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제일 좋아하는 시간으로 '시 쓰기, 글 쓰기, 책 읽기'를 말하는 어른이 되었으면 좋았겠지만. 그렇게 가벼운 거짓말 정도야 할 수도 있겠지만 사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시간은 컴퓨터로 리그오브레전드에 접속하는 시간이다.
유튜브로 에스파 노래모음 같은 걸 틀어놓고, 리그오브레전드에서 유일하게 할 수 있는 캐릭터 일라오이로 협곡에 입장한다. 같이 욕하면서 게임할 수 있는 친척동생 수지까지 들어온다면 그 시간은 내가 '정말로' 제일 좋아하는 시간이라 할 수 있다.
"협곡에 오신 여러분을 환영합니다." 엉덩이가 한 번 들썩, 일라오이가 "설교는 필요 없다. 부러진 뼈가 더 큰 교훈을 새겨줄 테니." 외치면 엉덩이가 또 한 번 들썩한다. 일라오이는 여러 명의 적을 한 번에 상대할 때 힘이 더 강해져 나는 여러 명이 나를 공격하기를 기대하며 힘을 키운다.
기대하던 순간이 왔을 때, 나는 궁극기 버튼을 누르며 훌쩍 날아오른다. 부러진 뼈가 더 큰 교훈을 새겨줄 테니. 파바방.
뼈는 일라오이 뼈가 부러질 때가 더 많아 나는 여전히 브론즈다. 일라오이를 3000판은 했을 텐데 여전히 브론즈라는 게 놀랍다며 남의편이 칭찬을 한다.
"여보는 정말 쇼킹 어메이징한 사람이야."
실버였던 적도 있다고, 브론즈 중에는 제일 잘하는 브론즈라며 목소리를 높여보지만 도대체 왜 애정과 시간을 쏟았음에도 나의 일라오이는 여전히 브론즈일까 영문을 알 수 없다. 내가 길들인 것에는 책임이 있다고 어린 왕자가 말했는데, 나의 일라오이는 책임이 없다. 무정한 브론즈 일라오이여.
저녁식사를 하고 나면 잠들 때까지 딱 2시간이 남는다. 책을 읽을까 스트레칭을 할까 고민하다가 컴퓨터를 켜고 헤드셋을 쓴다. 카톡을 보낸다. "김수지, 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