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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가 노동을 줄여 줄 거라고 누가 그래

인간은 생산하기 위해 태어나지 않았다.

by 윤슬

우리에게 필요한 건 혁신이 아니라 혁명이다.


올해 내 새해 첫 곡은 레미제라블이었다. 2025년에야말로, 진짜 자유를 위해 세상을 바꾸든, 내 삶을 바꾸든 하겠다고 다짐했기 때문이다. 그건 우리 사회가 더 많은 돈이 아니라 더 많은 시간을 확보할 수 있는 삶으로 변화하기를 바라는 나의 간절한 마음이었다.


요즘 그런 내 머리를 지끈거리게 하는 이슈가 있다. 바로 딥시크의 등장과 그에 따른 반도체 특별법이니 뭐니 하는 논란들이었다. 요는, 한국이 노동 시간 등 근로 환경을 너무 규제해서 (일축하자면 일을 너무 안 해서) 딥시크같은 저가형 AI 신개발 혁신이 불가능하다는 (지극히 사측의) 입장이 있었고, 이에 법적 규제를 완화하고 혁신을 위해 노동력을 지금보다 더 많이 갈아 넣어야 한다는 주장이었다.


나는 이 일련의 장황한 개소리를,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었다. 아니, 지금 주 40시간 노동도 그냥 하루 종일 일만 하다 죽으라는 자본가의 저주가 아닌가 싶은데 주 52시간 넘게 일을 시키자고? 고작 "혁신"을 위해서? 어이가 없었다. 도대체 국민들이 일하다 전부 과로사하게 되면, 그까짓 기술 혁신이 다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사람이 있고 기술이 있는 것이지, 기술이 있고 사람이 있는 게 아니다. 사람들이 다 과로로 죽어나가는데 더 뛰어난 반도체가 있어 봤자 무슨 쓸모냐는 거다.


애초에 혁신이 왜 필요한 것인가? 그렇게 첨단기술이 우리의 삶에 꼭 필요할까? 더 훌륭한 반도체를 만들어서 AI 시장을 선도하게 되면, 국민들의 팍팍한 삶이 더 나아지는가? 반도체를 개발해서 12000원 하는 밥값이 갑자기 6000원으로 낮아진다면 백번 이해해 줄 수 있다. 소비자 생활 물가 지수가 낮아지고, 최저 임금은 올라서 서민들이 살기에 편안해진다면, 반도체를 개발하는 게 맞겠지. 그런데 정작 현실은 어떠한가? 더 뛰어난 기술 혁신과 반도체를 개발해 봤자 대기업 회장님들 기분이나 좋고 말지, 서민들 삶에는 기실 아무런 긍정적 영향도 주지 못했다.


기술의 혁신을 우리는 꾸준히 이루어 왔으나, 지금은 1시간 일 해도 밥 값조차 벌 수 없는 형국에 처했다. 이런데도 기술 혁신같은 게 꼭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건가? 대체 인간 지능을 두고 "왜" 인공 지능을 만들어야 하는 걸까? 더 많이, 더 빨리 생산해야 하는 이유가 대체 뭘까? 딥시크 같은 AI가 "왜" 필요한 걸까? 국가 경쟁력을 갖추기 위해서라는 명목으로 반도체에 매달려야 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첨단 기술을 "왜" 개발해야 하는 걸까? 첨단 기술이 필요한가? 지금보다 더 빠르고, 더 복잡하고, 더 정신없는 세상에서 살아야 하는 이유라도 있는 건가?


기술 발전에서 뒤처질지도 모른다는 그 알량한 불안감 때문에 "왜" 하는지도 모른 채, 맹목적으로 기술혁신에만 목을 매고 있는 이 상황을 전혀 이해할 수 없다. 우리도 빨리 신기술을 개발하고, 더 좋은 반도체를 만들어야 시장에서 도태되지 않는다고 전전긍긍하고만 있는 정부가 답답하다. 무언가를 해야한다고 불안해하기 전에, 하려는 일들을 "왜" 해야 하는지에 대해 멈춰 서서 고민해 보아야 한다. 이것들이 정말 민생의 안정에 도움이 되는지 말이다.


반도체는 우리의 삶을 더 나아지게 해 주었는가? 여전히 청년 실업률, 우울증, 자살율, 산재 발생율은 세계 최고 수준에 달한다. 급여 대비 물가는 터무니없이 높고, 사람들은 죽어야 끝나려나 싶은 출퇴근의 굴레에 갇혀 매일매일 피로하게 살아간다. 옛날보다 기술이 발전했음에도, 속도만 빨라졌을 뿐 하는 일이 늘어나니 그저 숨이 막힐 뿐이다. 이제 인간은 숨가쁠 정도로 정신없이 더 많은 일을 처리해야 하는 과로에 시달리게 되었다. 그게 기술 발전의 현실이다.


AI가 발전하면 불필요한 노동에서 벗어나게 될 거라고 누가 허황된 꿈을 꾸었는가? AI의 발전은 인간을 더한 과로의 늪으로 밀어넣을 뿐이다. 당장 딥시크 등장 이후 얼렁뚱땅 주 52시간이라고 교묘하게 야근을 당연시 하는 것도 모자라, 주 52시간 특별법이니 뭐니 하는 것들을 발의하며 노동자를 24시간 무한 생산 공장 취급하고 있지 않은가? 지금 상황만 봐도 기술이 발전하면 노동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이라 말하는 건 다 헛소리에 불과하다는 걸 알 수 있다.


기술 혁신이란 그저 배불뚝이 자본가들의 배나 불려 주는 일일 뿐인데, 도대체 여기에 어떤 대의가 있다고 노동자를 착취하려 드는 건지 모르겠다. 일을 너무 안 해서 시장 경쟁력이 없으니 일을 더 많이 해야 한다는 데엔 근거가 없다. 일단 대한민국의 연간 노동 시간은 2023년 기준 OECD 회원국 평균보다 155시간 더 길다. 2023년 기준 OECD 회원국 5위에 달하는 긴 노동 시간을 보유한 국가로, 주당 4시간을 더 줄여야 그나마 평균치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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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국제노총)


뿐만 아니라 한국은 세계 노동권 지수에서 2014년 이래 10년 연속 최하위 등급인 5등급을 기록하고 있다. 이런데 여기서 얼마나 더 노동자의 권리를 박살 내야 만족할 것인가? 민생이 나아지지 않는데 반도체는 무슨 반도체인가. 국가첨단전략산업 이딴 게 다 무슨 소용이냔 말이다. 애초에 R&D 예산을 삭감한 것도 윗대가리들 짓이 아니었던가?


나는 정말이지, 반도체의 'ㅂ'만 들어도 치가 떨린다. 자꾸 대한민국을 먹여 살린 게 반도체라고들 하는데, 틀렸다. 대한민국을 먹여 살린 건 농민이지, 반도체가 아니다. 우리는 단 한 순간도 반도체를 씹어먹고 산 적이 없다.


그런데 이번 정부는 식량 소중한 줄도 모르고 양곡법을 거부했다. 설날이라고 연휴에 쫀득쫀득하게 떡국을 드셨던데, 이럴 거면 먹은 걸 다 토해 내라고 하고 싶을 지경이다. 본인의 배로 들어가는 식량이, 지갑에서 나온다고 굳게 믿는 사람들이 이상하다. 식량은 지갑이 아니라 땅에서 나오며, 반도체는 서민의 지갑마저도 부풀려 줄 수 없다.


그런 허황된 기술발전에 인간의 삶과 건강을 갈아 넣을 생각부터 하고 있으니 심히 염려스러운 사태가 아닐 수 없다. 내가 어떤 마음으로 레미제라블을 들었는데. 다시는 노예가 되지 않으리라는 다짐의 노래를 들은 지 얼마나 지났다고, 인간을 노동 기계 취급하는 법을 개정하네 마네 할 줄이야.


제발 착각하지 않았으면 한다. 인간은 무언가를 생산하기 위해 태어나지 않았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행성은, 더 많은 것을 더 빠르게 생산하기 위한 공장이 아니다. 기술혁신을 하면, 국가 경쟁력이 올라간다는 말은 그저 노동자를 굴려 제 이익을 불리기 바쁜 인간들의 프로파간다에 불과하다. 국가 경쟁력이 올라가면, 당장 서민들이 체감할 수 있는 혜택이라도 있는가? 나라에 돈이 많아진다고 한들, 전국민에게 기본 소득을 줄 것도 아니면서 말이다.


무턱대고 더 일해야 한다면서 사람을 채찍질하기 전에, "왜" 해야 하는지부터 생각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고도화된 첨단기술 발전은, 사실 해야할 필요가 정말 하나도 없다. 기술이 어느정도 지점까지는 인간에게 봉사하지만, 그 임계점을 넘어가면 그저 기술 권력을 쥐고 있는 자본가와 엘리트에게 봉사한다. 인간을 말려죽이는 기술은 존재할 가치가 없다. 뼈 빠지게 돈만 벌다 죽고 싶은 인간은 아무도 없다. 살기 위해 일하는 수준을 이미 넘어섰는데도 살기 위해 주 40시간, 52시간을 넘어 일해야 한다니. 이건 부조리하다. 이렇게까지 노동하는 삶은 결코 삶이라고 부를 수 없다.


우리는 더 많은 돈을 찾아 일할 것이 아니라, 돈에서부터 완전히 해방되어야 한다. 돈 없이도 누구나 자유롭게 살 수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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