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1일만 되면 그리운 사람
지나영 교수님은 아이가 건강한 가치관을 가지고 자라나는데 부모로부터 받아야 하는 2가지 메시지가 있다고 말씀하셨다.
조건 없는 사랑: Unconditional Love 바닥이 없는 그 감정
절대적 존재 가치: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사랑받을 자격이 있다는 것
그리고 내가 이 2가지를 배웠던 것은 우리 할아버지, 할머니로부터였다.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나는 무한한 사랑을 받았고, 어떤 이야기를 하든지 할아버지는 가장 행복한 표정으로 나의 이야기를 들어주셨다. 그래서 내가 더 많은 이야기를 했던 것 같다.
어릴 때는 주말에 종종 할머니, 할아버지 댁에서 하룻밤을 지내기도 했는데
토요일 점심을 먹고 나면 나는 할아버지 손을 붙잡고 함께 산책을 했다.
산책로 한 구석에는 지금은 없어진 작은 슈퍼마켓이 있는데,
할아버지는 할머니는 잘 못 먹게 했던 사탕이나 아이스크림을 사주셨다.
그리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할머니가 보지 못하도록
다 먹어 없애면서 비밀 산책을 끝냈다.
할머니가 나를 키운 두 번째 엄마였다면,
할아버지는 내게 안식처, 그 자체였다.
그런 할아버지가 많이 아프시기 시작하신 것은 내 대학시절이었다.
이런 날이 오기를 바라지 않아서 마음의 준비도 못했던 것 같다.
그 후로도 몇 번의 수술을 더 하셨지만, 확실하게 호전되는 느낌은 아니었던 것 같다.
그 당시 나는 바쁘다는 이유로 한국을 자주 방문하지 못했는데
갈 때마다 수척해진 할아버지는 보는 것이 너무나 힘들었다.
내가 마지막으로 기억하는 할아버지는 굉장히 말라있었고,
밥을 드시면 진통제 없이 생활을 못하셨는데 워낙 강한 성분의 약을 쓰시다 보니
잠결에 말을 하실 때가 있었다.
그리고 워낙 말수가 없던 우리 할아버지와 나눈 마지막 대화가 아직도 생생하다.
할머니, 할아버지 댁에 있다가 집으로 돌아가려고 할아버지께 인사를 드렸는데
할아버지가 앙상한 손으로 내 손을 잡더니
'좋은 남자를 만나야 해, 좋은 남자를 많아야 할 건데..'
라고 말씀하셨다.
한 번도 그런 얘기를 하신 적이 없었는데, 할아버지 앞에서는 울고 싶지 않아서
간신히 참고, '좋은 사람 만날 테니 큰 손녀 결혼할 때까지 건강하세요'라고 대답했는데,
그날 집에 가는 차 안에서 몰래 눈물을 훔쳤다.
할아버지는 비비빅, 바밤바, 연양갱, 오징어 땅콩이랑 맛동산을 가장 좋아하셨는데
옆에서 조금씩 같이 먹어서였을까 나는 초등학교 때부터, 조금은 아이답지 않은 취향을 가지고 있었고,
나이가 조금씩 들어가는 지금 나의 '최애' 간식들은 할아버지의 취향을 쏙 빼닮았다.
11월 1일이 되면 유독 할아버지가 잘 끓여주시던 깻잎 라면이 생각이 나서
꼭 따라 끓여보는 것으로 할아버지에 대한 나의 마음을 전한다.
애초에 외국에서 깻잎을 구하기가 쉽지 않기도 하지만,
아무리 따라 해보려고 해도 그 맛이 나지 않아서 너무 슬프다.
미리 노하우를 좀 배워둘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