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폴라로이드와 열심히 만든 손간판을 들고 길을 나섰다. 간판에는 '오늘을 찍어드립니다.', '가격은 고마워.'라고 적혀있다. 과연 오늘의 사진 가게에는 손님이 몇이나 들지, 사람들 반응은 어떨지 아무것도 예상하지 못한 채 겁도 없이 교문 밖으로 성큼성큼 걸었다.
가장 먼저 길 건너 보건소에 갔다. 건강검진을 하러 온 주민들과 직원들이 있었다.
"서희야, 뭐라도 해봐."
갑자기 너무 주눅이 들어서 서희를 쿡쿡 찔렀다. 믿을 건 서희 특유의 활발함 뿐이었다.
"안녕하세요~ 저희 용원초에서 왔는데요. 저희가 오늘 사진을 찍어드리는 이벤트를 하고 있어요. 가격은 고마워 고요. 이 폴라로이드로 찍어서 바로 드려요."
유일한 동아줄은 썩은 줄이 아니었고, 서희는 후루룩 우리가 누구이고 여기에 왜 왔는지 설명했다. 이토록 든든할 수가 없었다.
"아, 이거 꼭 찍어야 하는 거야?"
"꼭 찍어야 되는 건 아니고요."
"아, 싫어~ 나 사진 찍기 싫은데."
"의사 선생님 찍으라고 하자."
직원분들은 사진을 찍어준다는 말에 손사래를 하다가 의사 선생님께로 미뤘다. 우리는 졸지에 벌칙 같은 것이 되었고, 나는 망했다고 생각했다. 볼이 화끈했다. 우리는 물 밀리듯이 진료실로 들어갔다. 거기에는 앳되보이는 의사 선생님이 가운을 입고 앉아있었다. 다행히도 의사 선생님은 흔쾌히 브이를 들어 보였고, 서희는 "예쁘게 찍어드릴게요!" 하며 셔터를 눌렀다.
"가격은 고마워입니다."
태희가 말했다.
"고마워요~"
의사 선생님이 사진을 받아 들고 고맙다는 말로 가격을 지불했다. 아이들은 헤헤 웃었다.
"이제 나가자."
나는 황급히 인사를 하고 보건소를 나섰는데, 아이들은 좀 뿌듯해 보였다. 우리는 다시 길을 걸었다.
"다음엔 어디 갈까?"
"편의점 사장님 찍어드리는 건 어때요?"
"지난번에 마을 캠페인할 때 식당 사장님이 저희 음료수 주셨으니까 이번에는 저희가 사진 찍어드리러 가요."
"지난번에 소포 보냈던 우체국은 어때? 이따 경로당도 들르면 좋고."
벌써 여러 번 마을연계교육을 하다 보니 떠올릴 얼굴들이 많았다.
"근데 저희 집도 갈까요? 엄마 찍어주고 싶은데."
"선생님은 좋은데, 어머님이 엄청 싫어할 것 같은데. 예고도 없이 친구들을 줄줄이 달고 오는 딸내미라니, 생각만 해도 화나는데?"
"크크크. 엄마가 화내면 웃기겠다."
그 와중에 서희는 엄마를 골탕먹일 계획이었다.
우리는 자주 들르던 편의점 사장님을 뵈러 갔다. 항상 최선을 다해 친절함을 내보이는 사장님인지라 뵐 때마다 기분이 좋아지는 분이다. 아이들은 제 집 들듯이 편의점에 쑥 들어가 아까보다 편안하게 '오늘을 찍어드립니다' 활동을 설명했다. 사장님은 평소처럼 활짝 웃는 얼굴을 포즈로 취하셨다. 가장 멋지고 근사한 포즈는 뭐니 뭐니 해도 웃음이다. 편의점 계산대, 사장님이 가장 오래 자리를 지키는 곳. 그곳을 배경으로 사장님을 담은 폴라로이드 사진을 보니 왠지 낯설었다. 지나고 나면 어제가 될 오늘의 사징님을 찍어드리고 우리는 다시 길을 나섰다.
경로당에 갔는데 웬일인지 아무도 안 계셨다. 아이들이 할머니들 다 어디 갔냐고 궁시렁 궁시렁했다. 사실 이 활동은 경로당 할머니들이 제일 좋아하실 것 같아서 기획한 거였는데 주인공들이 다 어디 갔는지 나도 같이 속상했다.
"어디 가지?"
"식당에 갈까요?"
궁시렁 궁시렁 길을 걷다가 할머니 한 분을 마주쳤다. 경로당 버스킹을 갔을 때 뵀던 분이었다.
"할머니, 안녕하세요."
"어이고, 뭐 하고 다니는 거야?"
"사진 찍어드리고 있어요. 할머니 한 장 찍어드려도 될까요? 사진 선물로 드려요."
"예쁘지도 않은 사람을 뭘."
"예뻐요. 엄청."
"아이고, 그럼 한 장 찍어줘 봐."
"하나, 둘, 셋 김치~"
"김치~"
파란 하늘 아래, 할머니 집 담벼락 앞에서 활짝 웃는 할머니를 찍어 선물했다.
"할머니, 근데 오늘 경로당에 왜 아무도 없어요?"
그 이유가 너무 궁금한 나는 할머니를 채근했다.
"요새 농사일이 바쁠 때라, 일주일에 3번만 모여서 밥 해 먹어. 오늘은 밥 안 해 먹어서 아무도 안 왔나 봐. 그래도 3시 넘으면 하나 둘 모이긴 하는데."
"저희 11월 16일에 경로당 버스킹 하려고 하거든요. 그때 누구라도 오셔야 하는데."
"미리 말해놓으면 모이지."
"그럼 미리 들러서 홍보할게요."
"그래, 미리 말해줘. 그럼 할머니들이 그날 밥해 먹고 모여 있으면 되지."
"네."
그렇게 말하는 동안 폴라로이드 사진이 선명해지고 있었다.
"사진 너무 이쁘다. 나 혹시 꽃 앞에서도 한 번 찍어줄 수 있을까?"
"그럼요. 당연하죠."
할머니는 사진이 마음에 드셨는지 재구매 의사를 밝히셨고, 나와 아이들은 흠뻑 신이 났다.
마을을 돌아다니며 우리는 마을 사람들의 오늘을 찍어드렸다. 그러곤 뿌듯한 마음으로 편의점에 가서 핫바를 하나씩 뜯었다.
올해 들어 고맙다는 말을 제일 많이 들은 날이 아니었나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