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Genie Feb 22. 2024

네, 아파트에서 키워요.

큰 개랑 삽니다

 큰 개를 데리고 다니면 자주 듣는 질문이 있다.

"아파트에서 키우는 건 아니죠?"

 아니어야만 하는 질문이다. 스몰토크니까 스몰구라를 칠까 싶지만 어떻게 대답하든 아파트에서 큰 개를 키운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7살쯤이었나, 우리 집 마당에서 작은 개를 묶어놓고 키웠던 기억이 있다. 마당 수도꼭지에 묶어놓고 키웠다. 집 안에 있을 때도 작은 개가 뭐 하나 궁금했고, 특히 밤에는 더 궁금했다. 자는 건가, 안 자는 건가.


 나는 어렸고, 호기심이 왕성했기에 자꾸만 작은 개 앞에 쪼그려 앉아 건드렸다. 우리가 같이 사는 건 아니니까(마당과 집 안의 심리적 거리가 있지 않은가) 나랑 걔랑은 피차 어색했다.


 하루는 좀 더 친해져보고 싶은 마음에 목줄을 풀고 걔를 업어보려 했다. 개를 다룰 줄 모르니까 억지 힘을 썼고, 걔는 발버둥을 치며 내게 발톱 자국을 내다 대문 밑 틈 사이로 튀어나갔다. 순식간이었다. 헐레벌떡 따라나갔지만 보이지 않았다. 처음엔 울지 않았다. 답답하게 묶여 살던 개가 세상 구경이나 좀 하다가 결국엔 주인 곁으로 돌아올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 후로 영영 그 개를 보지 못했고, 나는 뒤늦게 조금 울었다.


 개가 마당에 있었다는 게 사실인지 꿈인지 종종 헷갈린다. 어린 시절의 조각 기억이라 그 개가 흰색이었다는 거 말고는 생김새도 가물가물한 데다 얼마나 우리 집 마당에 묶여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언니, 우리 어릴 때 마당에 묶어 놓았던 개, 얼마나 있었지?"

"엄청 짧게 있었잖아."


 엄청 짧게는 며칠쯤일까.


  그 후로 내 인생에 개는 없었다. 작은 개와의 기억이 상처였는지 개가 충성심이 강하다는 말이 나오면 '저거 순 뻥이야.'라는 생각에 잠깐 화도 났다. 개를 키우는 인생에 대해 단 한 번도 고려해보지 않은 채 서른 즈음이 되었다.


 남자를 만났다. 평일엔 사무실에서 키우는 레트리버를 주말마다 데려오는 남자였다. 나는 그 남자가 처음 만난 날부터 좋았다. 허허 너털웃음을 뱉으며 불편한 구석 하나 없이 깊이 앉아 있는 모습이 마음에 들었다. '이 남자랑 결혼해야지.' 생각했다.


 이 남자랑 만나면 데려오는 레트리버도 만날 수밖에 없었다. 5일은 사무실에 있으니 이 개는 사무실 개라고 생각했다. 잠깐 우리 집에 놀러 오는 손님처럼 간식 주고 산책 좀 시키고 다시 빠이빠이했다.


 우리가 결혼식을 올릴 즈음, 사무실에서 레트리버가 나가야 할 처지가 되었다. 마당 철창에서 묶어 키우는 집에 보내질 예정이었다. 신랑이 될 남자와 나는 일생일대의 고민을 했다. 이 개를 묶인 채로 살게 할까, 우리 집이라도 돌아다니게 할까.


 '큰 개를 회사 다니면서 집에서 어떻게 키워. 산책을 어떻게 매일 해줘. 차라리 밖에서 사는 게 개한테도 행복일 수 있어. 가서도 잘 살겠지.'


 이것이 큰 개를 마당 철창에 보내는 근거였다. 거의 보내는 쪽으로 기울 즈음 예비신랑이 말했다.


"이 개를 보내서 나는 편히 살고 걔는 불행해지면 내가 정말 행복하진 못할 것 같아. 내내."

 나도 대답했다.

"나 대전에 친구 얘밖에 없어."


 우리 집 큰개는 발톱이 장판에 부딪힐 때 챱챱 소리가 난다. 큰개는 우리가 자는 동안 챱챱 소리를 내며 30평 아파트를 누빈다. 물도 마시고, 사료도 먹고, 혼자 창가에 앉아 창밖을 하염없이 바라보기도 한다. 가끔은 자는 얼굴을 냅따 한 번 핥는다(개들만의 애정표현이라 함). 아침에 주인들 깨우고 싶으면 착해가지고 적극적으로 뭘 하지는 못하고 한숨이나 크게 내쉰다.  


 큰개와 살며 큰개의 성격을 알게 된 후로, 가끔 이 개가 마당 철창에서 묶여서 살았다면 얼마나 오랜 시간 불행했을까 생각한다. 우리 집 큰개는 항상 주인과 함께 있고 싶어 한다. 아무리 졸려도, 주인이 거실이나 컴퓨터방에 있으면 꼭 따라와 주인 옆에 눕는다. 주인이 하던 일이 끝나면 자기를 만져주길 바라며 얼굴을 들이민다. 한 번 주무르기 시작하면 손을 뗄 때마다 주먹만 한 앞발을 주인 허벅지에 턱 올린다. 계속 자기를 만져달라며. 가령 가스 점검원이 방문할 때 큰개를 방에 가둬놓으면 낑낑 운다. '나는 주인과 떨어지고 싶지 않아.' 내내 그런 말이 담긴 소리를 낸다.


 사무실에서 있던 개니까, 그냥 별생각 없이 철창 집으로 보냈다면 몰랐을 마음이다. 큰개가 얼마나 사람과 함께이고 싶은지, 얼마나 혼자이고 싶지 않은지. 웃는 얼굴과 웃지 않은 얼굴이 어떻게 다른지. 얼마나 사람에게 기대는지, 얼마나 사람을 좋아하는지.


 남의 개라고 생각했던 시간, 보내자고 마음먹었던 순간, 보내졌을 큰개의 매일에 대해 상상의 나래가 펼쳐지면 나는 옆에 누운 큰개를 아찔히 끌어안는다. 큰개는 주인이 아무리 갑갑히 끌어안아도 맘껏 하도록 가만히 있어준다.


 '우리가 아파트에 함께 살아서 다행이야.'


  일상히 감격하며 큰개를 꼭 안고 흔든다.

매거진의 이전글 일단 걸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