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눈을 떴는데, 좀 더 누워있고 싶으면 뒤척이지도 않고 눈만 깜빡깜빡한다. 그러나 우리 집 큰개는 귀신같이 알아챈다.
'주인 놈이 깼구나.'
큰개가 꼬리를 뱅뱅 돌리며 거친 숨을 내쉬기 시작하면 나도 알아챈다.
'들켰구나.'
큰개는 당장이라도 똥이 나올 것 같으니 서두르라고 주인을 보챈다. 끼잉끼잉 엉덩이를 흔들고 앞 발을 조급히 번갈아 걸으며 위급 신호를 온몸으로 표현한다. 큰개의 재촉에 못 이겨 양치질도 못하고 겉옷만 걸친 채 황급히 길을 나선다.
아파트를 나서자마자 큰개가 바닥에 코를 킁킁 거리며 양지를 찾는다. 적당히 푹신하고 촉촉한 풀과 흙을 찾아 자리를 잡은 뒤 밤새 만든 것들을 내보낸다. 뭔가 더 뿌듯한 날엔 똥 싼 곳을 향해 힘찬 뒷발차기를 하며 몇 개의 풀과 흙을 흩날린다. 강형욱 선생님이 말하시길, 그것은 산 정상에 올라 외치는 "야호"와 비슷한 행위라 한다. 자신감과 성취감이 넘쳐 다른 개들에게 "얘들아, 나 여기 왔다 간다!" 외치는 행위. 나는 구부정히 똥을 줍다가 큰개의 뒷발차기에 봉변을 당하며 매일 똥을 줍게 된 신세에 대해 짧은 고찰을 한다.
큰개가 꼬리를 추켜세우고 의기양양하게 서서 이제 신나는 곳에 데려가보라며 나를 올려다본다. 우리는 등산로가 나지 않은 깊은 산기슭으로 나무와 풀을 헤치며 들어간다. 큰개는 점점 더 신이 나서 폴짝폴짝 뛰고, 나는 오묘한 뿌듯함을 느끼며 더 깊이 더 깊이 들어간다.
공을 멀리 던지면, 큰개가 폴짝폴짝 공을 찾으러 사라진다. 저 멀리 돌아가는 꼬리펠러를 바라보며 얼굴에 닿는 아침 햇살을 느끼고, 코 끝에 닿는 봄 풀향을 맡는다. 새의 지저귐이 사랑스럽다고 느낄 때쯤, 배가 조금 아프다.
깊은 산에 기어들어온지 5분도 안되어 느껴진 당혹스러운 통증이다. 이것이 기체인지 고체인지, 아니면 잠시 있다 사라질 불편함인지 아직은 판단하기에 이르다. 애써 불편함을 외면하며 공을 주워 돌아오는 큰개를 쓰다듬고, 다시 힘껏 공을 던진다. 느껴졌던 불편함이 사라진다. 나는 안도한다. '별 거 아니었구나.' 그렇게 나는 신이 주신 기회를 놓친다.
매화꽃 잎이 흩날린다. 봄이 주는 감상에 젖는다. 큰개가 신이 나 바닥에 누워 온몸에 냄새를 묻힌다. 큰개가 신이 나면 나도 단순한 웃음이 난다. 더 깊은 산에 가고 싶은 큰개를 따라 몇 걸음 더 들어간다. 큰개와 함께 헤죽 웃다가 다시 배가 아프다.
이것은 가볍게 넘길 수 있을 것만 같은 통증이다. 나는 기체를 조금 내보내본다. 그리고 느낀다.
'그게 아니었구나.'
나는 큰개를 붙잡는다. 큰개는 눈빛으로 묻는다.
'왜 벌써?'
큰개의 목줄을 붙잡고 깊은 산을 벗어난다. 풀을 헤치고, 나뭇가지를 걷어내며 왔던 길을 돌아 나온다. 깊이 들어왔던 나의 발걸음을 후회하다 저주한다. 다급히 신을 찾는다.
'신이시여, 저에게 한 번의 기회를 더 주세요.'
신이 응답한다.
'아까 기회를 주었다.'
'신이 주신 기회치곤 희미했습니다. 제발 한 번만 더 아량을.'
끌려 나오는 큰개가 자꾸만 코를 바닥에 박고 봄의 냄새를 맡는다. 나는 목줄을 꽉 잡고 애원한다.
"지금은 집에 가야 해. 제발."
인도에 도착해 헐레벌떡 뛴다. 큰개는 목이 살짝 꺾인 채로 혀를 내밀고 끌려온다. 나는 앞만 보고 뛰지만 큰개는 뒤를 보고 옆을 보고 바닥을 본다. 큰개가 냄새를 맡는다고 또 바닥을 킁킁거릴 때, 나는 화를 낸다. 큰개는 내 눈치를 보고 다시 목이 꺾인 채 따라온다.
엘리베이터, 다행히 실외배변은 면했다. 나는 힘을 꽉 주고 내용물을 잡아둔다. 배의 통증이 너무 심해 거의 눈물이 날 것 같다. 반야심경을 외우고, 인터넷에서 본 혈자리도 누른다. 지리기 일보직전에 집에 도착한다. 나는 큰개 목줄을 내팽개치고 화장실로 뛴다. 큰개가 헥헥 거리며 나를 쳐다본다.
'주인, 물은? 발 안 닦아줘?'
큰개를 뒤로 하고 변기에 앉는다. 순리대로 해결되는 동안 안도감에 눈물을 찔끔 흘린다.
덧. 큰개를 키우고 싶으신 분, 급똥을 조심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