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포자에서 영주권까지, 끝없이 나를 찾는 여정
내가 사는 밴쿠버에서 세입자로 거주할 때 월세의 절반을 보증금으로 내고, 매달 첫째 날 집주인에게 월세를 지불하는 것이 법으로 정해져 있다. 보통 1년 계약이 일반적이고, 1년 이상 거주할 경우에는 month to month, 즉 정해진 계약없이 매달 렌트비를 내며 살 수 있다. 계약기간이 끝나면 집주인들은 보통 월세를 올릴 수 있기 때문에, 세입자들은 더 저렴하거나 비슷한 가격의 렌트를 찾아 이사를 나가는 경우가 많다. 나와 내 남자친구가 처음 함께 살기로 했을 때, 집주인은 월세를 올리지는 않겠지만 깎아줄 수는 없다고 했다. 그렇게 우리는 밴쿠버 다운타운에서 2년을 살았다.
집주인은 우리가 2년을 살 동안 한번도 월세를 올린 적 없고, 우리를 귀찮게 한 일도 없었다. 우리 또한 살면서 기물을 파손하거나 집을 더럽게 사용하지 않았다. 그런데 2년쯤 되었을 때, 집주인이 자신의 아들이 들어와야 하니 집을 비워달라고 했다. 밴쿠버 렌트법에 따르면 집주인은 3개월 전 퇴거 통보를 해야 하며, 마지막 달의 월세는 공짜로 제공된다. 이런 면에서 밴쿠버의 렌트법은 확실히 세입자 친화적이다.
문제는 새로운 집을 찾는 일이었다. 밴쿠버 월세가 미친듯이 비싸서 우리의 예산에 맞는 집을 찾기까지 시간이 좀 걸렸다. 다행히 11월 말에 집을 구해 1월 6일에 입주하기로 했다. 이사 날이 되어 원래 살고 있던 집주인과 함께 집 상태를 점검하며 더러운 곳이나 수리할 곳이 있는지 확인했다. 집주인은 상태가 괜찮다며 보증금을 곧 돌려주겠다고 했다. 그런데 일주일이 지나도 연락이 없었다. 문자를 먼저 보내며 보증금 이야기를 꺼냈더니 집주인이 "집이 더러우니 청소비(400 달러)를 빼고 돌려주겠다."고 했다. 아니, 내가 맡긴 보증금을 왜 자기 마음대로 쓰겠다는 건지 이해할 수 없었다. 그래서 청소비에 대한 영수증을 보여달라고 했더니, 본인이 청소를 맡긴 업체에 직접 연락하라며 연락을 끊어버렸다.
할 수 없이 그 청소업체에 전화를 걸었다. 그런데 그쪽에서도 합리적인 가격에 청소를 했다며 집주인 편을 드는 게 아닌가. 이후에도 집주인에게 계속 연락했지만, 완전히 무시당했다. 그래서 분쟁조정위원회에 불만을 접수했다. 다행히 결과는 우리의 승리였다. 사실 우리가 받을 보증금은 400달러뿐이었지만, 위원회의 결정에 따라 보증금의 2배와 그간의 이자까지 합쳐 약 1,400달러를 받을 수 있게 되었다.
판결문을 집주인에게 보내자, 집주인은 "400달러를 돌려줄테니 원만하게 합의하자"고 했다. 그런데 그동안의 시간, 돈, 감정소모를 생각하니 그렇게 하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처음부터 원만하게 합의하려 했지만, 끝까지 영수증을 보여주지도 않고 연락도 피한 건 당신이다. 1,400달러를 주지 않으면 법원까지 가겠다"고 했더니 또 연락이 없었다.
위원회 판결 이후 집주인도 한 번 재심사 신청을 할 기회가 있었다. 혹시나 해서 위원회에 전화해 확인했더니, 집주인이 재심사를 신청했지만 기각됐다고 했다. 이제 우리가 법원에 심리를 신청할 차례였다.
직장 근처 법원에서 심리에 필요한 서류를 받고, 집주인이 내야 할 비용은 더 늘어났다. 이제는 이자와 법원 비용을 포함해 약 1,550달러로 늘어났다. 서류를 작성하고 제출한 뒤, 마지막으로 해야 할 일은 소환장을 집주인에게 전달하는 일이었다. 전달 증거를 남기기 위해 등기로 보냈다. 서명을 받아야 하니 증거를 남기기 좋은 방법이었다.
며칠 뒤, 집주인에게서 드디어 연락이 왔다. 돈을 돌려줄테니 심리를 취소해 달라는 요청이었다. 솔직히 욕이 목구멍까지 차올랐지만 참았다. 돌려달라고 할 땐 안주고, 법원간다고 하니까 주겠다고? 당장 지금 돈 입금하라니까 바로 보내더라. 심리 취소를 요구하며 보챘지만, 괘씸해서 이틀정도 기다렸다가 취소해줬다.
남자친구와 나는 그 돈으로 예정되어있던 하와이 여행에 호텔비를 충당했다. 이 작은 승리 하나가 주는 뿌듯함은 하와이의 햇살처럼 내 마음을 밝혀주었다. 이 모든 과정이 약 9개월에 걸쳐서 일어났다는게 믿기지가 않는다. 솔직히 혼자서 모든 것을 준비하면서 돈을 돌려받을거라고 확신도 없었다. 내가 이렇게까지 끈질기게 노력해 끝까지 쫓아가리라고도 생각하지 못했다. 하지만 한국인의 집념으로 버텨냈다는 사실이 너무나 자랑스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