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맞다! ADHD 약 놓고왔다 !

by 현주

산뜻하게 아침을 맞이하고 지하철에 몸을 맡겼는데, 이상하게 노곤노곤했다.

코난이 고민하던 사건에 실마리를 얻을 때처럼 번뜩!하고 뭔가가 내 머리를 스쳤다.


"아 맞다! 약 안먹었다!"


이럴때를 대비해서 파우치에 여분의 ADHD약을 3일치 정도 챙겨 다니는데, 웬걸 파우치도 놓고왔다.


조금 전의 상큼한 기분은 온데간데 없어지고 불안해서 미칠 지경이 된다.

중요한 미팅이 있는데 집중 못하면 어떻게 하지,

일하다가 졸리면 어떻게 하지,

중요한 내용을 까먹으면 어떻게 하지....


약을 먹는다고 모든 증상이 나아지는 건 아니지만......

아니,솔직히 말하면 여러 방면에서 증상이 나아진다.

책상에 앉아 업무에 집중하기까지 시간도 짧아지고 집중 시간도 더 길어진다.

좀 더 정돈된 하루를 보낼 수 있다고나 할까.


잠이 급격히 쏟아졌다. 몸도 무거운 기분이 들었다. 안되겠다 싶어서 회사에 도착하자마자 커피를 한 잔 사서 시원하게 마셨다. 스케줄러에 꼼꼼하게 오늘 해야 할 일을 적고 하나하나 지워가며 일을 시작했다.

점심 이후 2~3시즈쯤 살짝 고비가 왔으나, 커피를 한 잔 더 마시고 다시 to-do 리스트를 보며 나머지 일을 처리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잘못한 건 없었는지, 까먹은 건 없는지 체크해보는데 어라? 평소보다 더 효율적으로 하루를 보낸거다.


어느 순간 약에 너무 의존해온 것은 아니었을까?

"약 복용 전후 차이가 너무 심해서 현타 와요."

정신과 정기 방문일에 의사 선생님께 한탄을 좀 했다.

선생님께서는 "약을 복용하면서 내 행동을 체계화하는 습관을 들이다보면 언젠가 약을 복용하지 않아도 되는 날이 올 것"이라고 위로해주셨다.

어쩌면 이 하루가 그 날을 위한 연습이지 않나 생각해본다.


자칫하면 실수할까봐 하루종일 긴장했더니 집에 오자마자 잠에 들었다.

지금 생각하면 그날의 내 자신이 안쓰럽기도 하고, 기특하기도 하고 그렇다.

약 없이도 잘 해내보려 애쓰던 모습이 말이다.


언젠가는 정말로 약의 도움 없이도 정갈한 일상을 보낼 수 있지 않을까? 아직은 확신할 수 없지만, 적어도 그 가능성을 엿볼 수 있었던 하루였다. 그리고 그것만으로도 이 하루가 갖는 의미는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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