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웅과 함께 달려 업적을 빛낸 명마
역사 속 뛰어난 영웅들의 일대기를 살펴보면 그들은 어릴 때부터 남다른 기질을 보였다. 명석한 두뇌와 정확한 사리분별력, 강력한 리더십과 동시에 인간적인 면모를 갖고 있던 사람들이었다. 그들이 후대에 영웅이라고 불리게 된 데는 비단 그들이 가진 능력 때문만은 아니었다. 많은 조력자들이 있었고 특히 전쟁에서 큰 승리를 거둔 영웅의 경우에는 그들의 발이 되어 함께 달린 명마가 있었다.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말은 이름을 남긴다고 했던가? 영웅과 함께 더욱 유명해진 역사 속 명마를 알아보자.
삼국지에서는 적토마에 대해 하루에 천 리를 달리고 잡털 없이 온몸이 붉은 전설적인 명마라고 이야기한다. 사실 적토마는 동탁의 말이었지만 동탁이 여포를 자신의 편으로 만들기 위해 선물로 주었다. 그리고 나중에 조조에 의해 여포가 죽은 후 조조가 관리를 하다가 관우의 마음을 돌리기 위해 적토마를 선사했다. 적토마는 그동안 많은 주인을 만났고 또 그들이 죽어가는 모습을 보기도 했지만 관우를 진정한 주인이라고 생각했는지 관우가 죽은 후 단식을 하며 결국 따라 죽었다고 전해진다.
중국 명마를 얘기할 때 관우의 적토마와 항우의 오추마가 빠지지 않는다. 호수에 내려와 사납게 굴던 용이 말로 변해서 날마다 난동으로 부린다는 소문에 항우는 그곳을 찾아 오추마를 단숨에 제압하고 말 등에 올라타 굴복시켰다. 그렇게 항우와 오추마의 첫 만남이 시작됐고 죽을 때까지 함께했다. 천 리를 달리는 오추마는 항우와 함께 많은 전투에 참여했는데 항우의 마지막 전투에서 결국 패하고 자결하자 그 모습을 본 오추마는 슬피 울다가 스스로 강에 뛰어들어 죽었다는 충직한 말로 전해진다.
우리가 알렉산더 대왕이라고 알고 있는 알렉산드로스 애마의 이름은 부케팔로스였다. 두려움을 극복하는 자가 세계를 정복할 수 있다며 11년간 유럽과 아프리카, 아시아 대륙에 걸친 대 제국을 건설한 알렉산더 대왕이 12살 때 부케팔로스를 처음 만났다. 당시 부케팔로스는 매우 사나운 말이었다. 누군가 등에 오르기만 하면 사람을 떨어뜨리고 발길질을 해가며 난동을 부리기 일쑤였는데 이때 12살이었던 알렉산더 대왕이 부케팔로스에 올라타 다소곳하게 만들었다. 첫 만남 이후 그 둘은 늘 함께했으며 이후 히다 스페스 전투에서 부케팔로스는 전사한다. 알렉산더 대왕은 정복전쟁에 함께했던 부케팔로스를 추모하기 위해 ‘알렉산더 부케팔로스’라는 도시를 건설했다.
프랑스령의 외딴 섬 출신에 체구는 작았지만 나폴레옹은 ‘내 사전에 불가능이란 없다’라는 신념과 명석한 두뇌로 30대 초반 프랑스 황제로 등극해 유럽 절반을 제패했다. 정복지에서 온갖 말을 전리품으로 취했던 그에게 가장 사랑받았던 마렝고는 이집트산 순혈종의 아랍마로 작지만 용맹하고 튼튼했다. 중요한 순간을 함께하며 나폴레옹과 여러 역사를 써 내려갔는데 나폴레옹의 마지막 전투였던 워털루 전투까지 그를 지켰다. 하지만 나폴레옹이 패전하고 난 후 영국에서 종마로 38살까지 살다가 죽게 된다. 마렝고의 골격은 현재 영국 국립 군사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다.
사실 돈키호테는 역사 속 인물은 아니다. 세르반테스가 만들어낸 소설 속 주인공이지만 돈키호테는 40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책과 그림, 영화, 만화, 뮤지컬 등을 통해 전 세계 사람들에게 사랑받아 왔다. 시골에 살던 가난한 귀족이었던 돈키호테는 기사 소설 이야기에 심취해 자신이 중세의 기사가 됐다는 착각에 빠지면서 그의 말, 로시난테와 산초 판사와 함께 모험을 떠나는 이야기다. 로시난테는 형편없는 말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지만 돈키호테와의 분신과도 같았다. 남들이 미쳤다고 손가락질했지만 로시난테는 묵묵히 돈키호테를 따랐다. 스페인 마드리드의 에스파냐 광장에 가면 돈키호테와 로시난테의 동상도 볼 수 있다.
조선 왕조의 시작에 태조 이성계가 있었다. 이성계에게는 여덟 마리의 준마라는 뜻의 팔준마가 있었다. 팔준마 덕분에 숱한 전쟁에서 승리를 이끌고 나라까지 세우게 됐다. 그 8마리의 말 중에서 이성계가 가장 아꼈던 말은 유린청으로 함흥산, 해주 전투를 비롯해 운봉에서 왜구를 물리쳤을 때도 함께 했다. 뒤로 가는 법은 몰랐는지 후퇴 없이 늘 이성계와 앞에서 전쟁을 승리로 이끌었던 유린청은 전쟁 시 화살을 3번이나 맞았지만 31년을 살았다. 이성계는 자신과 함께 수많은 전쟁터를 누빈 유린청을 위해 석관을 짜서 묻어주기도 했다.
씩씩하고 굳센 기상을 지닌 국가, 고구려를 세운 주몽은 부여의 금와왕과 유화 부인 사이에서 태어났다. 유화부인이 정식 왕비가 아닌 탓에 주몽은 어린 시절부터 다른 왕자들에게 수많은 괴롭힘과 죽음의 위협을 받아 왔다. 이런 주몽에게 금와왕은 말을 기르는 일을 시켰고 주몽은 힘이 좋고 날쌘 말에게는 먹이를 조금씩 주어 살이 빠져 볼품없게 만들고 늙고 병든 말에게는 살을 찌워서 겉으로만 반지르르하게 만들었다. 금와왕은 보기 좋은 말은 자신이 가져갔고 볼품없어 보였던 말은 주몽에게 하사했다. 이 말의 이름은 전해지지 않고 있지만 주몽과 함께 몸과 같이 호흡하며 부여에서 탈출했고 결국 어린 나이에 고구려를 세우게 된다.
미국의 100대 영웅에 선정된 말이 있다. 바로 레클리스라는 말로 6·25 전쟁 당시 탄약과 무기를 수송하는 임무를 훌륭하게 수행해 하사 계급도 수여받았다. 원래 경주마였던 레클리스는 1952년 미국 해병대에 입대 후 총알과 포탄이 쉴 새 없이 날아오는 전쟁터에서 무거운 탄약 더미를 부지런히 날라 임무를 완수해 고랑포 전투에서 미 해병 1시단과 UN 군을 살렸다. 특히 어떤 곳이든지 한두 번만 함께 가면 그 뒤는 알아서 갈 정도였고 적의 사격이 시작되면 사격이 끝날 때까지 엎드려 기다리는 등 매우 영리했다. 1953년 연천군 장남면 지역에서 활약했고 미국으로 돌아간 후 1960년 미국 해병대에서 엄숙한 군 장례식이 치러졌다.
조조에게는 여러 말이 있었는데 그중 가장 사랑받았던 말은 적토마의 한 종류인 ‘절영마’이다. 위나라의 정사를 기록한 문서에 보면 너무 빨라서 그림자가 생길 틈조차 없다고 묘사되어 있다. 그 정도로 조조의 절영은 매우 빨랐으며, 도저히 못 따라올 정도로 빠르다는 뜻의 절영은 아시아 지방의 말이라고 전해진다. 밤에 야간 공격을 받은 조조는 절영을 타고 도망가는데 화살을 여러 대 맞고도 조조를 태운 채 계속 달리다가 결국 눈에 화살을 맞고 쓰러지고 말았다.
반란을 진압해 얻게 된 적로를 조운은 유비에게 주었다. 하지만 사람들은 이 말이 이마에 있는 흰점, 눈 밑의 눈물샘이 크기 때문에 주인을 해하게 하는 흉마라고 하며 타지 말라고 했지만 유비는 그런 말로 자신의 인생이 변하지 않는다고 생각하면서 적로를 자신의 애마로 여긴다. 한나라 말, 유표의 처남인 채모가 자신을 죽이려는 사실을 전해 듣고 적로와 함께 도주하지만 거센 물살의 강을 마주하게 된다. 유비는 그날이 자신의 마지막 날이라고 생각했지만 적로는 죽을힘을 다해 거센 물살을 가른 채 강을 건너 유비와 자신의 목숨을 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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