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달로 이직을 한 지 3개월이 되었다.
지난 3개월 동안 나는 내 자신을 회사에 갈아 넣었다.
이 치열한 몸부림에는 결말도 있고, 나름의 결실도 있다.
대기업에서 스타트업으로 이직을 하면서, 꽤나 부담스러운 기대를 온몸으로 받고 있다. 잘 알려진 회사에서 5년간 일을 한 사람은 뭔가 좀 다르겠지. 뭔가를 새롭게 보여주겠지. 실제로 내 리드는 이렇게 말했다. '종종님에게 기대하는 바가 남다릅니다.'
큰일 났다. 내 물경력이 뽀록나게 생겼구나. 나는 이전 회사에서 퍼즐 조각처럼 일했다. 그것도 1000피스짜리 퍼즐의. 나는 내 자리에 맞게끔 몸을 꾸겨 넣고, 가만히 시키는 일을 했다. 그게 내 역할이고 성과였다. 처음에는 새로운 아이디어가 떠오르면 손을 들었다. 개선할 것이 보이면 목소리를 냈다. 하지만 이내 그것은 나를 끌어내릴 뿐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렇게 난 순순히 퍼즐 조각이 되어 매일 반복적이고 주어진 일만 했다. 그 외의 생각을 하는 것은 시간 낭비일 뿐이었다.
그런 내가 진취적이고 새로운 일에 도전해야 하는, 게다가 성과를 뽐내야 하는 스타트업으로 오니, 길을 잃은 것 같았다. 하염없이 헤매다 보니, 허울뿐인 내 경력이 너무 부끄러워졌다. 난 그동안 무엇을 한 것일까?
나는 아주 피곤하게도, 누군가가 나에게 거는 기대가 있다면, 그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애쓰는 사람이다. 그렇게 내 격렬한 몸부림이 시작되었다.
매일 아침 일찍 회사에 갔다. 내일 할 일도 오늘 미리 했다. 틈틈이 리드한테 내가 성과를 위해 어떤 고민을 하고 있는지, 어떤 기여를 하고 있는지 어필했다. 주말에도 예외 없이, 주중에 할 일을 미리하고 따로 공부하는 시간을 가졌다. 자기 전에도 자는 중에도 어떻게든 내 자신이 유능해 보이게끔 처절히 몸부림쳤다.
누구든 과몰입의 결말을 알고 있을 것이다. 과몰입은 사람을 아주 유치하게 만든다. 나는 같은 일을 하는 동료가 칭찬받는 게 질투 났고, 내 실수에 크게 좌절했다. 내가 잘한 일이 티가 나지 않으면 너무 분했다. 정신 차려 보니, 내 마음은 이미 늙어버렸고 몸은 말라깽이가 되어있었다.
지금은 의식적으로라도 차분함을 유지하려 하고 있다. 회복기를 가지고 있다. 물론 불안감의 씨앗은 계속해서 뿌리를 내리지만, 최대한 자라나지 않게끔 빛을 차단하고 있다. 동료에 대한 질투도 동력으로 삼으려고 하고 있고, 나에게 큰 기대감을 가지고 있다는 리드의 말은 더 이상 떠올리지 않으려고 하고 있다. 침대 안에 몸을 누이고 다시금 회복할 수 있도록 안정을 취하는 중이다.
결말은 번아웃이지만, 나름의 결실도 있다.
인생에 다시금 이런 시기가 찾아올 때 써먹을 수 있는 마음 가짐을 얻었다.
1. 기대에 부응하고 싶다면, 나에게 충분한 시간을 주자.
2. 조급하면 유치해질 뿐이다. 나에게 충분한 시간을 주자.
3. 빨리 타버리지 않도록, 나에게 충분한 시간을 주자.
계속 은은히 타오를 수 있게끔, 몸부림이 아니라 헤엄을 칠 수 있도록, 내 자신에게 충분한 시간을 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