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추우니까 할머니들한테 일회용 핫팩 말고 똑딱이 다회용 핫팩 드리는 건 어때요? 그럼 환경도 아끼고, 할머니들도 여러 번 쓰실 수 있으니까 좋을 것 같아서요."
"태희야, 이 노래(서희가 듣고 싶어 한 노래 나오는 중) 다음에 듣고 싶은 노래는 뭐야? 선생님 태희 언포기븐 듣고 싶대요."
"선생님, 다 못 푼 거 내일 아침 시간에 꼭 풀어놓을게요."
하루종일 네가 뱉은 단어들이 온통 예뻐서 당장이라도 메모장에다가 받아 적고 싶었다. 미천한 기억력이라 정신없이 하루를 보내고 저녁이 되니 네가 말한 많은 문장들이 휘익 사라진 기분이다. 그런데도 네가 할머니들의 겨울과 환경을 함께 걱정했던 순간, 네가 듣고 싶은 노래를 틀어주니 그다음 노래로 태희가 듣고 싶은 노래를 틀어달라고 했던 순간, 영어 문제집을 열심히 풀다가 다른 일정 때문에 불려 나가면서 내일 아침 시간에 꼭 풀어놓겠다고 약속하던 얼굴은 생생하게 기억난다. 기억이 날 때 잘 적어둬야지 싶어 피곤함을 이기고 키보드 앞에 앉았다.
서희 너에 대한 첫 기억은 "부모님한테 고마운 게 없는데 왜 편지를 써요?"라고 말하던 작년 수학여행에서 시작한다. 나는 그때 담임선생님께 삐딱하게 대꾸하던 너를 보고 '요즘 애들 드세다.'라고 생각했다. 올해, 나는 드세보였던 너의 담임이 되었고 나의 앞날이 어찌 될지 걱정 반 궁금 반이었다.
우리가 함께 하는 2023년은 빠르게 흘러, 이제 겨우 11월과 12월만 남았다. 요즘의 너는 너무너무 반짝이고 기특하고 예뻐서 중학교 선생님께 보내기 아까울 정도다. 서희 너는 어느 순간 마음을 먹은 듯 보였다. 좋은 방식의 사람이 되기로. 내가 느낀 게 맞는지 확인하고 싶어 물었다.
ㅡ서희야, 나는 네가 너무 많이 변한 것 같아. 좋은 방향으로. 계기가 있었어?
ㅡ그냥 착하게 살고 싶어 졌어요. 착하게 살다 보면 나중에 돌려받을 일이 있겠죠.
너는 평소 툴툴대는 말투 그대로 담백하게 대답했다. '그냥'이라 했다. 서희 너는 그냥 남들을 챙겨보려고 해 본다. 그냥 영어 공부도 열심히 해보려 한다. 그냥 마을 할머니들의 겨울을 염려하고, 그냥 내가 원하는 걸 얻고 나면 친구가 원하는 걸 얻게 되기를 바라본다. 실수해도 금방 인정하려 노력하고, 과거의 내가 만든 결과를 덤덤히 받아들이려 해 본다. 서희 너의 사고방식은 처음부터 끝까지 바뀌었고, 너무 세련되고 훌륭해져서 동네방네 자랑하고 싶을 때가 한 둘이 아니다.
나는 서희 너의 미래가 무척 궁금해지고 있다. 특유의 당돌함과 덤덤함과 반항끼도 매력적인데, 착하게 살고 싶어진 후로 보여주는 배려, 이타심, 노력도 반짝반짝 빛이 난다. 이제 겨우 몇 달 후면 '서희는 어찌 살라나.' 문득 떠올릴 사이가 된다는 게 아쉽고 또 아쉽다.
몇 달 만에 어느새 나의 보석이 된 서희. 오늘 네가 뱉은 단어들이 온통 예뻤다. 하루를, 이틀을, 일주일과 한 달과 한 해와 여러 해를 오늘같이 살아간다면 서희 너의 생은 얼마나 더 예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