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근길, 에세이를 잘 쓰는 법에 대해 들었다. 유튜버는 사람들이 듣고 싶은 말을 쓰라했다. '그래서 그게 뭔데?' 하나마나한 소리를 듣다 심통이 나 물었다.
"사람들은 실패담을 듣고 싶어 해요."
유튜버가 말했다.
'오호라. 실패담을 듣고 싶어 한단 말이지?'
브런치북 선정되기에 실패한 내가 깨달은 표정을 지었다.
'그래, 나는 오늘부터 사람들이 듣고 싶은 말만 쓰겠어. 온통 실패담만 쓸 거야.'
노트북을 열었다. 손가락을 비볐다. 실패한 것에 대해 생각했다. 브런치북 선정되는 것에 실패한 8000명이 떠도는 이 곳에 '저는 오늘 브런치북 선정되는 것에 실패했어요.' 하고 싶지 않았다. 다른 실패담이 필요했다.
손가락을 몇 번 더 비볐다. 꾸준히 책 읽으려다 실패함, 집 밥 차려먹으려다 실패함, 운동 실패함과 같은 구독자 모으기에 또다시 실패할 실패담 밖에 안 떠올랐다. 밋밋한 내 인생에 재미가 없어진 나는 핑계고 시상식을 봤다. 재밌었다. 이러니 핑계고는 구독자가 백삼십만이고 나는 브런치북 선정되기에 실패하지.
오기가 생긴 나는 다시 한번 실패담을 떠올렸다. 이미 침대에 누운 후였다. 행여 폰이 얼굴에 떨어질세라 양손으로 부여잡고 끄적여 본다. '올해의 실패.'
신랑과 올해 초, 50만 원을 걸고 목표 내기를 했다. 나는 연말까지 소설을 쓸 거라고 했다. 생생한 소재도 있었다. 우리 집 큰 개랑 산에 갔는데 누가 산골짜기에 똥을 싸고 휴지로 덮어놨다. 처음엔 등산객의 똥 참기 실패로 인한 헤프닝이라고 생각했다. 세 번째 똥을 만났을 때, 심지어 파란 트렁크 팬티로 덮여있었을 때 깨달았다.
"이 새끼 밖에서 똥 싸는 걸 즐기고 있다."
나는 한동안 우리 동네 실외배변인에 꽂혔다. 산에서 실외배변인을 마주치면 어쩌나, 똥으로도 용의자를 검거할 수 있나 같은 걸 자꾸만 생각했다.
꽤 오래 생각하다 보니 가족 모두가 숨 쉬는 ATM기 취급하는 중년의 대학교수가 떠올랐다. 대학에선 교수라고 폼이나 좀 잡지만, 집에 오면 짐짝 취급에 말 한마디 한마디 비수를 맞는다. 어느 날부터 변비로 장이 꽉 막힌 교수는 전자담배를 피우며 뒷산을 걷는다.
처음엔 급똥이었다. 별 도리가 없어 깊은 산 골짜기에 고라니마냥 똥을 쌌다. 그런데 시원했다. 한동안 못 느낀 쾌변이었다. 많이 걸어서 그랬겠느니 했다.
그 후로 또 오랫동안 변비로 고통받던 교수는 다시 산길을 오른다. 중간 즈음 올라 전자담배를 한 모금 들이키니 배가 찌릿한다. 변의였다. 교수는 깊은 산으로 들어가 또 똥을 싼다. 문명인답게 챙겨 온 휴지로 뒤처리를 하고, 똥을 잘 덮어둔다. 이걸 산책에 미친 큰 개의 주인에게 금방 들키리라고는 예상 못한다.
큰 개 키우는 새댁은 산속에서 사람 똥을 세 번 발견하고 결심한다.
"내가 이 변태자식 찾아낸다."
새댁은 당근마켓에 글을 올린다.
'우리 동네 뒷산에 대변을 보는 변태가 출몰합니다. 여성분들 특히 조심하세요.'
정의로운 자아상이 필요했던 새댁은 '용기 내서 글 써주셔서 감사해요.' 댓글에 힘입어 아파트 엘리베이터에 전단지를 붙인다.
'동네 뒷산에 대변을 보는 변태가 출몰합니다. 지금 cctv로 추적 중입니다.'
교수는 엘리베이터에서 전단지를 붙이는 새댁을 마주친다. 넋살 좋은 새댁이 먼저 인사를 한다.
"교수님, 아침 일찍 어디 가시나 봐요. 아 이게 뭐냐면요. 글쎄 제가 개랑 산책을 하는데 산에서 이따만한 똥을 봤어요. 처음엔 산 짐승인 줄 알았는데 가만 보면 사람 똥이었거든요? 근데 놀라지 마세요. 며칠 뒤엔 휴지가 덮혀져 있는 거예요. 똥에!! 멧돼지가 아니었던 거지. 어떤 미친 변태새끼가 밖에서 똥을 싸면서 즐기는 거죠. 하 여기 어린이집도 있고 초등학교도 있는데 밖에서 똥 싸는 변태새끼가 웬 말이냐고요, 그쵸 교수님. 교수님은 똑똑하니까 이 변태새끼 찾을 수 있지 않을까요? 저 좀 도와주시면 안 돼요?"
"등산객이 급해서 그런 걸 수도 있고."
"제가 본 똥만 다섯 개가 넘어요."
"다섯 개는 안 될 텐데."
"에?"
새댁은 허풍 치다 걸려서 놀라고 교수는 말실수에 놀란다.
"도와줄게요."
교수는 당황하여 새로운 말실수를 한다.
"아이고 교수님 감사해요 우리 신랑은 정의감 같은 게 전혀 없어서 저 보고도 얼마나 잔소리를 하던지. 남의 일에 나서지 말라고. 근데 이게 남의 일이에요? 전 그렇게 생각 안 해요. 당장 내 앞 집 꼬마아이, 아랫집 중학생, 그 사람들 다 위험에 빠뜨리는 일 아니냐고요. 아무튼 좋은 일에 함께 해주셔서 정말 감사해요 역시 배운 사람은 다르다."
"그럼 인터폰 주세요, 전 이만."
"네 교수님. 인터폰 드릴게요. 가세요~"
아무튼 연초에 신랑과 내기를 할 때는 이 소설을 쓸 생각이었다. 가제는 '이 똥 누가 쌌어.' 상상할 땐 재밌었는데 막상 써보니 재밌기는커녕 글에서 똥냄새가 나서 접었다. 곧 연말이니 목표 달성에 실패하여 50만 원을 내야 할 참이다. 다행히 신랑도 다이어트에 실패하여 50만 원을 내놓으니 금전적 손실은 막았다.
올해의 실패, 나는 '이 똥 누가 쌌어' 소설 쓰기에 실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