐 나물로 무치면 씁쓸하면서도 고소한 맛이 일품이다. 된장국에 넣으면 구수함이 한층 깊어진다. 자연이 허락한 그 모든 부위가 사람에게 유익하다는 건 참 놀라운 일이다.


구기자를 일상에서 즐기는 가장 쉬운 방법은 차로 마시는 것이다. 말린 구기자 한 줌을 물에 넣고 은근히 끓이면 붉은빛이 천천히 우러나오며 달큰한 향이 퍼진다.


여기에 대추나 생강을 함께 넣으면 몸을 따뜻하게 덥혀주면서 맛이 한결 부드러워진다. 나는 가끔 퇴근 후 그 구기자차를 한 잔 마시며 하루를 마무리하곤 한다. 쌉쌀한 향 사이로 달큰한 단맛이 남아, 마치 몸속까지 맑아지는 기분이 든다.

gugija6.jpg 컵에 담긴 구기자 차 / 푸드레시피

요리에 넣는 것도 좋다. 삼계탕이나 닭백숙에 구기자를 몇 알 넣으면 은은한 감칠맛이 배어 나오고, 구기자밥은 보기에도 예쁘고 건강에도 좋다.


전통 방식 그대로 구기자주를 담가 약주로 즐기기도 하는데, 한두 잔 정도면 혈액순환을 돕고 피로를 풀어주는 데 도움이 된다.


다만 구기자는 성질이 차기 때문에 몸이 냉하거나 위장이 약한 사람은 조금만, 천천히 즐기는 것이 좋다. 하루에 말린 열매 기준으로 20g을 넘기지 않는 것이 안전하다.

gugija1.jpg 구기자 열매 / 국립생물자원관

구기자는 그저 붉은 열매가 아니다. 그것은 수천 년 동안 인간이 건강을 바랄 때마다 떠올려온 ‘생명의 상징’이다. 옛사람들이 경험으로 터득한 지혜가 이제는 과학의 언어로 해석되고, 우리는 그 덕분에 더 깊이 자연을 이해하게 되었다.


가을 문턱, 따뜻한 구기자차 한 잔을 앞에 두고 잠시 호흡을 고른다. 붉은 빛이 천천히 잔 속에서 번져나갈 때, 그 안에는 세월을 견디며 인간의 몸과 마음을 돌보아온 자연의 마음이 담겨 있다. 오늘은 그렇게, 불로초의 전설을 한 모금으로 음미해보자. 오늘 한 번 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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