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Genie May 16. 2021

죽음

1. 친구와 카페에 앉아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죽음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어요. 친구 지인의 아버지가 죽음을 앞에 두고 계시다는 이야기였어요. 저는 친구 지인과 그 아버지가 죽음을 향해 다가가는 시간들에 대해 그 어떤 말도 덧붙일 수 없어서, 그저 죽음에 대한 제 생각을 중얼거릴 수밖에 없었어요.  

예전에는 죽음에 도달하는 과정이 너무 고통스러울까 봐, 심지어 죽는 것에 성공하지도 못하고 스스로 죽음을 선택할지 못할 정도의 장애만 남게 될까 봐 죽지도 못한다고 생각했었어요.

그런데 지금은요. 나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나의 죽음 앞에서 너무 오래 슬퍼할까 봐, 너무 오래 울까 봐 죽지 못한다는 생각이 들어요.

저는 제가 우연한 사고로 언제든지 죽게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하며 살아요. 그래서 정말 죽음을 인지한 순간에는 큰 미련이 없을 것 같아요. 하고 싶은 거 다 하면서 재밌게 살았거든요.  다만 나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아파할 게 눈에 밟혀서 펑펑 울게 될 것 같아요.

내가 만약 나의 장례식에 온 사람들에게 나의 말을 전할 수 있다면 꼭 이렇게 말해주고 싶어요.

"나는 너무 재밌게 살았어요. 더 즐길 수 없어서 아쉽지만 놀만큼은 다 놀았어요. 그러니 나를 그리며 너무 많이 울지는 마요. 몇 년 먼저 간 것뿐이에요. 하늘에서 기다릴게요. 곧 다시 만나서 수다 떨어요."

잠자코 듣고 있던 친구가 갑자기 울음을 터뜨렸어요. 그리고는 "취소 취소"라고 하라고 했어요. 그래서 제가 "취소 취소"라고 두 번 말하면 안 말한 거랑 같지 않냐고 했어요. 제가 친구 속은 잘 뒤집는 편인 것 같아요.

2. 친구 지인의 아버지 이야기에 관련하여 생각난 이야기가 하나 있어요. 옛날에 책이었나 유튜브였나, 철학자에게 고민 상담을 하는 콘텐츠를 본 적이 있는데요. 투병 생활을 하고 있는 젊은 청년이 결국 자기는 죽게 될 것 같은데, 자기로 인해 가족들이 돈과 시간, 심리적 고통까지 삼중고를 겪고 있는 것 같아 괴롭다고 고민상담을 했어요.

오래전에 본 거라 철학자가 누구였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지만 그의 답변이 꽤나 인상적이었어서 기억나는 대로 적어볼게요.

“당신이 투병 생활 때문에 너무 고통스러워서 ‘그만 살고 싶다.’라는 고민이라면 이야기가 달라지겠지만, 당신 때문에 힘들어하는 가족들 걱정에 ‘그만 살고 싶다.’라는 고민이라면 숨이 붙어있을 때까지 버텨주세요. 당신이 이 세상에 일 분이라도 더 존재하기를 간절히 바라는 사람들이니까요. 정말로 당신 말고 가족들의 고통을 먼저 생각하는 거라면, 많이 힘드시겠지만 하루라도 더 살아주세요.”


“이별에 다가가는 과정을 갖지 못하고 갑자기 떠나버리게 되는 사람들도 정말 많습니다. 지금 당신에게 주어진 시간들이 어떤 의미여야 하는지 생각해보면 좋을 것 같아요.”

하루에 한 두 개씩은 갑자기 세상을 떠나게 된 안타까운 죽음에 대한 기사나 소식을 접하게 되는 것 같아요. 그래서 죽음에 대한 글을 쓴 김에 위의 첫 번째 글을 제 인스타그램에 올려두었어요. 언니, 남동생, 가족과도 같은 친구들이 볼 수 있게 말이에요. 이런 말을 전해볼 기회가 없을 수도 있었는데, 제가 그 기회를 만들어둔 것 맞죠?

3. 얼마 전에 장기기증에 동의하는 서명을 했어요. 그간 망설였던 이유는 장기기증 사후 처리가 잘 안 된 사례에 대한 기사를 봤었기 때문인데요. 제가 정말 운이 좋게도 건강하게 태어났고 제 장기들이 아직 기능할 수 있을 때, 영혼이 육신을 떠나게 된다면 제 일부분들이 간절히 기다리는 누군가에게 기적과도 같은 희망이 될 수 있다는 생각에 그만 망설이기로 했어요.

그런데 차마 제사와 성묘를 무척이나 중요시 여기는 안동 김 씨 장남 아버지에게는 말을 못 하겠더라고요. “당장 취소 안 해!”라고 성을 내면서 취소할 때까지 전화를 할 것 같거든요. 그래서 가족들 몰래 서명을 했는데, 장기기증 서명 관련하여 받은 우편물에서 가족이나 지인들에게 알려두라고 하길래 이 소식도 인스타에 올려두었어요. ‘아직 엄빠한테는 말하지 마라~’하면서요.

제 몸이 해부되고 분해된다는 생각을 하면 무섭지 않은 건 아닌데요, 제가 생각하는 사후세계가 제 시체의 모습으로 돌아다니는 사후세계는 아닐 것 같아서요. 너무 깊이 고민하고 상상해서 너무 크게 겁내지는 않기로 했어요.

저는 까먹는 걸 잘해요. 그래서 아마 장기기증 동의에 서명했다는 사실조차 자연스레 잊고 살아가게 될 거예요. 언젠가 제가 30살에 해놓은 이 서명 때문에, 누군가에게 어쩌면 여러 명의 누군가에게 삶의 새로운 시작이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면 기분이 오묘해져요.

또 무슨 생각을 했냐면요. ‘장기를 아껴 써야겠다.’ 지금은 내가 쓰고 있는데, 나중엔 누군가가 써야 하니까 기왕 수술하시는 거 최대한 쌩쌩한 거 받으시면 좋잖아요. 그래서 식단도 좀 건강하게 하고, 운동도 꾸준히 하고, 술도 줄이고 그래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아이러니하지 않나요? 죽음에 대해 생각하다 보니 결국 치밀하고 빼곡하게 잘 살아야겠다는 결론으로 수렴한다는 게요.

4. 아무튼 오늘은 죽음에 대해 제가 갖고 있는 생각들에 대해 하나하나 꺼내봤어요. 오늘도 제 글을 읽어주셔서 감사해요. 이 글을 읽으신 저의 소중한 브런치 독자님들은 죽음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가지고 계신지 정말 궁금해요. 댓글로 좀 알려주세요.

그럼 내일도 재밌게, 행복하게, 웃으며 사세요. 우리 언제 죽을지 모르잖아요~

작가의 이전글 [야학봉사일지]5. 서로가 서로에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