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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Genie Nov 07. 2024

우리는 함께 패배할 것입니다.

학부모님께 편지,

 안녕하세요, 어머님 아버님. 오늘은 질문중심수업모델을 적용하여 화산과 지진에 대해 스스로 질문을 하고, 질문을 기반으로 탐구하여 발표하는 수업을 했습니다. 새로운 수업 시도여서 잘 굴러갈까 잠깐 고민하기도 했는데요, 수업 끝나고는 아이들에게 "역시 너희는 뭘 시켜도 잘한다."라고 말했습니다. 말했다기보다는 혼자 감탄하며 읊조렸다고 표현하는 게 더 정확한 것 같기도 합니다.   


 제가 "책 펴요." 하면 책 펴고, "탐구해 보세요." 하면 여덟 명 모두 탐구하는 교실이 저에겐 하루하루 감동이고, 호사입니다. 어찌 보면 당연한 걸 수도 있는데요, 이 당연한 기쁨을 못 누리고 하루하루 힘겨워하는 동료교사분들이 참 많아서요. 올해, 매일매일 다행스러운 마음으로 가르치고 있습니다.


 며칠 전 PD수첩에 '아무도 그 학부모를 막을 수 없다'편이 방영되었습니다. 그걸 보면서 호흡이 겨우 쉬어지는 기분이 들었습니다. 제가 쓰는 글에, 00 초등학교에서 교사로 살면서 얼마나 행복한지 자주 적곤 했는데요. 사실 운이 좋은 거면서, 너무 행복하다고 자랑하며 힘들어하는 동료들은 소외시켜 버리는 거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 미안해지기까지 했습니다.


 요즘의 교권 문제에 대해 동료선생님들과 내린 결론은, 교권이 무너지는 것은 교사뿐만 아니라 교육을 받아야 하는 선량한 보통 학생들에게도 위기이자 피해라는 것입니다. 교실에서 교사의 지시가 무너지면, 교사의 표정이 어두워지고 교사가 아이나 학부모의 눈치를 보기 시작하면 결국엔 아무도 보통의 선량한 학생들을 지킬 수 없습니다. 마땅히 지도를 받아야 하는 문제행동 아이도 교육의 기회를 박탈당하는 거나 다름없지요. 그 누구에게도 승리가 아닙니다. 우리는 함께 패배할 것입니다.


 행복한 교사인 것처럼 우쭐대는 저도 사실은 항상 두렵습니다. 나의 '말'로는 도저히 통제되지 않는 아이를 다시 만나게 될까 봐서요. '말'밖에 할 수 없는, 절대 '소리'를 지르거나 누군가의 '기분을 상하게 해서는' 안 되는 저는 특히 새 학기가 시작되기 전 선명하게 겁에 질립니다. 앉으라고, 책 펴라고 소리를 고래고래 지르는데 모든 학생이 제 지시를 가뿐히 무시하는 악몽을 꾸지 않은 것도 얼마 되지 않았습니다.


 올해 제 말을 잘 들어주는 아이들 덕분에, 교육적으로 해보고 싶었던 거의 모든 시도를 해보았습니다. 그때마다 이렇게나 잘 따라주는 아이들 덕분에 신났고, '얼른 더 좋은 거 배워와서 아이들에게 적용해야지.' 욕심이 났습니다. 교육학 책도 신나게 읽었고, 교사 모임도 열심히 나갔습니다. 배우고 적용하고 뿌듯해하던 올해의 모든 순간들이 무척 행복하고 넘치게 좋았습니다.


 저 잘한다고 소문도 좀 났다는데, 다 우리 아이들 덕분이고 항상 믿어주시는 우리 반 학부모님들 덕분입니다. 너무너무 감사합니다. '너무너무 감사합니다'는 지나치게 유치한 표현처럼 보이지만요.


 또 말이 길어졌네요. 말을 줄이려고 노력하겠습니다. 좋은 밤 보내세요. 감사합니다.  





 안녕하세요, 어머님 아버님. 오늘은 아이들과 소수의 덧셈 뺄셈 놀이로 소리를 빽빽 지르면서 놀고, 수학 문제도 열심히 풀고, 머리 식힐 겸 '타코 캣 고트 치즈 피자' 보드게임을 했습니다. 3명부터 8명까지 할 수 있고, 규칙도 아주 간단하여 집에서도 한 번 해보시면 어떨까 싶습니다. 가끔 보드게임 같은 걸 하면 분위기가 환기되는 것 같아서요.


 국어 시간엔, 미래의 나를 주인공으로 거짓말 상상을 해보았습니다. 어떤 역경이 있고 그걸 극복하는 나에 대해서요. 인생에 역경 같은 건, 아무래도 없는 게 제일 좋겠지요. 제 친구가 "인생에서 힘들었을 때? 딱히 없는데...." 했을 때 '여태까지 한 번도 안 힘든 인생이 있을 수가 있구나.' 싶어 놀랐던 기억이 있습니다. 열한 살을 저와 함께 보내준 우리 아이들의 삶에도 아주 오래도록 힘든 일은 한 번도 없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극복할 역경이 없어서, 독한 마음과 앙 다문 입을 가질 필요가 없는 삶. 얼마나 좋아요.


 그렇지만 역경이 있다고 해서 좋지 않은 삶은 아닌 것 같습니다. 그 또한 좋죠. 역경 때문에 휩쓸리고 넘어지고, 못 일어날 것 같았는데 정신 차려보니 역경이 벌써 저 멀리 지나가고 있다는 걸 알아차리는 삶. 얼마나 기특합니까. 애들이랑 가볍게 활동을 해놓고, 괜히 제 생각이 복잡해지네요. 허허.


 어제는 '어린이들의 세계'라는 책을 읽었습니다. 글이 참 소복하니 편안하여 누운 자리에서 반 넘게 읽었어요. 어린이들과 글쓰기 교실을 운영하며 같이 읽고 쓰는 선생님이 쓴 책이에요. 한동안 베스트셀러에 올랐고, 참 많이도 팔린 책입니다.


 작가님에겐 어릴 적 네 식구가 단칸방에서 산 시절이 있었습니다. 어느 날 친구네 놀러 갔는데 2층짜리 단독주택이었답니다. 그때 받은 충격이 꽤 강렬하셨다고 해요. 그 때문인지 작가님은 '슈퍼맨이 돌아왔다' 같은 육아 예능을 잘 안 보신답니다. 너무 으리으리한 집과, 어마무시한 양육을 하는 영상을 보는 어린이들을 생각하면 보고 싶은 마음이 없어지신다고 하네요. 작가님은 말합니다. 아이들이 미디어로 세상을 봐야 한다면, 가장 외로운 아이가 봐도 좋은 영상들이 만들어졌으면 좋겠다고요. 남들이 얼마나 비싼 차를 몰고 화려한 집에 사는지가 아니라 자연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사람들은 어떻게 어울리며 행복 해하는지에 대한 영상들이 아이들 앞에 펼쳐지면 좋겠답니다.


 일기장에 적어놓고, 일기장을 챙기지 못하여 기억에 나는 대로 적어보았습니다. 아이들이 너무 많은 것들로부터 초라해지지 않길 바라며 옮겼습니다.


 벌써 11월이네요. 이번 가을에도 근사한 순간들이 가득하시길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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