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기 어린 오후, 고소한 한 줄의 위로
가끔은 부엌에 오래 서 있는 게 두려운 날이 있다. 창문 너머로 들이치는 더운 바람에 입맛은 뚝 떨어지고, 이따금 비까지 쏟아지면 뜨거운 국물도, 차가운 면도 그저 시큰둥하게 느껴진다. 그럴 땐 늘 생각나는 게 있다.
한 줄만 있어도 든든하고, 적당히 짭짤하면서도 고소한 맛이 살아 있는 김밥. 하지만 시금치 데치고 계란 부치고 당근 볶는 게 번거롭다면, 오늘은 조금 다르게 만들어보자. 단 세 가지 재료만으로도 충분한, 여름에 딱 어울리는 어묵김밥이 있다.
이 김밥의 매력은 속 재료를 따로 준비하지 않아도 된다는 데 있다. 밥에 맛을 입혀 그 자체가 속 재료가 되는 셈인데, 시작은 아주 간단하다.
달군 팬에 식용유를 두르고 다진 마늘 한 작은술을 넣어 볶아 향을 살짝 올린 뒤, 잘게 썬 어묵과 채 썬 당근, 그리고 다진 청양고추를 함께 넣는다. 청양고추는 선택이지만, 넣는다면 어묵의 느끼함을 잡아주는 알싸한 매운맛이 더해져 훨씬 맛이 깊어진다.
재료들이 잘 익으면 굴소스 한 큰술과 설탕 한 작은술을 넣어 단짠의 조화를 더해주고, 고슬고슬하게 지은 밥 두 공기를 넣어 재료들과 고루 섞어가며 충분히 볶아준다. 이 볶음밥만으로도 한 그릇 뚝딱할 수 있지만, 오늘은 김밥으로 마무리해보자.
김밥용 김 위에 이 볶음밥을 넓고 얇게 펴 바른다. 말 때 밥이 삐져나오지 않도록 김의 위쪽 끝을 2cm 정도 남기는 게 요령이다. 중앙에는 길게 썬 단무지를 한 줄 올려주고, 단단하게 말아주면 보기에도 깔끔하고 속도 알찬 어묵김밥이 완성된다. 자르기 전, 칼에 참기름을 살짝 묻히면 더욱 예쁘게 썰 수 있다.
이 김밥에 곁들이면 좋을 마법 같은 소스도 있다. 부드럽고 매콤한, 일명 ‘맵단크’ 마요 소스다. 마요네즈 두 큰술에 스리라차 소스와 식초를 각각 반 큰술씩, 그리고 설탕과 간장을 아주 약간 넣어 섞으면 된다.
한 입 크기로 썬 김밥을 이 소스에 푹 찍어 먹는 순간, 평범했던 김밥이 전혀 다른 맛으로 다가온다. 그날의 기분까지 새로워지는 느낌이랄까.
이렇게 만든 어묵김밥은 도시락통에 담아 소풍을 떠나도 좋고, 식탁 위에 올려 조용히 혼밥을 즐겨도 그만이다. 뜨거울 때도, 차가울 때도 맛있고, 무엇보다 불 앞에 오래 서 있지 않아도 된다는 게 큰 장점이다. 요란한 반찬 없이도 충분히 한 끼가 되는 여름의 별미. 오늘 한 번, 이 고소한 한 줄로 입맛을 달래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