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웃 학교 친구들과 경로당 버스킹
우리동네 나의손주
교무실에서도 얼마나 좋았는지 자꾸 중얼거리는 저를 보곤 2학년 선생님께서 제안하셨습니다.
"12월에 엄마들이랑 케이크 만드는 수업하고 경로당도 좀 갖다 드릴까? 간 김에 애들 우쿨렐레도 좀 치고 오고."
저는 좋아서 씩 웃었습니다.
이웃 학교 친구들과 함께 우리 마을 경로당 버스킹을 약속한 날, 야속하게도 새벽부터 비가 추적추적 왔습니다. 차갑고 축축한 창밖을 내다보며, 할머니들이 약속한 오후 1시에 경로당에 모이실 수 있을지 걱정이 들기 시작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이들과 저는 이웃학교 친구들과 함께 하는 경로당 버스킹을 준비하며 분주한 아침을 시작했습니다. 미리 포장해 놓은 선물을 정리하고, 단체로 산 머리띠 개수도 확인하고, 경로당 버스킹 무대도 연습했습니다. 어쩌면 해가 높이 뜨면서 이 모든 축축함을 반전시킬 수도 있다는 기대를 하면서요.
오후 12시 30분, 여전히 세상은 차갑고 축축하고 제법 어두웠습니다. 우리는 주차장 처마 밑에서 추적추적 내리는 비와 함께 오석초, 수회초 친구들이 타고 올 노란 버스를 기다렸습니다. 친구들이 도착하자마자 준비해 둔 선물을 건네며 환영인사를 했습니다. 우석초, 수회초 아이들은 분주하게 짐을 챙겼습니다. 버스 트렁크에서 별게 다 나오더군요. 북도 나오고, 징도 나오고, 바이올린도 나오고, 기타도 나오고, 우쿠렐레도 나왔습니다. 아이들은 왼쪽 어깨에 기타, 오른 어깨에 바이올린을 메고 양손에 악보를 들며 모든 짐들을 끙차 끙차 챙겼습니다.
경로당으로 가는 길, 신호등 초록불을 기다리며 오석초 아이들이 말했습니다.
"아니, 여긴 학교 앞에 편의점이 2개인데요. 이 정도면 시골 중에 강남 아닌가요?"
"그러네, 은행도 있고 편의점도 2개면 뭐 거의 시내지."
그 모습이 귀여워서 쿡쿡 웃었습니다.
내리는 비를 맞으며 경로당으로 가는 길에 이 아이들이 이렇게까지 여러 악기를 들고 가고 있는데 제발 관객분들이 많이 오셨길 빌었지만, 경로당에 도착하니 할머니가 세 분 밖에 안 계셨습니다. 아이들이 열일곱 명인데, 이걸 어쩌나 참 난처하던 참에 할머니들이 신니면 주민 전화번호부를 탁 펼치셨습니다.
"어디여!!"
"김장 담그려고 순이네 모여있어!"
"지금 거기 있는 할매들 경로당으로 다 와. 오늘 애들이 공연해 준다고 온다 했잖여!"
"알았어!"
"왜 안 와!"
"지금 가는겨."
"아이 애들 온다 했으면 미리미리 와있어야지, 이 양반이 참."
"코 앞이여~"
그렇게 할머니들의 지원으로 저희가 공연을 준비하는 동안 동네 할머니들이 한 두 분 모이기 시작했습니다. 공연을 시작할 즈음엔 경로당 소파를 가득 채울 정도로 할머니들이 많이 모이셨습니다.
아이들은 그간 방과 후 시간과 음악 시간에 연습한 각종 재능을 펼치기 시작했습니다. 기타도 치고, 바이올린도 켜고, 사물놀이도 하고, 우쿨렐레에 맞춰 노래도 부르고, 춤도 췄습니다. 작은 공연장에 온 기분마저 들었습니다.
다채로운 공연이 펼쳐지는 동안 사람들의 얼굴을 봤습니다. 꽹과리를 들고 사물놀이 공연을 주도하던 오석초 남학생의 얼굴은, 긴장감으로 시작하더니 이내 공연을 즐기는 호기로움으로 바뀌어있었습니다. 몰아치는 장단과 함께 공연 말미엔 우쭐함도 떠오르더군요.
아이들의 바이올린 소리를 듣는 할머니의 얼굴도 봤습니다.
'요즘 애들은 별 걸 다 할 줄 아네.'
제법 작은 손으로 몇 개의 줄을 잡아 여러 소리를 내는 아이들의 제주에 감탄과 기특함이 얼굴 가득 차올랐습니다.
할머니들과 아이들의 얼굴을 보던 제 마음엔 미묘한 벅참 같은 게 차올랐습니다. 아이들의 멋진 공연을 누군가가 보며 힐링하고, 아이들은 아이들 나름대로 자기 공연을 뽐내며 뿌듯해하는 그 모습들을 보면서 기뻤습니다. 장소가 경로당이라는 것도 좋았고, 꼭 또 와달라던 할머니들의 부탁을 들어드린 것에 대한 뿌듯함도 있었습니다. 여러 간지럽고 뜨뜻한 감정들이 마음속에서 방실 방실 부풀어 올랐습니다.
공연이 끝나고, 마지막 인사를 드렸습니다. 아이들은 특유의 넉살로 외쳤습니다.
"할머니들, 건강하세요. 사랑해요!"
다 같이 단체사진을 찍고, 각자의 학교로 해산했습니다. 학교로 돌아오니 옆 반 선생님께서 물으셨습니다.
"경로당 버스킹 다녀오셨어요?"
"네, 애들 공연이 장난 아니었어요. 사물놀이도 엄청 잘하고, 노래도 엄청 잘 부르고, 완전 애들이 공연하는 데 무슨 공연장처럼..."
주절주절 거리다가 멈추었습니다. 질문은 짧은데 혼자 막 신이 나 떠들고 있는 내 모습을 자각한 순간이었습니다. 옆 반 선생님껜 좀 민망했고, 스스로는 반갑기도 했습니다. 만족스러운 교육활동을 하고 와서 한껏 신나 주절거리는 제 모습이요.
교무실에서도 얼마나 좋았는지 자꾸 중얼거리는 저를 보곤 2학년 선생님께서 제안하셨습니다.
"12월에 엄마들이랑 케이크 만드는 수업하고 경로당도 좀 갖다 드릴까? 간 김에 애들 우쿨렐레도 좀 치고 오고."
저는 좋아서 씩 웃었습니다.
후기를 금방 쓴다고 해놓고, 한 달이나 훌쩍 지나있습니다. 너무 좋았던 순간을 글로 쓰자니 자꾸 '고작 이거 밖에?' 이런 느낌이 들어서 썼다 지우고 썼다 덮었습니다. 그렇게 저만치 미뤄놓고 하루하루를 보내다 보니 벌써 한 달이나 흘렀습니다. 브런치는 성실하게 독촉 알람을 띄웠지요. 안 쓰면 그나마 있는 쓰기 근육도 다 빠진다고요.
같은 상황이라도 더 잘 써낼 수 있는 쓰기 근육을 가지신 분들이 무척 부럽네요. 어쨌건, 제가 느꼈던 좋은 감정들이 잘 전달되기를 바라며 이만 마칩니다.
몽실몽실 포근한 겨울 보내세요^_________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