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좀 센 거 들어갔어요. 먹어보고 안 맞으면 연락 주세요~"
진땀이 날 정도로 아주 뽑기 힘든 사랑니였다면서, 그래도 참 깨끗하게 뽑혔다고 뿌듯해하시던 치과 선생님께서 말씀하셨다. 몸에 있던 뼛조각 하나가 나간 자리에 구멍이 뻥 뚫렸으니 세균 감염이 되지 않도록 항생제를 처방해 주신 거였다.
지금도 글을 쓰려니 욕 나올 것 같은 이 강력한 항생제는 나를 아주 차근차근 지르밟기 시작했다. 덕분에 나는 장장 6개월 동안 다양한 염증 반응과 싸우며 인간의 몸이 얼마나 유기적이고 복잡한지 확실히 깨달았다. 그리고 나처럼 통증의 원인이 무엇인지 모르고 오랜 시간 병원을 투어하고, 돈 낭비하고, 정신적으로 고통받는 사람들이 여전히 많다는 것도. 밉고도 소중했던 나의 경험담을 글로 써야겠다고 다짐할 수 있었던 계기였다.
자 이제부터 나 같이 평소 과민성 대장 증후군을 앓고 있고 소화기관이 약한 사람이, 강력한 항생제를 만나면 어떤 일이 생기는지 보여주는 단계별 증상을 소개하겠다.
항생제를 2~3일 정도 복용했을 때부터, 음식을 먹으면 뱃속이 끓듯이 아프기 시작했다. 특히 배가 더부룩해지고 팽만감이 느껴졌다. 화장실을 다녀와도 기분이 썩 유쾌하지 않았다. 먹으면 먹는 대로 신호가 오니, 거의 관장약을 먹은 수준이었다. 가만히 있으면 배에서 꾸르륵꾸르륵 거리는 물소리가 났다. 뱃속이 빈 줄 알고(정확히는 식욕을 참지 못하고) 음식을 먹었다가 또다시 비웠다...
급기야 열이 나고 오한까지. 또 이놈의 지긋지긋한 장염이 찾아왔구나 싶었다. 늘 그랬듯 자극적이지 않게 먹고 장 유산균을 꼬박 잘 챙겨 먹으면 된다고 생각했다. 그땐 사태의 심각성도 잘 몰랐지만, 식단을 어떻게 얼마나 관리해야 할지 전혀 몰랐다. 그저 매운 엽기떡볶이나 불닭볶음면을 먹지 않는 거면 식단 관리는 충분하다고 생각했으니까. 그것만으로도 이미 너무나 가혹한 형벌이었다.
그런데 이것보다 더 한 형벌이 있었으니! 치아 구석구석 꼼꼼히 닦아도 닦아지지 않는 심한 구취였다. 살면서 처음 뽑아본 사랑니라, 후유증이 만만치 않은가 보다 생각했다. 며칠 뒤 실밥을 뽑기 위해 친절한 치과 선생님을 다시 찾아갔다. 구멍 난 잇몸은 잘 아물고 있다고 하셨다. 다른 불편한 점은 없냐고 하셔서 항생제를 먹고 배가 아파서 복용을 중단했다 말씀드리고, 심한 구취가 나는 이유에 대해 여쭤봤다.
"항생제를 좀 센 거 드려서 그래요. 더 먹지 않으면 돼요~ 그리고 사랑니를 뽑았다고 구취가 나진 않는데... 그건 내과를 가봐야 할 것 같아요."
오케이. 사랑니 때문은 아니라는 걸 알긴 알았는데, 이 민망함과 수치스러움은 누가 감당할 거야. 애써 당당한 척 알았다며 치과를 빠져나왔다. 그리고 바로 내과를 갔으면 좋았겠지만 '어차피 또 장염이라고 할 텐데', '시간이 해결해 주겠지'라는 안일한 태도로 상황을 좀 더 지켜봤다.
하.지.만 항생제 복용을 중단하고 나서 장이 원 상태로 회복하기까지는 시간이 꽤나 걸렸다. 아무리 장 유산균을 잘 챙겨 먹어도 소용없었다. 출근해서 퇴근할 때까지 힘겨운 싸움을 계속할 수는 없어서 약국에 갔다. 약사님께서는 집에서 먹는 유산균으로는 안 된다며 혼합유산균과 배탈약을 같이 주셨다.
약국에서 산 약을 먹고 나니 썩은 내 나던 구취도, 과민해진 뱃속도 조금 나아지는 듯 했는데... 또 일이 터졌다.
다음 날 자고 일어났더니 목이 삐끗한 것처럼 너무 아파서 움직일 수 없었다. 일자목이라는 얘길 들은 적 있었는데 혹시 목 디스크가 터진 건가? 혼란에 혼란이 더해진 다음날, 그야말로 관절 통증의 향연이었다. 왼쪽 엄지발가락 관절이 발갛게 부어오르고, 턱이 안 벌어지기 시작했다.
평소 오른쪽 턱관절 쪽에서 딱딱 소리가 났던 게 문제였을까? 사랑니를 빼내는 것과 비교도 안 될 정도로 극심한 통증이 계속됐다. 이번엔 턱관절을 전문적으로 진료해 주는 구강악안면외과 치과로 갔다. 턱관절 장애 증상과 비슷했기에 우선은 소염진통제와 항염제를 먼저 먹어보고 치료 방향을 잡아보기로 했다.
아주 호옥시, 왼쪽 엄지발가락 통증이 턱과 관련이 있을지 의사 선생님께 여쭤봤다. 턱관절이 틀어지면 신체 불균형으로 인해 골반이나 무릎 등에도 염증이 생길 수 있다는 글을 본 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엄지발가락 통증은 턱과 전혀 관련이 없으니 정형외과를 가보세요~"
조용히 나와 정형외과로 갔다. 증상을 설명하자 통풍이 의심된다고 해서 혈액 검사를 했지만 땡. 요산 수치는 오히려 더 낮고, 염증 수치만 남들보다 2배 가까이 높게 나왔다. 결국 나는 또다시 소염진통제를 처방받았다. 바로 다음 주, 강원도 여행이 잡혀 있었기 때문에 비상약처럼 두고 너무 아프면 꺼내 먹었다.
진통제는 통증을 경감시켜줄 뿐, 아무 일도 없던 것처럼 낫게 해주는 치료제는 아니었다. 그럼에도 이 바보 같고 미련한 여인은 이제 좀 살만하다 싶으면 고춧가루가 가득 들어간 음식과 술을 함께 먹었더랬다. 이것도 인간의 나약한 심리를 휘어잡는 진통제의 부작용이라고 해야 할까나.
그렇게 강원도 여행의 마지막 날, 원하지 않는 종착역에 떨어졌다. 멀쩡했던 오른쪽 무릎이 코끼리 다리처럼 불어 오르기 시작한 것이다. 이내 퉁퉁 부은 무릎이 굽혀지지 않아 제대로 걸을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아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