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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쁠 희 May 06. 2021

미워도 어쩔 수 없이 엄마 딸

이해하는데만 25년이 넘게 걸린 모녀 이야기

  


인터넷에서 한 때 굉장히 핫했던 이 문구를 보고 있자면 나는 엄마가 떠오른다.

직장을 그만두면서 엄마의 라이프 스타일이 많이 달라졌기에 지금의 모습과는 전혀 딴판이지만, 어린 시절 기억 속 엄마는 강하고, 화려하고, 패셔너블한 직장인이었다.


'어머 이건 사야 해' '내가 로즈골드는 또 없잖아'를 외치며 쇼핑을 즐기던 엄마를 보다 보니 당연히 일하는 그녀의 원동력은 돈이라고 생각했다. 근데 웬걸, 엄마의 대답은 달랐다.




난 진짜 일에 대한 열정이 있었어


엄마는 25년을 넘게 회사 생활을 해오면서 이직을 할 시기에도 장기간 쉬어본 적이 없었다. 그만두겠노라 마음을 먹었던 순간이야 꽤나 많았겠지만 계속해서 일을 해왔는데, 그건 단순히 '돈'만 가지고 되는 건 아니었다고 하셨다. 회사에서 신생팀이 생겼을 때도 사장님에게 먼저 면담을 신청해서 자신이 맡겠다고 어필했다는데, 이런 이야기도 굉장히 늦게 들었다. 이런 엄마의 일에 대한 열정이 떨어지고, 하고자 하는 동기가 돈만 남았을 때, 진짜 퇴사를 결정하셨다고 한다.


김치볶음밥도 제대로 만들 줄 몰라서 짜장면을 시키게 만들고, 새로운 요리 한번 하려다가 주방을 폭파시키고 몸살에 걸리던 엄마의 모습들만 보며 자랐다. 그래서 그녀의 '본캐'라고 할 수 있던 직장인 선배로서의 면모에 무관심했었던 것도 사실이다. 저런 엄마의 발언이 내게는 신선한 충격이었던 이유다.





꽤 오랜 시간 엄마를 미워했었다. 정말 죄송스럽게도 '난 절대 커서 저런 사람은 되지 않을 거야'라고 다짐하기도 했다. 30대, 40대의 엄마는 매우 날이 서있었고, 지금 생각해도 그걸 성숙하게 받아들이고 이해하기에 나는 너무 어렸다. 분명 의도한 바는 아니었겠지만, 어릴 때 엄마가 나에게 했던 뾰족한 말 한두 마디들이 아직도 머릿속을 맴돌 때가 있다. 머리가 조금씩 자라면서는 기를 쓰고 '나도 똑같이 상처 받게 만들 거야'라며 한 마디도 지지 않고 싸워댔으니 분명 엄마에게도 큰 상처로 남은 말들이 있을 것이다.


그때 나는 숙제를 하고 있으면 예쁘게 깎은 과일이나 과자를 가져다주시고, 힘든 문제를 같이 해결해주는 옆집 친구네 어머니가 부러웠다. '엄마는 내게 관심이 없어' '나한테 뭘 해줬는데' 같은 말들을 속으로 삼키면서 자라왔다. 근데 직장 생활을 하다 보니 엄마가 정말 노력을 많이 하신 거였구나 새삼스레 느끼게 되었다.


23살 때, 인턴으로 한 패션 회사에서 근무를 하게 되었는데, 대부분이 여성에 결혼을 늦게 하셔서, 40~50대분들의 아이가 아직 초등학교도 들어가지 않은 경우가 많았다. 아이가 엄마를 찾을 나이다 보니 야근을 하고 있을 때면 어김없이 전화가 왔고, '엄마가 미안해요 곧 갈게~' 라면서 펑펑 우는 딸 아들들을 달래는 모습을 몇 번이나 목격할 수 있었다. 그렇게 야근을 하고 다음 날 출근을 해서 또 다른 이유로 평가받고 가끔씩 눈물을 훔치시던 회사분들을 보면서 우리 엄마의 40대가 겹쳐졌다. 항상 강하고 무심해 보였던 엄마도 저렇게 버거웠으려나.


회식하다가 내가 좋아했던 한 차장님이 고등학생인 따님과 했던 대화에 대해 이야기를 해주셨다. 워낙 밝고 씩씩하신 분이었는데 따님께 '엄마가 좋은 엄마가 아니라서 미안해. 그래도 노력하고 있어' 이렇게 말씀하셨다고 한다. 직장 다니는 사람은 좋은 엄마가 되기는 어렵다고 씁쓸한 한마디도 덧붙이셨다.



아, 엄마가 된다는 거 너무 어려운 거구나





절대 엄마처럼 살지 않을 거라고 말하고 다니던 나는 지금 엄마의 삶을 많이 동경하고 있다. 평소에는 살가운 말 한마디 잘 못하지만, 한창 취직 준비를 할 적에 뜬끔없이 받은 이런 문자를 보면서 또 한 번 난 아직 엄마를 따라가려면 멀었구나 싶은 생각도 들었다.


한창 백화점에서 리테일 일을 할 때도, 나는 엄마가 '비싼 돈 주고 애 유학시켰는데.. 참..' 이런 얘기 어디서 들을까 봐 괜히 혼자 앓았는데, 밖에 자랑스럽게 나의 얘기를 하고 다니셨다고 전해 들었다. 왜 이런 얘기는 나한테 안 해주는지 몰라... 낮에는 회사를 다니고 저녁엔 수업을 들으면서 MBA를 수료했던 모습도 그때는 '참 독한 사람'이러고 말았지만, 얼마나 대단한 사람이었는지도 다시 한번 느꼈다.



저번에 비슷한 이야기를 하며 엄마 대단하다고 한 적 있었는데 대답을 듣고 '역시는 역시..' 했던 기억이 난다.

 

야, 맞아 이렇게 살기가 얼마나 어려운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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