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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Genie Feb 24. 2024

걔는 홀씨가 됐다구,

큰개랑 삽니다

 연애해도 이상하지 않을 나이, 결혼해도 말리지 않을 나이가 될 즈음부터 나보다 어른인 사람들에게 이런 말을 흔히 들었다.

"부모가 사이좋은 집에서 자란 사람을 만나야 한다, 결혼할 땐 가풍이 중요하다."

 

 기억이 시작되는 시점부터 내 부모는 사이가 안 좋았다. 이 세상에서 가장 싫은 사람을 고르라 하면 딱 '너네 엄마'와 '너네 아빠'를 고를 형국이었다. 가풍이라는 게 뭔지도 모르겠는 내 입장에선 조언이라고 하는 말이 이렇게 들렸다.


"부모가 사이 안 좋은 집 애들은 연애를 해도, 결혼을 해도 잘 못 살아."


 호의와 함께 배달되는 조언에 찔려 자꾸만 가슴이 찌르르했다. 그런 류의 조언을 할 거면 사실 확인이 필요하다. 사랑스러운 이미지에 속아 사랑 가득한 가정에서 자랐다고 확신하시면 어쩌나.


 아킬레스건에 물이 차서 한 달 동안 깁스를 하고 난 후, 걷는 게 얼마나 좋은지 건강만 하면 얼마나 즐길 일이 많은지 실감했다. 그래서 자주 확신에 찬 눈빛으로 말했다.


"건강이 최고야."


 어떤 글을 읽었다. 이미 건강을 잃은 입장에서는 '건강이 최고야.'라는 말이 얼마나 많은 자괴감을 일으키는지에 대한 문장이었다. '삶에서 가장 중요한 것을 잃어버린 채 살아야 하나.' 건강이 최고라 하면 건강을 잃은 채 이어지는 삶에 대해 이야기할 때는 어떤 문장과 단어를 사용할 것인가.


 상용구 같은 문장도 더러 누군가에겐 상처다. 나를 포함한 모두가 생채기를 낼 수도 있다는 사실조차 인식하지 못한 채 자기가 메이저라고 생각하는 분야에 대해서 하고 싶은 말을 쏟아내며 산다. 세상은 문장들로 가득하고, 굳이 뱉지 않아도 될 칼말들이 구천을 떠돈다. 찔리고 찌르기를 반복하며 자기는 한 번도 찌르지는 않았다 주장하면서.

 

 큰개를 키우면서 나는 거의 모든 사람에게 이해받지 못하는 소수자의 길에 들어섰다. 반려인들끼리만 통하는 개에 대한 사랑, 그중에서도 대형견을 키우는 삶. 그중에서도 아파트에서, 그중에서도 레트리버. 나는 큰개와 함께 켜켜이 축소된 소수의 집단에 들어섰다.


 길을 다니며 노골적인 혐오도 받아보고, 호의를 담거나 담지 않은 질문에 찔려도 보고, 가족들도 잘 이해하지 못하는데다 스스로도 큰개에 대한 벅찬 사랑을 이해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자 나는 모종의 결심을 했다.


'나는 홀씨가 됐다구.'


 큰개를 키우기 전엔, 사람들이 하는 말 속에 나를 포함시키고 싶어 말이 길어졌다. 해명하고, 변명하고, 반박하고, 그러고 나서도 마음에 켜켜이 담아 한 구석에 쌓아 그 말과 내가 많이 다른지 재어보았다. 민들레 군중에 포함되어 무난히 어울리고 싶은 마음이었다. 이상하지 않은, 어떤 면에서도 튀거나 모나지 않은, 괜찮은 애. 그게 되고 싶었다.


 그러나 나는 이제 가뿐한 홀씨로 구천을 떠돌기로 한다. 군중에 속하고 싶은 마음에 움켜쥐고 있던 흙뿌리를 내려놓고, 아무도 나를 이해하지 않아도 개의치 않으며 바람을 타고 홀랑 홀랑 떠오르겠다. 나도 온전히 이해 못 하는 나를 누군가에게 이해시키려는 헛욕심을 내려놓겠다. 너무 작거나 클까 봐 주변을 기웃기웃 키를 맞추는 시도도 그만 두겠다.


 그저, 바람이 닿는 대로 훌훌 홀씨로 떠오른다. 사람들은 각자 하고 싶은 말을 할 테고 그럼 "하고 싶은 말을 하셨군요." 하곤 다시 홀홀 날겠다. 흰색 귀마개 모자를 눌러쓰고, 신랑이 입다 버린 검은 롱패딩을 전용 산책 외투로 걸친 채 큰개와 이 산과 저 들을 떠돌며 홀랑홀랑 혼자가 되겠다.


 이해받고 싶은 마음이 오래 있었으나, 이해시킬 수 없는 영역에 들어섰음을 인정하게 되면서 나머지 영역에서도 남에게 이해받고 싶은 마음이 사라졌다.


'누가 저를 이해하겠어요. 저도 제가 이해가 안 되는데요.'


 덕분에 요즘은 부쩍 홀씨처럼 홀홀 살고 있다.


 어느 때보다 외롭고, 어느 때보다 자유롭다.





가수 아이유의 신곡 '홀씨'만 들으면서 썼습니다. 가사 너무 좋아요.


   

https://brunch.co.kr/@kimsomin91/29

'삶에서 가장 중요한 것을 잃어버린 채 살아야 하나.' 이 문장은 이 글에서 가져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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