준규가 말하길
"은진이는 내가 아는 사람 중에 자기 계발서를 가장 많이 읽는 사람이야."
라고 했다.
나는 자기 계발서를 손에 든 채 누워 있었고, 감명은 받지만 일어나 앉을 생각은 없는 나를 면박주는 것 같아 기분이 나빴다. 신랑은 칭찬이라 했지만, 나는 의심을 거둘 수 없었다. 자기 계발서는 읽지만 자기계발할 의욕은 없는 인간에 대한 공격이었다는 것에 대해.
나는 내가 모순적인 인간만 아니었어도 훨씬 더 행복하게 살았을 거라 생각한다. 내가 가진 대표적인 모순은 이런 것이다. 잘 나가고 싶은데 눕고 싶다. 이 둘이 평생을 싸운다. 나랑 비슷한 교직경력을 가졌는데, 그간 성실히 배우고 발전하며 기록해 온 성과를 거둔 선생님들이 있다. 누구는 강의해서 (내 기준에) 큰돈을 벌고, 누구는 책도 막 몇 쇄찍 찍고 그런다. 잘 나가는 이들은 연구회 같은 데서 만날 수 있고, 요즘은 세상이 좋아져 인스타나 블로그에서도 심심찮게 본다.
옆으로 누워 얼굴이 찌부된 채로 잘 나가는 선생님들을 본다. '와, 이 사람 블로그 이웃 3000명 넘어.' '이 젊고 아름다운 아가씨 뭐지.' '교육부랑 일을 해?' 나는 생각한다.
'겁나 부럽다.'
나도 막 정장 원피스 같은 거 입고 구두 또각또각거리면서 똑똑한 사람 역할 하고 싶다. 자신감 넘치는 당찬 눈빛으로 "안녕하세요, 저는 김은진입니다." 하면서 나의 브릴리언트를 뽐내고 싶다. 뭐든지 잘할 것 같은 광대와 꼿꼿한 자태를 자랑하며 이것도 저것도 잘해서 여기서도 잘 나가고 저기서도 잘 나가고 싶다. 어느 때는 부러움에 못 이겨 사백 번째 결심을 한다. '블로그 기록 열심히 해보자!'
그러나 사실, 나는 아무것도 안 하고 싶다. 지금 당장 내 앞에 떨어진 일들을 완벽하게 처리해내고 싶지 않다 나는 그저 "저 사람 언제부터 있었어?"의 '저 사람'을 하고 싶다. 일은 못하지만 사람은 나쁘지 않은, 그래서 쌍욕하기도 뭣한 사람 1을 하고 싶다.
오늘 퇴근하자마자 사람들 블로그를 구경했고, 무척이나 부러운 사람이 생겨서 '부럽다' '부럽다' 노래를 불렀다. 그 사람은 높아지고 나는 남루해지는 '부럽다 송'이다. 좀 지나서는 침대에 등 붙이고 드라마 '동백꽃 필 무렵'을 보다가 공효진이 행복해졌을 때 기뻐서 따라 울었다.
눕는 건 한심하지만 편안하다. '이렇게 누우면 너 별 거 못 돼.' 이런 생각은 여전히 들지만, 우선 누워있고 싶다. 이 모순의 소용돌이에서 나는 무사히 살아남을 수 있을까?
누워 있고 싶지만 뭐라도 해야 할 것 같으니, 누워서 할 수 있는 것을 생각했다.
오늘은 누워서 글을 쓰겠다. 다리 한 짝을 반대짝에 올리고, 노트북을 배와 다리로 지탱한 뒤 누워서 글을 쓰는 것이다. 나태하지만 생산적인, 이 행위야말로 모순으로 점철된 나의 생을 온몸으로 표현하는 행위예술이라 할 수 있다.
줄여서 눕글. 나는야 눕글러. 누워서 글을 쓴다네, 헤이. 누워서 글 쓰면 뭐 못돼. 너 뭐 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