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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Genie Apr 08. 2021

[야학봉사일지]2. 자기소개

“안녕하세요. 초등교사로 일하고 있는 서른 살 김은진입니다.”
 
 첫인사로 이 말 말고 다른 말을 했으면 좋았을 걸 그랬습니다. 가령, 여기에 어떻게 오게 되었는지라던가, 당신들을 처음 만난 지금 기분이 어떤지라던가, 이도 저도 아니면 미사여구 다 빼고 “만나서 반갑습니다. 김은진입니다. 잘 부탁드립니다”라고만 해도 괜찮았을 것 같은데 말이죠.
 
 첫 수업이니까 자기소개부터 하기로 했습니다. 수업을 함께 하게 된 한 달 선배 교사가 먼저 자기소개를 했습니다.
“안녕하세요. 저는 충북대에서 약학을 전공하고 있는 23살 김민희입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저도 선배교사가 한 인사 포맷을 빌려 직업과 나이로 저를 소개했습니다.
“안녕하세요. 초등교사로 일하고 있는 서른 살 김은진입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다음은 학생들 차례였습니다. 누군가가 자기소개 바통을 이어받아주시기를 인자한 눈 모양을 하고 기다렸습니다. 기대와는 달리 정적이 흐르더군요. 야학을 꽤 오래 다니신 사이고, 기껏해야 처음 만난 사람은 나 하나인데 자기소개가 뭐라고 그리 망설일 일인가 싶었습니다. '학생들이 생각보다 비협조적인가?'라는 생각도 스치더군요.

 그러다가 가장 지긋하시고, 가장 직설적으로 표현하시는 편인 김옥희 학생이 먼저 입을 여셨습니다.
“봉명동 사는 김옥희입니다.”
 학생들이 그제야 봇물 터지듯 자기소개를 보탰습니다.
“바로 앞에 사는 이연자입니다.”
“복대동 사는 박순복입니다.”
“복대동 살아요, 최정숙이고요.”
“율량동 사는 신영미예요.”

 저는 그제야 알아차렸습니다. 무난하기 짝이 없다 생각했던 직업과 나이로 하는 자기소개가 적어도 지금만큼은 무난하지도, 당연하지도, 편하지도 않은 자기소개였다는 걸 말입니다. 말하고 싶은 직업이 없고, 나이도 별로 말하고 싶지 않다면 직업과 나이로 하는 자기소개만큼 어색하고, 불편하고, 피하고 싶은 순간이 어디 있겠어요. 저는 그걸 제 소개, 학생들 소개 다 끝나고 나서야 느껴버린 겁니다. 부끄러웠습니다. '센스가 부족했다.'라는 표현이 가장 적합하게 느껴졌고요.
 
 “봉명동 사는 김은진입니다.”라고만 했어도 깔끔하고 좋았을 텐데요. 강단 있어 보여서 더 마음에 드는 것 같기도 합니다. 자기소개 문장으론 너무 짧다 싶으면 학생들을 처음 만난 제 마음이나 전해볼 걸 그랬어요. 이런 식으로 말이에요.


“만나서 너무 반갑습니다. 여기 계신 학생분들이 글 잘 읽고 쓸 수 있도록 열심히 도와드릴게요. 도움이 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잘 따라와 주세요.”
 
 서점에 가니까 베스트셀러 칸에 '말 센스'라는 책이 있더라고요. 반성 모드로 정독해봐야겠습니다. 센스 없는 말들은 전부 '나는 괜찮은데, 너는 안 괜찮을 줄 몰랐네.'의 순간에 뱉어진 말들이니까요.
 
 이번 학년을 잘 마치고, 혹시 내년에 또 다른 야학 학생들에게 자기소개를 할 기회가 주어진다면 저는 딱 이렇게 자기소개를 하고 싶어졌습니다.

“만나서 반갑습니다. 가을을 제일 좋아하는 김은진입니다. 책 읽는 거랑 글 쓰는 것도 엄청 좋아하고요. 글 읽고 쓰는 거 공부하시는 데 도움이 될 수 있을까 해서 왔습니다. 열심히 도와드릴게요. 저랑 같이 재밌게 읽고 써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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