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오늘은 ‘실패 전도사’ 이야기를 들려 드리려 합니다. 구글의 혁신 조직, X를 이끄는 아스트로 텔러 Astro Teller가 그 주인공이죠.
X는 수학의 미지수 (X) 에서 이름을 딴 구글의 비밀 조직입니다. 2010년 시작됐지만 정확히 몇 명이 일하는지, 뭘 하는지 알려져 있지 않습니다. 대신 별명이 있죠. '문샷팩토리 Moonshot Factory.' 미국의 달 착륙처럼 기존 틀을 깨는 혁신을 뜻합니다.
2. '문샷팩토리'라는 별명처럼 목표도 거대해요. X의 미션은 크게 두 가지입니다. ① 인류가 마주한 큰 문제를, 기술을 이용해 근본적으로 해결한다.
② ‘넥스트 구글’ 이 될 사업을 발굴해, 모기업 알파벳 Alphabet 의 성장을 도모한다.
3. 하지만 혁신이 말처럼 쉽지 않습니다. X는 성공보다 실패가 익숙한 조직이죠. 그럼에도 이곳을 알아볼 이유가 있다면, 여길 지휘하는 아스트로 텔러 때문이에요. 텔러는 2010 년 X의 창립 멤버였어요. 이듬해 X의 대표가 된 뒤, 지금까지 조직을 이끌고 있죠.
X에서 그는 ‘문샷 대장 Captain of Moonshot’으로 불려요. 텔러는 혁신 아이디어가 ‘우스꽝스럽고 아이처럼 행복해할 때’ 나온다고 믿어요. 그래서 피식 웃음이 나는 직함을 만들었고, 지금도 인라인스케이트를 타고 X 캠퍼스를 누비죠. “우리는 현상을 유지하는 점진적 개선이 아닌, 10 배 영향을 미칠 아이디어를 찾을 청사진을 개발했습니다. X는 혁신을 체계화하는 프로세스와 문화를 창조하려 합니다.” - 아스트로 텔러 X 문샷 대장, 2016 년 7월 블로그 ‘문샷 공장 운영 매뉴얼 들여다보기’ -
4. 텔러는 X에서 다양한 분야의 도전을 이끌었어요. AI와 생명공학, 모빌리티, 로봇까지. 미션만 맞는다면 분야를 가리지 않았습니다. 성공과 실패 결과도 제각각이죠. 지금까지 한 프로젝트도 반은 성공하고 반은 실패했다고 해요.
5. X의 성공사례부터 볼까요? 2012년, 지금처럼 AI 가 똑똑하지 않을 때입니다. 당시 X는 AI 가 고양이의 생김새를 듣지 않고도 고양이를 알아보게 했어요. 이전에 일어난 적 없는 ‘대사건’이었죠. X 는 컴퓨터 1000 대에 있는 1만 6000 개의 처리 장치를 써서 인공신경망을 만들었어요. 이 인공신경망이 유튜브에 있는 썸네일 1000 만 장을 무작위로 익혔습니다. 그다음 고양이 형상을 스스로 알아봤어요. 지금 이 팀은 '구글 브레인'으로 승격하여 구글의 사진과 번역, 음성검색 같은 AI 서비스에서 활약 중이에요.
자율주행차를 만드는 '웨이모' 역시 X 에서 태어나, 지금은 미국 피닉스와 샌프란시스코에서 로봇 택시도 운행하죠.
6. 금전적인 가치를 만든 사례 말고도, 세상의 변화에 기여한 사례도 있습니다. '베릴리'라는 생명공학 프로젝트예요. 기술이 질병 치료 혁신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가설에 따라 시작됐습니다. 2011 년에 나온 이 연구, 세 가지 기술 변화에 주목했습니다. 머신러닝과 감지 센서의 소형화, 웨어러블 장치의 발전이었어요. 이게 지금의 당뇨병과 고혈압 환자를 위한 원격 진료 앱으로 이어졌습니다.
7. 실패사례도 많습니다. ‘구글 글래스’, 2012 년에 발표한 ‘디지털 기술이 더해진 안경’ 입니다. 머리에 쓰면 눈앞에 화면이 뜨는 ‘헤드 마운트 디스플레이 Head Mounted Display’ 가 들어갔습니다. 이 제품, 제대로 실패했어요. 당시에는 “누가 그런 걸 쓰고 다니냐” 는 조롱을 들었죠.
8. X는 개발에는 성공했지만 비용을 낮추지 못해 사업화하지 못한 것도 '실패'라고 봤습니다. 2014년에 시작한 포그혼 프로젝트가 대표적입니다. 바닷물로 탄소를 배출하지 않는 연료, ‘메탄올’을 만드는 일이었어요. X 는 몇 달간 매달린 끝에, 메탄올 개발에 성공했습니다. 문제는 비용이었어요. 바닷물을 펌프 하는 비용, 연료를 만드는 데 필요한 재료(수소)를 확보하는 비용 모두 줄이기 어려웠어요. 2년간 연구와 조사를 거듭했지만, 2016년 프로젝트를 접었습니다.
9. 중요한 건 그다음입니다. X는 실패를 실패로만 남기지 않았어요.
이들은 지금까지의 연구 결과를 논문으로 썼습니다. 실패 보고서를 남겨서 공유한 셈이죠. 그뿐만이 아닙니다. 실패했을 때 보너스를 줬어요. 가망 없는 프로젝트를 붙들고 있기보다 차라리 보너스를 주고 새 출발을 하자는 취지였습니다. 실패를 기념하는 날도 만들었죠. 멕시코의 ‘죽은 자들의 날’에서 아이디어를 얻어서, 1 년에 하루 다 같이 모여 ‘죽은 프로젝트'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10. “대담한 아이디어를 향해 전진하려면 실수를 해야 합니다. 다음에 무엇을 해야 할지 알려주는, 빈번하고 지저분하며 유익한 실패를 추구해야 해요.” - 아스트로 텔러 X 문샷 대장, 2016 년 7 월 블로그 ‘문샷 공장 운영 매뉴얼 들여다보기' - X에서는 성공도 성공이라고 부르지 않습니다. “실패하기를 실패했다 failed to fail” 고 표현해요. 세상을 바꿀 도전만 골라서 하는 조직. X를 한 단어로만 설명하라면 ‘실패’가 남을 거예요.
11. "이건 새로운 길입니다. 우리의 문샷 아이디어는 우리만이 하는 일입니다. 다른 대안이 없다고 생각해요. 또 우리 일은 여전히 작동하고 있습니다. 앞으로도 X는 시대 변화에 맞춰 계속 진화하고 나아질 겁니다.” - 아스트로 텔러 X 문샷 대장, 2024년 6월 월스트리트저널 팟캐스트 - ‘문샷 하는 곳은 우리밖에 없다'. 저는 텔러의 이 말이 유독 마음에 남습니다.
12. 미국 주식 투자를 좋아하는 나에게 최애 종목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구글의 모기업인 '알파벳'. 한국인들 대다수가 테슬라와 엔비디아를 외칠 때, 알파벳을 모아가는 이유는... 구글의 'Don' be evil(사악해지지 말라)'과 같은 선한 행동강령, 이상적인 조직문화, 길찾기나 유투브처럼 일상에서 애용하는 서비스, AI 유니콘 스타트업 다수가 사용하는 구글 클라우드 등 다양한 이유가 있겠지만, 그중 하나는 바로 X 문샷팩토리였다.
14. 보통 많은 사람들 앞에서 강연을 할 때에는 좋아 보이는 이야기, 이를테면 우리의 성공사례와 위대함을 어필하기 마련인데, 아스트로 텔러는 달랐다. 그는 X의 이름으로 왜 이러한 도전을 했고, 그 과정에서 어떤 의미 있는 실패와 성공을 얻었는지 꽤 상세하게 보여준다.
15. 그리고 X의 스토리를 이야기하는 텔러의 표정과 눈빛은 시종일관 반짝반짝 빛이 났다. '일 얘기를 하면서 저렇게 설레고 행복해 보일 수 있구나' 발표를 하던 그의 모습이 아직도 잊혀지지 않는다. 어쩌면 텔러에게는 일에 관한 이야기가 아니라 꿈에 관한 이야기라 그랬겠지.
16. 그런 의미에서 나는 앞으로 다가올 AI시대에 알파벳이 더 잘되었으면 좋겠다. 알파벳의 Forward PER은 24.9배로 매그니피센트7 빅테크 기업 중 가장 저평가되어 있고(참고 : TESLA는 97배, 엔비디아 48배), 이는 많은 사람들이 알파벳에 큰 기대를 걸고 있지 않다는 이야기도 될 수 있다. 하지만 나는 다수의 사람들과는 반대로 매우 큰 기대를 걸어보고자 한다.
17. 모두가 '빨리빨리'와 '돈,돈'을 외치는 세상에서, 이왕이면 담대한 꿈을 꾸고 그 꿈에 닿기 위해 계속 도전하고 실패하고 끝내 실패하기에 실패하는 X와 같은 회사가 이 땅에 계속 존재하기를, 그렇게 반짝반짝 빛나는 이들이 쌓아온 실패의 경험들이 내가 살아가는 세상을 더 이롭게 해 줄 수 있기를 바라며...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주가가 떨어질 때마다 알파벳 주식을 모아 본다. 알파벳, 그리고 X 화이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