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들어 있던 수많은 전화번호 중
몇 개를 지우다가 아주 오랫동안 연락이 없었던
친구에게 전화를 걸었다. 30년이 훌쩍 지났지만
여전히 친구는 어색함이 없었다.
너무 씩씩하고 밝아서 잘 지내는 줄만 알았다
하지만 혼자가 되어 있었다. 상실의 아픔은
지켜내야 할 이들이 있었기에 잠깐이었다
그렇게 또 살아내야만 했기에 젖은 나뭇잎처럼
고개를 숙이고 있을 수만은 없었다
무거웠던 시간들은 여전히 흘러가는
시간들에 의해 무심히 다듬어져
어느새 저녁 강가의 노을이 되어 있었다
나는 잠시 그 노을을 걸치고 앉아
친구의 이름을 부르고 또 불러 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