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처투성이인 나와 내 부모님, 그리고 조부모님의 관계를 보며 느낀 점
'엄마 요즘 할머니 댁 안 가는 거 알지?'
'엄마 앞에서 절대 할머니 얘기하지 마'
또 싸웠어?
외국에 살고 있는 나는 언제나 한국에 있는 가족들 소식에 늦는 편이다. 특히나 나쁜 소식은 듣지 않아도 될 때까지 숨기는 우리 가족들 덕분에 내가 모르는 가족 내 사건 사고들이 많았다. 근데 그 중심에는 육십을 바라보는 엄마, 둘째 이모 그리고 팔십이 넘은 할머니가 있다. 엄마와 둘째 이모는 50대 중반을 기점으로, 할머니랑 유독 자주 부딪히기 시작했다. 그 전에도 엄청나게 애틋했던 사이는 아니었지만, 쌓여오던 트라우마가 터졌다. 그걸 '갱년기'라 보는 사람들도 있을지 모르지만, 그렇게 포장(?)하기에는 엄마와 이모의 상처가 너무 크다. 내가 아는 건 아마 빙산의 일부겠지.
처음에는 너무 속상하고, 이해도 가지 않았다. 지금은 많이 건강해지셨지만, 할머니는 몇 년 전만 해도 불치병을 겪으며 건강에 적신호가 오셨다. 엄마도 이제 거의 육십이고, 할머니도 팔순이 넘으셨고, 이제는 좀 지칠 만도 한데, 왜 엄마랑 할머니는 아직까지도 대화만 하면 화부터 내는 건지. 평소 같았으면, 다른 사람이 같은 말을 했으면, 그냥 넘어갔을 말이었을 수도 있는 말도 할머니 입에서만 나오면 엄마는 울컥하며 화를 냈다. 그러다 보니 '이제 엄마 안 볼 거다'하며 보이콧 선언을 했다가, 마음이 약해져서 다시 또 찾아갔다가 다시 싸우고, 이걸 반복하고 있는 것이다.
할머니의 관심과 애정의 표현이 조금 독한 편이다 정도로만 생각했었는데, 우연히 하나, 둘씩 엄마랑 이모가 겪었던 트라우마의 일부를 알게 되었다. 내 인생 가장 강한 여자들이라고 생각했던 이모와 엄마가 말은 안 했지만, 내가 생각하는 것보다 큰 상처를 품고 자라왔다는 게 마음이 아팠다. 이제 나는 차마 '이제는 그만하라고' 말을 할 수 없게 되었다. 그저 엄마의 딸로서 엄마를 품어주고 싶고, 이모에게는 딸 같은 조카가 되어주어야겠다고 생각했다. 굳이 한 번 더 얘기를 해서 그 상처를 긁고 싶지도 않았고, 흉터가 되어버린 기억을 좀 잘 덮어주고 싶었다.
우리 엄마는 그래서 노력을 많이 했던 것 같다. 내 딸들은 그렇게 키우지 말아야지 하고. 근데 나도 나만의 상처를 가지고 자란 어른이 되었다. 성인이 되 아무리 생각해도 우리 부모님은 당신들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해 자식을 키웠는데 아직까지도 내게는 너무나 생생한 상처들이 있다. 그나마 내 세대로 와서 바뀐 것이라면 나는 그래도 엄마를 이해한다는 것과 나와 다르기에 솔직하지 못하더라도 엄마의 가치관에 어느 정도는 맞춰줄 수 있다는 정도.
이 관계성을 몇 년째 지켜보며 그런 생각이 들었다. 우리 할머니, 할아버지가 조금 더 따뜻한 분들이셨다면, 나와 엄마의 사이도 달랐을까? 상처 하나 없이 깨끗한 가족 관계가 존재는 하는 걸까?
그래도 이 정도면 우리 가족은 참 평범하게 행복하다고 살아왔는데 아직도 다들 마음 한편에서 아직도 피가 멎지 않는 상처가 있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