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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Genie Jun 25. 2024

아홉 개의 보석

우리 반 아이들에 대한 에세이

 저희 반은 마을 버스 정류장 배움 전시회를 위해 각자의 작품을 열심히 만들고 있습니다. 애들은 열심히 만드는 데 저만 농땡이칠 수 없어 9개의 에세이를 써서 전시하려 합니다. 저의 작품을 브런치에도 전시해 둡니다. 아이들의 깜찍함으로 힐링하는 하루 되시길.



1. 춤 출 때 유독 반짝이는 수정


사람은 이름 따라 산다는 말이 있는데, 수정이를 보면 그 말이 정말인 것 같다.


 수정이는 춤 추는 걸 좋아한다. 그리고 잘한다. 잘해서 좋아하게 된 건지, 좋아해서 잘하게 된 건지 모르겠다. 작년 수련회 장기자랑 때 수정이의 춤을 처음 보게 되었다. 수정이 얼굴만 알고 이름도 잘 몰랐는데, 선명한 춤선과 또렷한 얼굴로 춤을 추는 아이의 이름이 궁금하여 물었다.


"3학년 수정이에요."


 이름과 모습이 참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다.


 올해 수정이는 교실직업으로 '춤선생님'이 되었다. 수정이는 여러 짧은 춤을 연습해와서 친구들에게 가르쳐주었다.

"이렇게 손을 들고 흔들어,  그 다음에 한 바퀴 돌아. 즈알했어."

 몇  번 춤 수업을 하더니 진짜 댄스학원 선생님 같은 모양새가 났다.


 수정이의 춤 실력 덕분에 우리 반은 여러 개의 춤을 연습하고 영상을 찍었다. 우리는 그 시간동안 같이 웃고, 같이 오른 손을 올리고, 같이 쑥스러워하다가, 결국엔 해내고 뿌듯해했다.


 수정이는 자주 빛 받은 수정처럼 반짝인다.


덧, 수정이는 버스정류장 전시회 작품으로 어르신들을 위한 체조를 만들고 소개했다. 수정이의 재능은 빛을 반사해 사람들을 비추기도 한다.


2. 단점이 없어 도덕 선생님을 당황케 한 채원이


 학급 회의 시간에 서로에게 바라는 점을 말하고 있었다. 아이들이 채원이의 성격이 완벽하다고 했다. 모두에게 잘 웃어주고, 너그럽고, 느긋하며 이해심이 많다고 했다. 채원이는 친구들이 그 말을 하는 동안 또 느긋하고 너그럽게 웃었다. 허 허 허. 나는 그런 평을 듣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알기에, 기특하게 채원이를 쳐다보다가 허허허 웃는 채원이 표정에 빵 터져서 학학 웃었다.  


 채원이가 바라는 점을 말했다.

"친구들이 서로에게 더 많이 웃어줬으면 좋겠어요."

 친구들이 채원이의 말에 화답하며 복식호흡으로 하하하 웃었다. 나도 학학학 웃었다. 채원이가 허허허 웃었다. 우리 교실에 ㅎ이 가득 차는 순간이었다. 채원이 덕분에,


 학부모 공개수업 하는 날, 도덕 선생님은 자신의 단점을 장점으로 바꿔 표현하는 수업을 계획하셨다. 친구들이 하나씩 자신의 단점을 적을 때, 채원이는 예의도 바르게 '없습니다'라고 적었다. 도덕선생님은 당황해서 땀이 삐질 흘렀다.


 "뭐라도 적어줘...."

 도덕선생님이 속삭였다. 착한 채원이는 얼마간 더 고민했지만 결론은 같았다. '없습니다'


 나는 그 얘기를 듣고 또 학학학 웃었다. 느긋하게 '없습니다'를 적은 종이를 내려보고 있을 채원이의 얼굴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채원이의 반만 닮아도, 내 단점 종이에 '거의 없습니다'라고 적을 수 있을텐데.


 이 글을 읽은 채원이의 후기 "글이 너무 많아요."


3. 느긋한 토끼, 지우


 지우는 느긋하다. 급할 것도 없는 데 뭘 그리 서두르냐고 말하는 것 같다. 동의하지만 이미 온 몸이 급하게 사는 데 폭 담가져버린 나로써는 지우의 느긋함이 부럽다. 너그러운 집에서 너그러이 사랑받으며 산책하듯 자란 아이같기 때문이다.


 지우는 밥을 가장 늦게까지 먹는다.

"선생님, 저는 맨날 제일 늦게까지 남아 있어요."

 지우가 오른 손엔 숟가락, 왼 손엔 젓가락을 들고 말했다. 가장 늦게까지 남아있지만 그게 뭐 별거겠냐는 표정으로 꼭꼭 씹어먹고 있었다. 5분이면 한 끼 식사를 끝내버리는 성미급한 나는, 어쩐지 그 날 만큼은 지우 옆에 오래 앉은 느긋한 선생님이고 싶었는데 30년의 성미가 어디가지 않았고 몇 분 뒤에 먼저 일어서며 말했다.


"천천히 먹고 와."


 다들 빨리 먹고 일어나서 할 일을 해도, 너까지 빨리 먹을 필욘 없다는 말이었다. 지우만의 속도로 채운 점심시간이었으면 좋겠다.


 하루는 지우가 말했다.

"선생님, 이모들이 저보고 토끼래요. 당근 좋아한다고."

 그 말을 하는 지우 앞니 두개가 유독 토끼 같았다.

"그러네, 또 지우가 토끼상이기도 하고. 트와이스 나연처럼."


 그러고보니 내 머릿 속에서 지우만의 특별한 캐릭터가 완성되었다. 지우는 아주 느긋한 토끼이다. 거북이와의 경주마저 이겨보겠다고 눈이 빨개진 토끼와, 밥마저도 빨리 먹으려고 이빨을 분주히 움직여보는 토끼,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고 달려 나가는 토끼들 사이에서 지우 토끼가 느긋하게 자리를 잡는다.


 양 손에 숟가락과 젓가락을 들고, 천천히 당근 하나를 집어든다. 당근의 모양을 보고, 냄새를 맡고, 앞니로 당근을 아삭 베어문 뒤, 당근이 입에서 부서지고 녹아 사라질 때까지 음미한다. 지우토끼는 지우토끼만의 시간으로 식사를 마친 뒤 말한다.


"아, 맛있었다!"


4. 하나뿐인 하나


 하나는 똑부러진 아이이다. 뭘 맡겨도 꼼꼼하고 야무지게 해내는 게 초등학교 4학년이 아니라 스물네 살 대학 졸업반 같다. 덕분에 하나가 운영하는 학급 은행은 오늘도 별 탈 없이 척척 굴러간다.


"한 줄로 서."


 하나는 특유의 카리스마로 아이들을 한 줄로 세워, 능숙하게 예금 이자를 정산하고, 주급을 오차없이 나눠준다. 하나에게 맡겨두면 알아서 잘 돌아가니까, 나는 오늘도 하나를 믿고 은행 일은 하나도 신경쓰지 않는다.


 하나는 사남매에서 첫 째를 맡고 있다. 학급회의를 하다가 하나가 말했다.

"첫째라고 다 양보하래요. 첫째라고 제일 먼저 혼나요."

 나는 첫째를 해 본 적이 없어서 하나의 마음을 모조리 이해할 순 없었지만, 거의 처음으로 감정을 드러내는 하나를 보면서 마음이 복잡미묘했다.


 하나처럼 야무지고 똑부러진 아이는 어디가나 사람들에게 믿음과 신뢰를 받을텐데, 그래서 칭찬 받고, 인정 받고, 자주 상도 받을 텐데. 어쩌면 하나 본인은 막내로 태어나 가끔 꾸중 듣더라도 어리광이나 부리며 마냥 해맑게 자라고 싶을 수도 있었겠지 했다.


 막내로 태어나 예쁨이나 듬뿍 받다가 교실에서도 자기 하고 싶은대로만 해서 내 속을 뒤집어놓는 하나를 상상했다. 하나의 큰 눈과 뽀얀 볼이 왠지 막내 하나랑도 잘 어울렸다. 그렇지만 첫째라는 왕관의 무게를 지고 야무지고 똑부러진 아이로 자란 지금의 하나도 하나와 잘 어울린다. 이 글을 쓰는 동안도 하나는 야무진 표정으로 친구들의 캐릭터를 하나하나 그리며 작품 활동에 몰두해있다. 어쩐 일인지 하나의 작품은 걱정이 안 되어서 나는 별 다른 피드백을 던지지 않는다. 그저 하나만의 작품을 기다린다.


 이러나 저러나 하나는 하나 뿐이다. 몇 년 뒤에 하나를 만났더니 깜짝 놀랄 정도로 무책임해져 있다해도, 나는 하나뿐인 하나를 애정할 것 같다.


5. 큰 눈을 다채롭게 깜빡이는 지호


 나는 큰 눈을 깜빡이는 지호를 바라보며 궁금해한다.

'지호는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지호는 가끔 생각 여행을 떠나 어디론가 다녀온다. 나는 지호의 생각 여행지를 궁금해하며 하던 말을 계속 한다. 상상 속을 마구 유영하는 지호, 그림으로 그려두면 얼마나 예쁠까 싶다.


 지호의 생각을 엿들을 기회는 주로 점심시간에 주어진다. 지호와 마주 앉아 밥을 먹는 동안, 지호는 초롱초롱한 눈으로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한다. 어제 먹은 음식, 엄마 가게에서 만난 사람, 학원에서 한 공부, 무인가게에 가서 산 간식. 지호의 하루가, 지호의 생각이 이런 것들로 채워지는 구나 생각하며 나는 깍두기를 오각오각 씹는다.


 지호는 우리 반에서 영어 선생님을 맡고 있다. 지호는 또렷한 눈으로 친구들 영어 받아쓰기를 불러준다. '지호가 지금 자신감이 있구나, 마음 어깨가 활짝 펴졌구나.' 지호의 눈을 보면 알 수 있다.


 학기 초 수학 시간엔 분명 눈빛이 흐릿했는데, 요즘 수학 시간엔 눈빛이 화르륵 선명하다.

"지호야, 수학을 부쩍 잘하네."

"학원 다녀서요."

 공교육 교사로서 살짝 마음 아픈 대답이었지만, 수학에 들이는 시간과 노력에 대해 칭찬했다.

 "지호가 노력하니까 영어도 수학도 자신감이 부쩍 자라나네."

 "네."

 지호는 큰 눈을 참 다채롭게 깜빡인다. 지호의 큰 눈을 보며 지호의 마음을 엿본다. 나는 지호가 자주 멍때리고, 마음껏 어려워하다가 결국 또렷한 눈빛으로 사뿐히 다음 단계로 넘어가기를 응원하고 있다.


 몇 년 뒤에 지호를 떠올린다면, 상상 세계를 마구 날아다니는 큰 눈의 지호를 떠올릴 것 같다.


6. 저는 진지합니다 수찬


  11살의 아이가 어디까지 진지해질 수 있는지 궁금하다면 수찬이를 봐야 한다. 개학 첫 날부터 수찬이의 진지함이 범상치 않았다. 선생님 말은 모조리 듣고 그대로 따라보겠다는 진지한 의지가 엿보였다. 선생님이 왼쪽으로 걸으면 왼쪽을 보고, 콩으로 메주를 쑤어보라하면 우선 콩부터 갈아볼 모양이었다.


 아이들이 떠들어서 선생님이 힘들어보이면 수찬이가 이리 저리 고개를 돌리며 애를 닳다가 "조용" 외쳤다. 진지맨 수찬이의 진지한 명령에 아이들이 동조하면 수업 분위기가 금방 잡혔다. 급기야는 학급회의 때 바라는 점으로 "선생님이 말씀하실 때, 아이들이 더 잘 집중했으면 좋겠습니다."라고 건의했다. 보통의 11살이라면 쉬는 시간을 늘려달라거나 영화를 보여달라거나 그런 걸 건의하지 않나?


 수찬이의 진지함이 어디서 온 것인지 너무 궁금하여 나는 여러 번 수찬이 어머님께 여쭈어봤다.

 "타고난 건가요, 길러진 건가요?"

 수찬이 담임을 하며 쓴 글이 있다. 가장 잘 자랄 수 있는 아이는 어른들의 말에 귀기울이는 아이 아니겠냐는 내용이었다. 어른이 하라는 대로 복종하라는 건 아니고(복종이라니, 어감부터 싫다) 어른의 말에 귀기울이고 어른의 지도에 따라보고 그 안에서 성장하고 다듬어지며 차츰 자신의 생각을 쌓아가는, 그렇다.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수찬이는 너무 잘 클 것 같다는 말이다.


 진지맨 수찬이를 보며 염려 되는 게 있다. 정도를 지키지 않고, 진지한 걸 오글거린다 폄하하며 제멋대로 해버려야 직성이 풀리는 사람들로부터 혹여나 마음 다칠까봐, 바른 길을 걸어보려는 자신이 초라하다 느낄 순간이 올까봐 염려된다. 수찬이 담임인 동안 수백 번 말해주고 싶다. 까먹을래도 까먹어지지 않게.


"수찬아, 너의 바르려고 노력하는 마음, 눈빛, 표정, 태도. 그 모든 게 얼마나 소중한 보석인지 너가 어른이 될 동안 쫓아다니면서 말해주고 싶을 정도야. 마음껏 정도를 걸으며 멋지게 쭉 걸어가렴. 선생님은 너를 가르쳤던 올해를 오래도록 추억할테니,"   


 7. 파마머리 이야기꾼, 유찬


 유찬이는 이야기꾼이 되고 싶다고 했다. 거짓말 글쓰기를 한 첫 날부터 a4용지 4장 분량의 이야기를 완성하여 친구들의 칭찬을 한 몸에 받더니 틈 나는대로 여러 이야기를 만들었다. 그 중 발표작도 있고, 미발표작도 있는데 나는 고작 4학년의 유찬이가 그 긴 이야기를 시작부터 끝까지 써내려가는 모습을 보면서 신기하고 기특했다.


 어느날, 유찬이가 파마머리를 하고 나타났다.

"엄마가 파마 살살 해달라고 했는데, 엄청 심한 파마머리 됐어요."

 유찬이는 난감해했지만 나는 유찬이의 스타일이 흡족했다. 보통 글 쓰는 예술가하면 자유분방한 스타일이 머릿 속에 떠오르는데(내 편견인가?) 유찬이가 겉보기로도 예술가 느낌이 났기 때문이다. 그리고 어느 날은 동그란 테의 안경을 쓰고 나타났다. 그제야 예술가 유찬이 완성된 느낌이었다.


  유찬이는 뽀글머리를 하고, 동그란 안경을 쓴 채 글을 써내려간다. 그 모습이 창작의 고통에 빠진 베스트셀러 작가같다. 나는 유찬이가 도대체 어떤 이야기들을 써내려가는지 궁금한데, 유찬 작가님은 작품이 발표되기 전까진 그 내용을 누설하지 않는다. 스포를 하지 않는 자세까지 작가의 태도를 갖춘 아이다.


 나는 제멋대로 유찬이의 미래를 상상해본다. 모던하게 인테리어한 서재방에서 어른 유찬이가 머리를 헝끌어뜨리며 글을 쓴다. 안경이 스르륵 내려와 콧대에 겨우 걸쳤는데도 안경 한 번 올릴 새 없이 마구 키보드를 두드린다. 유찬이가 만든 캐릭터, 유찬이가 만든 상황과 갈등과 그 모든 것을 뒤집어 버리는 결말. 독자들은 유찬이의 글을 읽으며 헉 했다가 하 했다가 흑흑 한다.


 학급회의 때 유찬이에게 말했다.

"유찬아, 너는 완벽주의 성향이 있는 것 같아."

"우리 엄마가 저 완벽주의 성향이 있다고 했는데, 선생님은 다 아네요."


 유찬이는 나의 관찰력에 놀라보였지만, 유찬이를 세 달만 관찰하면 유찬이가 얼마나 완벽하게 해내려하는 지 파악할 수 있을 것이다. 특히 글을 써내려갈 때 그렇다.


오늘도 파마머리 이야기꾼이 글을 쓴다.     


 8. 돈이 제일 좋다더니, 호


 우리 반에서 가장 부자는 호이다. 금리 20%를 적용했더니 교실 빈부격차가 걷잡을 수 없이 벌어져 호의 재산은 거의 1000이 되었다. 호가 부자가 된 과정을 목격하며 마치 '부자 되는 비결' 책을 읽듯이 부자 되는 비법을 몇 가지 배웠다.


가. 아끼고 아껴라. 마치 굴비를 천정에 매달아놓고, 쳐다보기만 했던 자린고비처럼 호는 소비를 금하고 저축을 했다. 교실 매점 앞에서 한참을 서서 마치 굴비 쳐다보듯, 마이쮸와 몽쉘을 쳐다보았다. '돈도 많이 벌었는데 이제 그만 사먹지 그래?'라고 해도 침만 꿀꺽 삼키고 매점 문을 닫았다.


나. 동정심을 유발하라. 어쩐 일인지 호는 친구들에게 동정심을 잘 유발하여 호보다 돈이 없는 아이들이 호를 돕기도 하였다. 3, 5 도움을 받아 가뭄에 콩 나듯이 간식을 사먹는 호를 보며 저렇게 해야 부자되는 구나 생각했다. 도움 받은 돈을 저축하지 않는 게 다행이라 생각했다.


다. 발상을 전환하라. 5학년 선생님께서 5학년 학급매점을 열어준 적이 있었다. 가격이 우리 반보다 훨씬 싸서 아이들이 신나게 간식 쇼핑을 했다. 호도 간식을 좀 사길래 '그래, 이렇게 쌀 땐 사야지.'했다. 그리고 다음날, 호가 우리 반에서 그 간식을 수당을 붙여 더 비싸게 팔았다. 우리 반 매점엔 없는 상품이기에 팔릴 거라고 생각했단다. 11살 아이의 사업가 기질에 입이 턱 벌어졌다.


이런 과정을 통해 호는 우리 반 최고 부자가 되었다. 이자만으로도 친구들 두 달치 월급을 버는. 우리 반 머스크, 이하 호스크라 하겠다.


  이렇게 뼈를 깎는 인내와 명석한 사업가 기질로 부자가 된 호가 언제 돈을 쓸지 궁금했다. 그런데 호가 거의 모든 돈을 써서 반 전체 친구들을 위한 과자파티권을 사겠다고 했다. "너를 위한 걸 사기도 전에?" 호는 잠시 망설이는 표정을 짓다 다시 한 번 고개를 힘차게 끄덕였다. 돈이 좋다더니, 사실은 함께 행복한 게 더 좋은 호스크였다.


 노블리스 오블리주를 몸소 실천하는 11살이 우리 반에 있다.


 9. 화륵 넘어져도 툭툭 털고 걸어, 태율


 태율이에게 어떤 상황이 벌어지면 감정이 훅 올라가거나 확 내려간다. 태율이의 크고 맑은 눈에 눈물도 가득 고인다. 그러다 그것도 잠시, 나랑 조금 얘기하고 나면 아니면 다른 흥미로운 사건이 발생하면 고인 눈물이 마르지도 않은 채 신나게 논다. 재밌게 몸을 움직인다. 화륵 넘어져도 툭툭 털고 걷듯이, 태율이는 금방 일어선다. 이런 걸 어려운 말로 '회복탄력성'이라고 하는 거겠지.


 태율이는 자기 감정이 크게 요동치는 것에 대해 고쳐보고 싶다 했다. 그 말을 한 게 겨우 세 달 전이다. 그리고 최근에 학급회의를 해보면 아이들이 입을 모아 말한다. 태율이가 금방 자기 감정을 다스리게 되었다고. 태율이도 스스로 말한다.


"저 이제 금방 괜찮아요."


 겨우 세 달만에 고민을 해결해내는 사람이라니. 이건 나의 부러움을 한 몸에 받을만한 일이다. 인생에 해결되지 않은 문제와 고쳐지지 않는 습관을 30년 짊어지고 살며 자주 자기혐오에 빠지는 나로서는 태율이가 나의 인생 스승이 되어야하지 않나 생각한다.


 태율이가 처음 전학왔을 때, 태율이가 반장선거를 나왔다. 3년이나 함께 있었던 아이들 사이에서 반장선거에 나오는 전학생이라니. 반장선거에 떨어지고도 태연한 줄 알았던 태율이가 그날 집에가서는 한참 앓았단다. 그리고 다음날도 다다음날도 친구들이랑 신나고 재밌게 놀았다.


 일어설수만 있다면, 넘어져서 다치는 게 무슨 대수인가. 그냥 다들 태율이처럼 넘어질 땐 화륵 넘어지고, 일어날 땐 또 툭툭 일어나면 우리 사회가 얼마나 다채롭고 재밌겠는가. 다양한 낙법을 구경하는 재미가 있잖아.


 넘어져도 괜찮아, 느려도 괜찮아, 그 말은 딱 태율이에게 어울리는 말이다. 툭툭 일어설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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