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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Genie Feb 03. 2024

'저런 걸 왜 키워.'의 '저런 거'

 큰개 데리고 산책하면 지나가는 사람들 중 8할은 표정이 안 좋다. 갓 뀐 방귀 맡은 표정이다.


 나도 신랑이 키우던 큰개를 처음 만난 날, 표정이 안 좋았다. 사진으로 봤을 땐 귀엽더니만 실물은 강아지가 아니라 '개'여서 놀랐다. 콧구멍이 엄지만하고 큰 숨으로 헉헉 거리는 것도 반갑지 않았다. 친화력은 왜 이리 좋은지 처음 만났는데 혀를 얼굴 가까이 내밀길래 손날로 막았다. 사귄 지 얼마 안 된 신랑이 보고 있어서 친화적인 척해보려 노력했지만 잘 안되었다.


 처음 만났을 때의 감정을 떠올려보면 지나가는 사람들 표정이 왜 안 좋은지 이해한다. 우선 몸도 크고, 입도 크고, 송곳니도 크고, 콧구멍도 서 동물보다는 '짐승'같다. 골든리트리버가 사람 친화적이라고는 하지만 인터넷에서 심심찮게 골든리트리버의 개물림 사고를 접한다. 큰개가 헥헥거리면서 돌아다니면, 게다가 큰개랑 몸무게도 비슷할 것 같은 마른 여자가 목줄 하나에 의지해서 끌고 다니면 반가울 리가 없겠지. 무섭거나 더럽겠지 생각한다.


 당장 내 아버지만 해도 큰개랑 산책 가자고 하면 말한다.

"입마개 하고 나와라."

 우리 개는 입마개 종 아니라고 하면 다시 말한다.

"사람들 보기에 무서우니 입마개 하고 나와라."


 어느 날은 중년 부부가 말했다.

"아니, 이런 개는 입마개를 하고 다녀야지 말이야."

"입마개 하고 다녀, 아가씨."

 뭔가를 해명하고 싶기도 했지만, 하고 싶지 않기도 했다.


 큰개와 단지를 걷다가는 이런 말을 들었다.

"저런 걸 왜 키워."

 젊은 커플이었고, 남자가 그렇게 말하니 여자가 거들었다.

"그러게, 저런 걸 왜 키우냐."

 들리라고 한 말이 들렸다. '저런 거'를 내려다봤다. 꼬리를 살랑살랑 흔들며 산책 나온 게 좋다고 헤죽 웃었다.


 나는 그 길로 집에 들어와 입마개를 주문했다.


 입마개를 씌우고 산책에 나갔다. 개는 혀로 체온조절을 하는데, 입마개를 해놓으니 금방이라도 졸도할 것 같았다. 나는 입마개를 포기하고 생각했다.


'어쩔 수 없이 혐오의 대상이 되어야겠다.'


 입마개를 포기한 대신, 최대한 사람을 피해 다닌다. 사람이 보이면 돌아가고, 사람이 가까워지면 큰개 목줄부터 당긴다. 큰개는 칵칵 거리지만 나는 더 짧고 세게 목줄을 당긴다.


'가까워지지 마. 무서워 보이지 마.'


 아무도 없는 시간의 공간에선 안도감과 자유를 느낀다.


'여기선 괜찮아. 너 싫어할 사람 없어. 여긴 사람이 없거든.'


 혐오스러운 큰개를 너무 많이 좋아하게 되면서 점점 더 아무도 없을 곳으로 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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