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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데일리 Mar 07. 2019

사랑앞에 당당했던 유명인

사랑에는 한계가 없다

지난 15일 서울시청 앞 서울광장에서 퀴어 문화축제가 열렸다. 올해로 18회 번째 열린 이번 축제에는 종교와 국가를 뛰어넘어 한마음으로 모인 시민들로 가득했다. 따듯한 눈길로 성소수자들을 응원하는 목소리가 점차 높아지고 있다. 그렇다면 과거에는 어땠을까? 지금보다 훨씬 동성애에 대한 편견이 강했던 시대, 사랑 앞에 당당했던 역사 속 인물들에 대해 알아보자. 

소크라테스


누구나 한 번쯤 들어봤을 “너 자신을 알라!” 라는 말로 유명한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 소크라테스. 그는 크산티페라라는 아내가 있었지만 동시에 미남 제자 알키비아데스와 연인 사이였던 동성애자였다. 소크라테스는 특히 미소년들을 곁에 두길 좋아했는데, 지금과 달리 고대 그리스에서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양성애자로 살았기 때문에 소크라테스의 동성애는 어느 정도 받아들여졌다고 한다. 그에게 있어 동성애는 쾌락주의적 육체적 사랑이 아닌 그들과 진한 우정을 나누는 ‘플라토닉 러브’ 적 사랑이었다.

플라톤


소크라테스의 제자였던 플라톤이 살았던 고대 그리스에는 여성을 얕보는 문화가 지배적이었고 따라서 남성 간의 동성애가 자연스럽게 성행하게 되었다. 이를 대표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플라톤의 동성애 예찬론인데 그가 남긴 말은 지금까지도 유명하게 전해져 온다. 지성인으로서 “여자와 동침하면 육신을 낳지만 남자와 동침하면 마음의 생명을 낳는다”라고 강조했던 플라톤은 동성애를 인간이 가질 수 있는 가장 고차원적인 형태의 사랑으로 여겼다. 

레오나르도 다빈치


르네상스기를 대표하는 화가이자 발명가, 건축가였던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상당히 비밀스러운 사람으로 그의 사생활에 대해서는 별로 알려진 바가 없다. 다만 그는 24살 때 17살 소년과 동성애 관계였다는 죄목으로 기소되어 수감된 적이 있고, 그의 제자들 사이에서 “스승님이 남자를 좋아한다”라는 사실은 공공연한 비밀이었다. 이에 따라 희대의 걸작이라고 불리는 다빈치의 작품 모나리자가 남자일 것이라는 음모설 또한 그가 동성애자라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등장하게 된다. 

미켈란젤로 


르네상스 시대 대표적인 화가로 회화, 조각, 건축 등의 분야에서 뛰어난 작품을 남겼던 미켈란젤로 또한 ‘플라토닉 러브’에 가까운 동성애를 했던 역사 속 인물 중 한 사람이다. 그는 주로 소크라테스처럼 아름다운 남성에 대한 탐미적인 시선을 보냈으며, 그가 지은 대부분의 시는 젊은 미소년들에게 보내기 위한 연시였다. 미켈란젤로의 작품을 들여다보면 남자를 사랑한 남자로서의 그의 취향이 중심적인 역할을 차지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안데르센


모두가 한 번쯤 읽어봤을 필독고서 <미운 오리 새끼>, <성냥팔이 소녀>, <벌거숭이 임금님>, <인어 공주> 등 수많은 작품을 남긴 덴마크의 동화 작가 안데르센 역시 동성애자로 알려져 있다. 안데르센은 역사에 길이 남을 많은 동화를 썼지만 훗날 ‘어린이 혐오자’로 밝혀져 충격을 줌과 동시에, 여러 작품에서 나타났던 지고지순한 이성애와 반대되는 동성애자였음이 드러나며 놀라움을 안겼다. 

셰익스피어


영국이 낳은 세계적인 극작가 셰익스피어는 아직 뚜렷하게 밝혀진 것은 없지만 호색한에 난봉꾼인데다가 양성애자라는 논란이 끊이지 않는다. 그는 앤 해서웨이와 결혼했지만 20년 넘게 그녀와 별거를 했으며 자신의 묘비 옆에 아내를 묻지 못하게 하기도 했다. 그의 희곡에서는 동성애에 대한 직접적인 언급은 없었지만, 훗날 출판된 셰익스피어의 시에서 아주 매혹적이고 아름다운 청년을 대상으로 한 것으로 해석되며 지금까지도 그의 동성애적 성향에 대한 논의가 뜨겁다.

나이팅게일


나이팅게일은 어릴 적부터 소년 같은 톰보이의 기질이 있었고, 마리안느 니콜손이라는 여자 사촌을 사랑했다. 니콜손에 대해 나이팅게일은 ‘일생에 정열적으로 사랑한 단 한 사람’ 이라는 절절한 표현을 하기도 했다. 그러나 니콜손의 친 오빠가 나이팅게일에게 애정을 갖고 청혼을 했고, 나이팅게일이 거절하자 둘의 사이는 틀어지고 만다. 이에 니콜손의 이별 선언에 충격받은 나이팅게일은 간호사가 되기로 하고 평생을 사회봉사에 전념하고 살게 되었다.

차이코프스키


슈베르트, 헨델 등 동성애자로 알려진 음악가는 많지만 그중에서 가장 널리 알려진 음악가는 바로 차이코프스키다. 어렸을 적부터 예민한 감각을 가지고 뛰어난 음악적 재능을 가졌던 차이코프스키는 사회적 통념을 중시해 자신을 사랑했던 한 여학생과 결혼했지만 그의 결혼 생활은 순탄치 않았다. 아내의 끊임없는 성관계 요구에 괴로워하던 차이코프스키는 자살을 기도할 정도였으며, 고통 속에서 그를 구원해 준 건 14살 조카 봅과의 플라토닉적 사랑뿐이었다. 

알렉산더 대왕


세계정복을 코앞에 두고 33살의 나이에 죽음을 맞이한 알렉산더 대왕은 남성을 사랑한 군인으로 역사상 가장 널리 알려져 있다. 물론 그는 결혼했지만 정략적인 차원일뿐이었고, 그의 일생의 사랑은 어릴 적부터 함께한 동료이자 상당한 미남으로 알려진 헤파이스티온이었다. 첫사랑이자 평생의 사랑이었던 헤파이스티온이 죽었을 때 알렉산더 대왕은 미친 듯이 괴로워했고, 그를 살려내지 못한 의사를 십자가에 못 박아 처형시킬 정도였다. 

앤디 워홀


미국 팝아트의 선구자로 대중미술과 순수미술의 경계를 무너뜨리고 예술 전반에서 혁명적인 변화를 주도했던 앤디 워홀. 20세기 가장 영향력 있는 미술가 가운데 하나로 평가될 만큼 그는 살아생전 엄청난 부와 명성으로 많은 미녀와 염문을 뿌리기도 했다. 그러나 앤디 워홀은 실제로 동성애자였으며 아름답고 부유한 미인들, 할리우드 스타들은 단순히 자신의 작품을 위한 모델로서 선호했을 뿐, 남성 육체를 주제로 한 아트북을 출간하거나 노골적인 남자 누드 사진을 찍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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