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발을 짝짝이로 신고 출근한 여성

by 현주

평소와 똑같이 회사에 도착해서 열심히 일을 하고 있었다. 화장실을 가려고 자리에서 일어섰는데 그제야 내 발이 보였다. 운동화를 짝짝이로 신고 나온 것이다.


"계획을 세워서 그대로 이행해 보세요."

의사 선생님의 제안에 그대로 했을 뿐인데...


그러니까 상황은 이랬다. 나는 아침에 밥을 먹고, 짐을 챙겨서 자전거를 타고 출근을 했다.

시간에 꼭 맞춰서 나가려고 몇 번이나 시뮬레이션을 돌려봤다.

그리고 그 어떤 충동에도 굴하지 않고 내가 세운 계획을 정확히 지켜서 출근했는데,

계획에만 몰두한 나머지 신발을 뭘 신었는지도 모르고 아무거나 신고 나온 것이다.


인정하기 싫지만 이게 나였다.

무엇 하나에 집중하면 그 외에는 아무것도 보이지도, 고려하지도 않는 내 성향은 누가 봐도 ADHD의 그것이었다.





흔히들 생각하는 ADHD의 특성이 하나에 집중하지 못하는 것인데, 사실 ADHD는 자신이 꽂힌 것에 무섭게 몰두하는 경향이 있다. 다만 '필요한 일'이 아닌 '하고 싶은 일'을 먼저 해서 문제가 될 뿐이다.


ADHD를 겪고 있는 사람들은 그럭저럭 괜찮게 돈을 벌 수 있는 일보다 내가 좋아하고 잘할 수 있는 일을 하는 게 중요하다.


현재 나는 운이 좋게도 내가 좋아하는 일을 찾아서 하고 있는데, 이걸 찾기까지 얼마나 많은 이직을 했는지 모른다. 신의 직장이라고 불리던 곳을 고작 1년만 다니고 때려치운 이유도 내 성향과 맞지 않았기 때문이다. 주변 사람들은 내가 배부른 소리를 하는 거라 생각했는데, 나도 오랫동안 밥벌이를 하기 위한 나름의 전략적 포기였다.


강하게 몰입할 수 있는 것을 하지 않으면, 몰입을 위한 노력에 더불어 다른 생각이 드는 충동을 끊임없이 억눌러야 하기 때문에 남들보다 몇 배의 에너지가 든다.

너무 비효율적이지 않나.

차라리 하나에 꽂히면 미친 듯이 몰두하는 이 능력을 밥벌이에 쓰는 게 훨씬 효율적이고 경제적인 선택이다.





물론 그 미친 듯이 몰두하는 능력이 '내가 원하는 것'에만 작동하기 때문에 회사 일이 아무리 재미있어도 결국은 '해야 하는 일'이라는 틀에 갇히면 의욕이 사라질 수도 있다. 그런 점에서 지금의 회사는 꽤 괜찮은 편이다. 일의 방향과 목표만 정해주고 세부적인 실행 방법은 자유롭게 맡겨주니까.


짝짝이 운동화를 발견했을 때, 일부러 옆자리 동료에게 자랑을 했다.

"내 신발 좀 봐"

그 말에 주변 동료들이 내 발을 보고 웃음을 터뜨렸다.

"괜찮아, 너가 하는 일만 잘하면 되는 거지." 동료가 어깨를 툭 치며 위로했다.


이런 일이 처음은 아니었다. 지난달에는 발표 준비에 너무 집중한 나머지 양말을 신지 않고 회사에 온 적도 있었다.


내가 매일 하는 실수들. 어쩌면 이게 내 삶의 일부분인지도 모른다. 계획표를 만들고, 시간 관리 앱을 깔고, 자기계발서까지 읽으면서 '보통 사람'처럼 사는 법을 배우려고 했는데, 결국 나는 이런 사람이었다.


짝짝이 운동화를 신은 채 화장실로 걸어가면서 생각했다. 그냥 집에 들러서 신발을 바꿔 신을까? 하다가 그냥 두기로 했다. 이게 나니까.


ADHD는... 뭐랄까, 축복도 저주도 아닌 그냥 내 일부였다. 때로는 미친 듯이 집중해서 밤을 새우고 놀라운 결과물을 만들어내기도 하고, 또 때로는 이렇게 짝짝이 운동화를 신고 출근하는 바보가 되기도 한다.



퇴근 길, 메모장에 적었다. "내일은 신발 확인하고 나오기."

그리고 바로 그 메모를 잊어버릴 것이란 사실도 알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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