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에 큰개랑 산책할 때, 찬 바람이 스치면 볼이 따끔따끔했다. 시간이 조금 더 지나면 두꺼운 등산화를 뚫고 발가락에도 겨울이 닿았다. 시린 발가락을 꼼지락꼼지락 움직여도 소용이 없었다. 나는 아린 발가락을 웅크리고 바삐 겨울 길을 걸었다.
텅 빈 나뭇가지를 보고 있노라면 황량한 느낌이 들었다. 가끔 눈송이가 매달릴 때, 왜 그걸 눈꽃이라고 불렀는지 알 것도 같았다. 손꼽아 기다려지는 마음에 꽃의 자리에 앉은 눈이라도 꽃이라 불러보았을 터.
2월이 조금조금 지나갈 무렵, 빈 나뭇가지 틈틈새에 움이 트기 시작했다. 여전히 추운 날씨에도 새로움을 시작하는 작은 생명들이 아련히 사랑스러웠다.
"봄이 오려나 봐."
큰개에게 봄이 온다고 했다. 큰개가 옅봄내를 맡느라 연신 킁킁거렸다. 여전히 날이 추웠고, 나는 긴 점퍼의 자크를 목까지 걸어 잠그고도 오들오들 떨었다.
하루, 이틀, 큰개와 걷고 밥벌이를 하고 다시 큰개와 걸었다. 그렇게 시간이라는 게 성큼성큼 큰 걸음을 뛰었다. 어느 날부턴 털모자를 벗었고, 어느 날부턴 장갑을 끼지 않아도 되었다. 언젠가는 패딩 지퍼를 배꼽까지 내리더니 더 지나니 경랑패딩만 입고도 문제없이 걸었다.
문득 봄날, 흰색인 듯 분홍색인 꽃잎이 나뭇가지 가득 열렸다. 큰개에게 말했다.
"봄이야."
바닥에 뒹굴어 풀잎 몇 개, 꽃잎 몇 개를 붙인 큰개가 헥헥 웃었다. 그때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제부터 매일 봄이라는 게 신기하다.'
찰나일 봄날 속에서 매일 봄을 붙잡아보려고 마음이 분주해졌다. 퇴근하면 큰개를 뒷자리에 태우고 낯선 곳으로 달렸다. 지도를 대충 보고 아무 데로나 달리다, 봄이 핀 곳을 만나면 차를 세웠다. 논두렁이기도, 천변 갈대밭이기도, 나무와 풀이 멋대로 자란 언덕이기도 했다. 그 시간엔 항상 햇빛이 금빛으로 빛났다.
큰개는 처음 만난 냄새가 가득한 곳에 가면 꼬리를 반짝 세우고 기분 좋게 흥분해서는 여기저기 코를 갖다 댄다. 큰개가 흥분하면 나도 덩달아 들떠버린다. 낯선 곳에 핀 봄을 찬찬히 바라본다. 흰 봄, 노란 봄, 보라 봄, 분홍 봄이 여기저기 매달려 봄바람에 살랑인다. 바람은 두 볼을 편안히 스치고, 얇은 카디건만 걸치고도 가볍게 걸음을 옮긴다.
큰개랑 나랑 둘이서만 이 봄 한가운데 있다.
마음이 건강한 사람은 계절의 변화를 금방 알아채고 만끽하는 사람이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그때도 나 정도면 자연을 잘 즐기는 편이라고 생각했는데, 큰개를 키워보니 매일 자연과 함께하며 얼마나 자연을 만끽하는지 새삼스레 느낀다. 온도에 반응하며 옷을 갈아입고, 일출 시간에 반응하며 동네 개와 만날 시간을 약속하고, 꽃과 나무에 반응하며 걸을 길을 고른다.
매일 큰개와 힘내어 걸으며, 나도 모르는 새 자연이 내 마음을 가득 피웠다.
*봄이 오자마자 쓰고 싶었던 글인데, 여름 새싹이 봄꽃 자리를 채워준 후에야 씁니다. 글 올린 타이밍은 아쉽지만 여름 새싹의 파릇함도 참 찬란해요. 계절의 변화를 만끽하며 행복한 하루 보내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