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동네 나의손주
하지 않아도 될 교육임에도, 번거롭고 힘들 걸 뻔히 예상할 수 있으면서도 아이들에게 좋을 것 같으니까 다 덮어놓고 한 번 해보는 교사분들을 옆에서 지켜보며 이런 걸 희망이라고 하는 건가 생각합니다.
내일은 경로당 버스킹을 갑니다. 제 글을 읽어오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몇 달 전에도 갔었는데, 또 갑니다. 이번에는 우리끼리 가는 게 아닙니다. 충주 이웃학교 오석초, 수회초 친구들과 함께 갑니다. 17명의 아이들이 춤도 추고, 노래도 하고, 무려 사물놀이까지 합니다.
어쩌다 일이 이렇게 커졌냐고요? '소규모학교 공동교육과정'이라는 단어 들어보셨나요? 뭐 단어 자체가 직관적이라 해석하기는 어렵지 않습니다. 말 그대로 작은 학교끼리 교육과정을 같이 만들어서 운영해 보는 시도입니다. 아무래도 작은 학교는 새로운 친구 사귀기도 어렵고, 학생 수가 적어서 다양한 활동을 진행해 보기도 어려우니 뭉쳐서 더 잘해보자는 취지입니다.
'청주는 한다더라.'
'충주에서도 할 것 같던데?'
소문이 왕왕 들려오다가 교육청에서 소규모학교 공동교육과정에 대해서 소개해주는 연수에 갔습니다. 원래가 워낙 삐까뻔쩍하게 하시는 분들이 강의를 하러 다니시는 거잖아요? 사례를 보면서 "우와, 지금 하는 걸로도 바쁘니까 안 해야지." 마음을 먹었거든요. 그런데 며칠 뒤, 애들 야영 따라가서 트레킹을 겁나 하느라 허벅지가 덜덜 떨리고 있는 와중에 민주시민교육연구회 회장님께 전화가 옵니다.
"선생님, 소규모 공동교육과정 같이 하실래요? S선생님이랑 Y선생님이랑요. 책 한 권 같이 읽고 줌이나 패들렛으로 간단하게 활동 몇 개 하는 거 어떠세요?"
그때 말씀하신 선생님들 성함이 제가 존경해 마지않는 능력자들이었습니다. 엄청 배워보고 싶고, 이야기 많이 나눠보고 싶은 선생님들이요. 그래서 제가 대답했죠.
"겁나 좋습니다."
며칠 뒤 토요일, 네 명의 작은 학교 선생님들이 모였습니다. 분명 시작할 때는 '책 한 권 같이 읽고 줌이나 패들렛으로 간단하게 활동 몇 개 하자.'였잖습니까? 그런데 모이고 나니 이 사람들은 브레이크 고장 난 에잇 톤 트럭이었던 겁니다. 각자 해보고 싶은 걸 하나씩 말하다 보니 막 스케일이 커지기 시작합니다. 그런데 '힘들겠다, 부담스럽다.' 이런 감정이 드는 게 아니라 교사들끼리 주말에 모여 이렇게까지 많은 교육적 욕심을 쏟아내고 나눌 수 있다는 사실 자체가 막 신이 나는 겁니다. 그래서 입 닫고 선생님들께 많이 배우자고 결심했던 제 조동이까지 나불거려지기 시작합니다. 네 개의 브레이크 고장 난 입들이 열었다 닫혔다 하는 동안 우리의 소규모학교 공동교육과정이 실체를 드러내기 시작합니다.
프로젝트명 '열일곱의 걷기 클럽'
소설 '열세 살의 걷기 클럽'을 오마주 했습니다. 세 학교의 네 반 학생을 더하니 겨우 열일곱 명이었고, 열세 살의 걷기 클럽을 함께 읽고 '각자 학교의 마을을 거닐자.'는 취지로 이름을 짓게 되었습니다.
9월엔 패들렛으로 자기소개를 했고요, 10월엔 수회초에 가서 학교 주변 마을을 거닐며 미션 사진을 찍으며 새로운 추억을 쌓았습니다. 그리고 11월 16일 저희 학교 앞 경로당에 함께 모여 버스킹 공연을 합니다. 12월엔 오석초 주변 마을에서 함께 어울릴 예정이고요.
저는 언제라도 대충 할 준비가 되어 있었거든요. 그런데 10월 수회초에 초대받았을 때, 수회초 선생님들께서 준비를 뒤집어지게 잘하신 거죠. PPT도, 활동자료도, 미션 안내도, A부터 Z까지 뭐 하나 빠지는 게 없었습니다. 나름 이번 달은 우리 마을로 이웃 친구들을 초대하는 거기도 한데 아무렇게나 할 수는 없어진 거죠. 대충 했다가는 10월 수업 준비하신 선생님들 보기가 얼마나 머쓱하겄습니까.
아이들이랑 이웃 친구들과 경로당 어르신들께 드릴 선물을 열심히 준비했습니다. 겨울이니까 수면양말 두 켤레에 배를 뚠뚠하게 할 간식을 함께 담아 포장했지요. 관객분들 많이 오시라고 경로당 버스킹 홍보 포스터도 만들어서 경로당 입구에 붙여놨습니다. 공연 때 쓸 소품도 사두었고요. 엊그제는 경로당에 전화도 걸었지요.
"저 지난번에 찾아뵈었던 용원초 교사 김은진입니다. 혹시 저희가 입구에 붙여놓은 포스터 보셨나요?"
"봤쥬. 내일모레 온다구유?"
"네. 많이 좀 와주시라고 꼭 좀 얘기 부탁드려요."
"알겠어유~"
얼마 전에 음성에 있는 작은 학교에 마을연계교육으로 컨설팅을 다녀왔습니다. 마을교육활동가분과 선생님이 아이들과 함께 마을에서 90년 넘게 살아오신 할아버지를 인터뷰하고, 할아버지가 들려주신 장소에 찾아가 사진을 찍은 뒤 전시회를 여셨더라고요. 발표를 너무 인상 깊게 듣고, 아름다운 전시회 풍경에 마음이 찌릿찌릿하던 와중에 선생님이 그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내가 이렇게 노력한다고 해서 바뀔 게 있는지, 애초에 내가 이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는지."
제가 항상 하게 되는 고민이기도 해서 순간 마음이 쿵하고 내려앉는 기분이었습니다. 하지 않아도 될 교육이었지만, 결국엔 열과 성을 다하여 멋지게 해내는 선생님들이 얼마나 귀하고 중합니까. 이분이 부디 이 고민의 답을 찾지 못한 채 영영 헤매기를. 그래서 이 분의 열정 어린 교육의 수혜를 더 많은 학생들이 받게 되기를 바랐습니다.
공동교육과정을 함께 하는 선생님들께도 참 많은 걸 배우고 느끼고 있거든요. 하지 않아도 될 교육임에도, 번거롭고 힘들 걸 뻔히 예상할 수 있으면서도 아이들에게 좋을 것 같으니까 다 덮어놓고 한 번 해보는 교사분들을 옆에서 지켜보며 이런 걸 희망이라고 하는 건가 생각합니다.
내일 경로당 버스킹 신명 나게 잘해서 할머니들 기쁘게 해 드리고, 애기들도 뿌듯 뿌듯 열매 먹게 하고 오겠습니다.
후기 들고 돌아올게요. 투비 컨티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