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학에서 만난 한 어머님의 기가 막힌 삶
J는 전라남도 함평에서 태어났다. 함평 인구가 해방이후 가장 많을 때 14만명쯤이었는데, 그 때 5남매의 맏이었다. 있는 애들 먹을 것도 없는데 아이들은 자꾸 태어났다. 옆집 뒷집 앞집 할 것 없이 다 가난했다. 부모님은 밤낮으로 농사지으러 나갔는데, 아이들은 웬만치 크면 데리고 나갔다. 집에 두나 데리고 나가나 불안하긴 매한가지, 돌맹이라도 치우면서 옆에 두는게 나았으리라. J는 일곱살 때부터 밥을 지었다. 밭에서 일하다가 어머니가 "먼저 가서 밥 해놓으라"고 하면 집으로 냅다 달려가서 불을 지펴서 쌀을 씻고 물을 맞추어 따순 밥을 지어놓고 기다렸다. 밥 지을 쌀이라도 있는게 다행이었다.
그러나 살림살이는 나아지지 읺았다. 어른아이 가릴것없이 모두 일을 하는데... 결국 시골에선 먹고 살기가 힘들어 광주로 나갔는데, 애가 다섯이나 되니까 집주인들이 세를 안주는거라. J는 맏인데다가 딸이라는 이유로 거의 쫓겨나다시피 부산의 친척집으로 건너와 방직공장에서 일을 하기 시작했다. 공장에서 일 하다가 집에 들어와서 쓰러져 자고 일어나 다시 공장으로 가는 생활의 반복이었다. 그 때 나이가 열 살 남짓이었다고 하니 나는 믿기질 않아서 연거푸 물었다. 정말요? 정말 열 살짜리 애가 공장에서 일했다구요? 무슨 일을 해요? "닥치는대로 시키는 일은 다했지요. 일하고 먹고 자고 일하고 먹고 자고의 반복이었어요"
월급날이 되면 고향에서 아버지가 건너와 월급을 몽땅 가져갔다. 맏딸이 한 달 동안 못먹고 못입어가며 극강의 노동으로 번 돈을 가져다다 동생들을 먹이고 공부시켰다. 그 때 그 동생들이 지금 누나한테 잘해요? "자기들 살기 바쁜데... 뭐 그런걸 바라나요?" 그렇게 십수년을 공장에서 일하다가 같이 일하던 동료를 남편으로 만난 것은 그래도 행운이었을까? 어릴 때부터 고생은 타고난 것처럼 줄곧 하다가 겨우 시집을 갔는데, 이제는 살림하고 아이를 낳고 키우면서 또 계속 일하는 삶이다. 같이 커가는 형제자매들이 많아서 고통받는 삶이었는데 또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는다. 그 아이들이 배곯지 않고 공부할수 있도록 또 소처럼 일한다.
야학에서 <시간의 흐름>이라는 단원을 공부하며 "어릴적 꿈이 무엇이냐"를 이야기 해보려다가 뜻하지 않게 접어든 이야기다. "어릴 때 꿈이고 뭐고 그런거 생각해보지도 않았어요" "그래도 뭔가 바라는 게 있었을 거 아닙니까? 돈을 많이 벌겠다든지, 멋진 남자랑 결혼을 한다든지..." "그런 생각 자체가 없었어요. 그냥 일하라면 일하고" 먹을게 있으면 먹고, 없으면 굶고..." 나와 나이차도 크게 나지 않는 J의 옛이야기에 과장이 보태져 있었을까? 가난은 나이와 세대를 봐가며 덮치는게 아닌가보다. 공부는 사치였고, 이제서야 그 사치를 누리려 하니 몸과 마음이 안 받아준다. 야속한 세월이다.
간단히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