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라움의 홍수속에 빠져버린 날

긴츠 질발로디스 감독의 라트비아 영화 <플로우>

by 박나무


어찌 이제야 플로우를 봤을까


오늘의 잇츠시네마는 라트비아 영화감독 긴츠 질발로디스가 만든 <플로우>. 고양이(러시안 블루)가 주인공인데, 인류가 멸망한 세상에서 홀로 지내다가 대홍수를 만난다. 계속 물이 차오르는 가운데 익사직전에 떠다니는 배를 한 척 만나 구사일생으로 살아난다. 카피바라가 타고 있던 배였는데, 누군가 올라타도 그런가보다 하며 개의치 않고 곁을 내준다. 정처없이 떠돌다가 알락꼬리여우원숭이도 태운다. 고양이에게 호의를 베풀다가 무리에게서 배척당한 뱀잡이수리도 합류한다. 어쩌다가 들개들 무리에서 낙오한 래브라도리트리버도 태워준다. 홍수로 물이 넘쳐날 때 최강자 고래가 종종 등장해 고양이를 돕는데 퍽 무섭게 생겼다.


고양이와 동물들만 등장하는 이 영화에 사람이라곤 그림자도 나오지 않는다. 집과 큰 유물들이 보이긴 하나 사람은 씨가 말랐다. 그렇다고 동물들이 월트디즈니에서처럼 인간의 말을 하지도 않는다. 그저 저마다의 울음소리와 눈빛과 몸짓만 있을 뿐이다. 서로의 말을 이해하지 못할텐데, 표정과 제스처로 잘 통한다. 나는 걔들과 어울려 함께 여정을 떠난 상태. 물 속에 있을 땐 같이 숨을 참아야 했고, 이것저것들에 쫓길 때는 함께 도망가는 것처럼 숨이 차올랐다. 뭣도 모르고 우루루 쫓아 몰려다니는 개떼들이나 반짝이는 것에 사족을 못쓰는 원숭이는 꼭 누군가를 보는 것 같았다. 인류가 멸망한 세상에서는 날아다니는 새들이 가장 고등해 보였다. 세상을 멀리 보며 관조한다.


사람이 모르는 게 많으면 놀라운 것도 많다. 이 영화를 만든 질발로디스가 1994년생이라는 데서 놀라운데, 영화를 함께 보며 해설해 준 김찬휘 녹색당 대표가 1965년생이라는 것도 놀랍다. 한 명은 너무 젊어 놀랍고, 한 명은 생각보다 나이가 많아서 놀랍다. 나이에 대한 선입견 같은 건 이제 낡은 생각인가보다. 94년생은 이미 사회의 주축이고, 65년생도 아직 생생하다. 김찬휘 대표님의 해설이 너무 좋아서 영화처럼 몰입했더랬는데, 알고보니 몹시 유명한 학원강사였대. 그러다가 지금은 사회운동에 투신하신 드문 케이스. 잇츠시네마에 함께하고나서부터 지금까지 초대된 분들중에 최고였다고 하면 지나간 분들이 실망하려나? 최고는 늘 갱신되는 거니깐... 아무튼 그랬더란 말이다.


애니메이션인데, 오픈소스 무료 프로그램인 '블렌더' blender.org 만으로 영화를 제작했다는 것도 놀랍다. 그림을 직접 그린게 없다네. 그림을 안 그리고 애니메이션이라니, 섹스 없는 회임과 비슷하고나. 아무튼 그렇게 만든 영화가 애니메이션임에도 불구하고 나는 실사영화를 보는 것처럼 집중했다. 이런 영화가 있다는 것도 모르고 지내왔다니, 명색이 환경교육사로서 부끄럽다. 환경문제 특히 기후위기에 관심있는 분들, 아니 관심없는 분들도 함께 보고 얘기 나눠보면 좋을 것 같은 영화다. 우리나라에서도 17만명이나 보았다고 한다. 전세계 각종 영화제에 75개 부문에 후보로 올랐는데, 60개의 트로피를 거머쥐었다지. 멋지다. 영화로 인한 놀라움이 홍수처럼 밀려든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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