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왕과 사는 남자>를 보고
<왕과 사는 남자>를 보고 왔다. 명절연휴 끝날의 CGV에는 빈 자리가 하나도 없었다. 영화관에 사람이 가득찬 걸 보는건 오랜만이다. 하기사 나도 친구들과 함께 다섯명이나 보았으니... 이사람 저사람 울었다는 얘기를 많이 들어서 손수건을 꼭 쥐고 있었으나 쓸 일은 없었다. 어느 대목에서 울어야 할 지도 모르겠는데, 옆자리에 앉은 친구는 연신 눈물을 훔쳐댔다. 왜 그렇게 울었냐?고 물으니 내 원래 잘 운다! 그러네. 나는 걔가 우는 걸 처음 봤다. 아마도 갱년기가 왔나보다.
대체로 영화에 집중하지 못했던 것 같다. 제목은 왜 왕과 '사는' 남자일까? 왕이랑 한 마을에 살면 같이 살았다고 표현하는 걸까? 밥을 나눠 먹었다고 살았대는 건가? 아니면 왕은 죽고 저는 살았다고 사는 남자인건가? 툭하면 나타나는 호랑이는 왜 그렇게 멍청하게 생겼지? 호환과 마마가 무섭다는데 그 동네 사람들은 호랑이에 직전 상감마마까지 두려운 존재 땜에 힘들었겠다 싶기도 하고... 태산이는 엄마가 없나? 이러다가 그 왕도 태어나자 마자 엄마가 죽었다는데, 그래서 친해졌나 싶기도 하고, 쓸데없는 생각이 많았다.
조선시대 사람들은 어떤 말을 썼을까? 내가 지금 그 시대로 돌아가면 말을 잘 알아들을까? 사극에 나오는 사람들이 현대말을 쓰니까 재밌기도 하다. 그때도 "씨발"이라는 욕이 있었을까? 스터디에서 <우리말의 역사>라는 과목을 맡게 된 부담이 이상하게 발현된 것일까? 한명회에게 대놓고 모욕을 당한 이홍위가 분해서 숙부인 금성대군에게 편지를 쓴다. 한자로 죄 쓰니까 잘 모르는데, 처음에 쓴 叔夫는 읽을 수 있겠더란 말이지. 근데 숙부를 저렇게 쓰나? 의아했다. 叔父 아닌가? 나중에 찾아보니 叔父가 맞다. 비싼 돈 들여 영화 찍으면서 확인 안하나? 영화 보면서도 오자나 발견하고 앉았으니 손수건 쓸 일이 없지.
우리나라 사람들은 참 정이 많다. 그 찢어지게 가난한 산골 사람들이 이홍위가 밥을 다 먹었다고 하니 박수를 치고 기뻐한다. 짧게 재임하다가 비극적은 죽음을 맞이해서 '단종'이라는 이름이 붙었겠지? 그 시신을 거두어서 장례를 치러주었다는 엄홍도의 기록이 이 영화를 만들었다. 다섯줄밖에 안 되는 기록을 갖고 이렇게 탁월한 상상력을 발휘하니 부럽긴 하다. 금성대군과 이홍위가 "백성들을 위해" 왕위를 되찾겠다고 결심하는 설정은 어설프다. 문종 때나 단종 때나 세조 때나 백성들 힘들기는 매한가지 아니겠는가? 그때는 누가 행복하게 살았을까? 왕도 백성도 다 불쌍하기만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