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HD의 고질병 : 과몰입에 대하여
'한 번 일에 몰두하면 너무 심하게 몰두하는 편이며,'
'한 가지에 몰입하는 정도가 다른 사람보다 높습니다.'
고등학생 때 했던 기질 테스트 결과에서 나는 '몰두/몰입'하는 정도가 남들보다 높다고 나왔다.
때론 그게 '너무 심하게' 나타났다고 하니, 내 과몰입의 역사는 깊고도 유구한 것이었다.
그때는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고등학생이 몰입을 잘하는 건 좋은 일이지 않나.
책을 좋아해서 쉬는 시간에도, 야자 시간에도 움직이지 않고 한 권을 뚝딱 읽어내곤 했다.
대학생 때도 별반 다를 바 없는 것이, 피포페인팅에 빠져서 연락이 두절되기도 했고,
온라인 게임에 빠지면 시간 감각이 완전히 사라졌다.
웹툰에 빠지면 연재분을 다 볼 때까지, 유튜브에 빠지면 관련 영상을 모두 볼 때까지 멈출 수 없었다.
마치 뇌에 브레이크가 없는 것 같았다. 시작하면 끝까지 가야 했고, 중간에 멈추는 건 불가능했다.(멈춰야한다는 생각조차 하지 않았던 것 같다.)
첫직장에 다니면서도 이런 패턴이 종종 나타났는데, 업무 중에 갑자기 궁금한 게 생기면 그것부터 해결해야 했고, 한 가지 업무에 빠지면 시간 가는 줄 모르고 했다. 그러니 이런 내 성향은 '시간에 맞춰 절차를 정확히 따라야 하는' 업무에는 최악이었다.
그러나 나의 가장 큰 문제는 따로 있었으니, '감정에 대한 과몰입'이었다.
누군가를 좋아하면 너무 좋아했고, 싫어하면 너무 싫어했다. 그때그때 내가 느끼는 감정에 몰두해서 다른 상황,환경을 전혀 고려하지 못한 것이다. 그러니 인간관계는 늘 어렵고 삐그덕대며 꼬이기 일쑤였다.
누군가를 좋아하면 냅다 직진해버려서 상대방을 놀라게 하고, 그 마음의 무게감에 당황하게 만들었다. 상대방의 템포나 거리감을 전혀 고려하지 못한 채, 감정이 이끄는 대로 표현하고 행동했기에 관계는 자주 비대칭이 되었다. 반대로 누군가를 싫어하게 되면, 그 사람이 지은 표정이나 했던 말투를 나노단위로 쪼개서 의미를 부여했고, 거기서 내 나름의 논리를 만들어 분노를 키웠다. 사실은 사소한 일이었을지라도 내 머릿속에서는 '이 사람이 나를 무시했어'라는 확신으로 뻗어나가 결국 관계를 단절하거나 감정적으로 폭발해버리는 경우가 왕왕 있었다.
그러니까, '과몰입'자체가 죄는 아닐지라도 내게 있어 과몰입은 죄였다.
의사선생님이 나를 두고 ADHD를 의심한 것도 바로 이 과몰입 때문이었다.
상담시간에 선생님의 어떤 말 하나에 꽂혀서 말꼬리를 물고 늘어지는 일이 잦았고, 어떤 생각에 꽂히면 다른 이야기로 전환시키기까지 많은 에너지가 들었다.
우리는 내 안에 에너지가 고조될 때 '잠시 멈춤' 버튼을 눌러보는 연습을 하기로 했다.
타이머를 설정해서 50분 일하면 5~10분정도 쉬는 시간을 갖기로 했다.
감정이 지나치게 고조될 때는 하루 이틀 거리를 두기도 하고, 잠시 취미 생활을 하며 에너지를 다른 곳으로 분산 시키기로 했다.
그렇게 나는 과몰입을 조절할 수 있게됐다.
라고 하면 정말 좋겠지만, 현실은 녹록치 않은 법이다.
여전히 나는 타이머를 맞춘 것조차 잊고 몇 시간을 쉬지않고 일하고, 한번 감정에 빠지면 하루종일 우울감과 분노에 휩싸이곤 한다.
그럴 때마다 비참한 심정이 들어 이렇게 외치고 싶어진다. "과몰입이 죄는 아니잖아!!"
아직도 나는 내가 몰입에 잠기는 순간을 사랑한다.
다만 그 깊이만큼, 스스로를 챙기고 멈출 줄 아는 힘도 함께 길러야 한다는 것을 배우고 있다.
언젠가 '나는 과몰입과 함께 살아가는 방법을 터득했다.'라며 글을 마무리하는 순간이 오기를...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