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브콜스와이낫
책을 꼭 내고 싶어
내가 장편소설을 쓸 수 있을까? 싶었는데 벌써 올해 1월부터 2달동안 쓴 소설 분량만 원고지 1370매에 달한다... 그런데도 원고의 질이 그렇게 떨어지는 것 같진 않아서 올해야말로 용기내서 장편 공모에 도전해 보기로 했다. 목표는 하반기에 있을 장르 소설 공모전에 투고하는 것이다.
물론 공모전에 당선되어 선인세도 받고 출판사 지원도 받게 되면 좋겠지만, 요즘은 읽어주는 사람만 있다면 책을 낼 수 있다. 자유롭게 글을 올리고 연락을 받을 수 있도록 매칭 시스템을 제공해 주거나 자가 출판도 가능한 플랫폼이 존재하므로 낙방했다고 낙심할 필요는 없다.
낙방했다는 건 실력이 부족해서만은 아니라 운이 없어서, 혹은 출판사나 공모전의 색깔과 맞지 않아서 그럴 확률도 있다. 인생은 어디에서나 운이 크게 작용한다.
책을 정말 내고 싶다면 어디든 (정말 SNS든 개인 블로그나 홈페이지든, 브런치든... ) 글을 올리고 꾸준히 독자를 모아서 팬층을 만들어 텀블벅으로 펀딩받거나 부크크로 자가 출판하는 방법도 있다.
이걸 출판이라 해도 되나 싶긴 한데 아무튼 그렇다.
종이책을 찍게 되면 돈이 많이 들기 때문에 피차 부담이 적은 ebook 파일로 판매하는 방법도 있다.
sigil 프로그램 사용하여 이펍을 직접 만들면 돈이 들지 않는다. 나와 독자만 있으면 가능한 방법이다.
이 경우 그냥 이펍 파일을 유료 포스팅이 가능한 플랫폼에 유료 걸고 업로드하면 된다.
혹은 부크크 사이트를 통해서 자가출판을 진행할 수도 있다. 요즘은 홍보가 중요한 세상이므로 소설이든 에세이든 혼자 써서 혼자 보고 혼자 투고해서 혼자 출판하고 누군가 읽어주기를 기다리는 것보다, 원고가 있다면 일단 브런치든 브릿G든 어디든 떠벌려 놓고 책을 파는 것이 좋다고 본다.
다양한 소설 투고 플랫폼(혹은 깔끔한 블로그 플랫폼 등)에서 무료연재 후 독자를 모은 뒤 원고를 완결해 출간하면 따라오는 독자가 있을 것이다.
물론 연재 도중 컨택이나 계약을 따면 좋겠지만 안 따거나 못 따도 그만이다. 부크크에서 자가출판하고 공지 때리면 된다. 책을 냈습니다. 본 작품은 언제까지만 공개합니다.
그럼 뭐 계속 읽고 싶은 사람은 살 것이다.
중요한 것은 독자다. 아무리 책을 냈어도 독자가 있어야 작가다. 반대로 말하면 책은 없어도 독자가 있으면 작가다. 책도 있고 독자도 있으면 금상첨화다.
내가 생각하기에 성인물/전연령가 등 연령가 여부도 자유롭게 지정할 수 있고, 편당 유/무료 여부도 자유롭게 지정할 수 있고, 공개 설정도 자유롭게 지정할 수 있고, 이런저런 복잡한 정책이 없어 상당히 자유도가 높은 플랫폼은 포스타입 이다. 글을 사 주는 독자만 있으면 바로바로 수익화도 가능하다.
누구나 할 수 있다는 희망
나는 지금 웹소설을 연재하고 있는데, 무료 연재로 글을 쓰고 있다 보면 상당히 막막하게 느껴지는 순간이 거의 매일 매분 매초 찾아온다. 이 글을 쓰고 있는 게 시간 낭비가 되지는 않을까 하는 생각 때문이다. 다시 말하면 써 봤자 계약도 못 따내고 완결까지 냈어도 아무 성과 없이 졸작으로 남을까 걱정되어서 그렇다. 그러나 원고만 있다면 누구나 책을 낼 수 있는 시스템에서는 얘기가 다르다. 일단 원고를 써서 무료 연재라도 마친 후에 자가 출판이라도 할 수 있다면 뭐든 남는다. 이 숨구멍이 있고 없고의 차이가 크다. 글을 대하는 마음도 상당히 홀가분해진다.
진입장벽이 낮은 경로가 있으면 아무래도 뭐든 꾸준히 해 볼 동력이 조금 생긴다. '이렇게 열심히 썼는데 아무 성과도 없으면 어떡하지'하는 생각과 뚝뚝 떨어지는 연재 지표를 보고 있으면 글 때려치울까 이런 생각 오지게 든다. 그렇지만 남이 알아봐 주지 않더라도 그냥 출판해 버릴 수 있는 경로가 있다면, 원고를 끝까지 붙잡고 있을 힘이 생긴다. 까짓거 라이브로 달려 주는 독자가 없거나 적더라도, 계약을 못 따내더라도 내가 출판해 버리면 그만이라고 생각하는 순간 마음이 좀 가벼워진다.
예전엔 "누구나" 할 수 있다는 점이 상당히 아니꼬웠는데, (어떤 것들은 전문적, 배타적 영역으로 두어야 할 것들이 있다고 생각했다. 그렇지 않으면 전체 풀이 하향평준화되므로...) 지금은 "누구나" 할 수 있다는 점이 굉장히 희망적으로 느껴진다. 일단 그 "누구나"에 나도 포함된다는 점에서 상당한 안정감을 느낀다. 그리고 무엇보다 재능은 제로섬 게임이 아니고, 기회는 언제나 재능의 수보다 부족하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런 자가 출판 시스템은, 혹은 누구나 원고를 올리고 작가로 데뷔할 수 있는 시스템은 내게 있어 단비처럼 느껴진다. 꼭 nnnn:1의 경쟁률을 뚫고 주목받는 단 한 사람이 되지 않아도 괜찮다는 생각이, 나의 숨통을 트이게 해준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말처럼 글을 쓰는 사람은 자유로워야 한다. 자유롭다는 것은 글쓰기로 인해서 괴로움을 느끼지 않아야 한다는 의미와도 일맥상통한다. 반드시 계약을 따내고, 베스트 작품에 들어서 메인에 오르고, 문학상이나 공모전에 당선되어야만 한다는 압박감에 시달린다면 집필에 집중할 수 없을 것이다. 가벼운 마음으로 책을 낼 수 있다면 오히려 즐겁게 글을 쓸 수 있지 않을까. 정말로 내가 원하는 색의 글을 써낼 수 있지 않을까.
좋은 글이 더 많아지려면
대중의 교양 수준(문해력, 독해력, 문장력, 맞춤법, 사고의 깊이 등)이 하향평준화되어 있는 것은 내가 봤을땐 사회 구조적 문제다.
천천히 시간을 들여야만 교양이 쌓이는 데에 반해 현대 사회는 우리에게 그럴 시간을 쉬이 허락하지 않는다. 우리는 지나치게 많이 노동한다. 동시에 릴스 숏츠 파편화된 정크한 매체 등 스트레스를 도리어 활성화하는 불필요한 디지털 자극제들이 넘쳐난다.
또한 대한민국의 교육은 기성이 정해 둔 정답을 답습하는 주입식 교육이다. 로봇과 순종적 노예를 길러내는 교육이다. 스스로 비판하고 사고하는 능력, 진실을 보는 능력대신 극우주의를 기르고 이기주의를 기르고 남이 원하는 정답을 말하는 모범생을 기르는 게 한국 교육이다. 이딴 건 교육이 아니라 인간성 몰살이다. 덕분에 아무리 똑똑한 사회구성원이라 해도 자본주의 교리만 앵무새처럼 떠들어대는 인간으로밖에 자라지 못한다. 돈, 경쟁, 각자도생, 약육강식이 세상의 진리요 이치이며 전부인 줄 안다. 그런 사람들만 가득한 사회는 사람들의 보편적 정신이 날로 날로 천박해진다.
복잡한 업무와 일과 기계와 체제들이 많아질수록 우리는 사회가 무엇으로부터 시작되는지, 사회를 구성하고 있는 것들이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알 수 없어진다. 그냥 먹고 마시고 소비하고 폐기하는 일차원적인 인간으로 변모한다.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속 돼지같은 존재가 된다. 인간이란 사실 참 멍청해서 눈앞에 보이는 게 전부라고 믿는다.
거대한 체제와 복잡한 시스템은 그렇게 진실을 은폐한다. 자본주의 사회와 고도의 편리한 삶이 사실은 착취의 연쇄고리로 가능하다는 진실을 말이다. 독일의 교육은 이 진실을 보는 법을 가르치는 반면, 한국의 교육과 한국 사회는 이 진실을 외면하는 법을 가르친다. 생애의 모든 것이 임금활동에만 치중되어 있는 한국에선 더 비싼 피착취자가 되어(고연봉) 더 비싼 착취(소비수준증가)를 하는 인간이 되는 법을 가르친다. 그래서 세상을 복잡하게 사는 대신, 단순하게 살았으면 좋겠다. 하루에 그리고 일생에 지나치게 많은 것을 소화해야 하는 과잉의 삶은 인간으로부터 철학적 고찰을 박탈해 간다. 좋은 생각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 시간에서 나온다.
말이 잠시 다른 길로 샜는데, 나는 이렇게 "누구나" 원하는 것을 할 수 있도록 모두에게 기회를 주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 전체적인 수준이 하향평준화 되는 것을 막으려면 다시 "누구나" 본인의 잠재력과 재능을 충분하 갈고닦아 수준을 높일 수 있도록 장치를 마련하면 된다. 질 높은 작품과 심도 있는 평론, 토론이 증가하면 할수록 세상은 질적으로 풍요로워진다.
잘하는 사람만 해, 하고 막아놓을 것이 아니라 누구든지 잘할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한다. 그렇게 되면 결과적으로 파이의 크기도 키우고 퀄리티도 높일 수 있으므로 유입이 많다 해서 개나 소나 들어와 흙탕물되는 정크한 시장으로 변질되지 않을 것이다.
타인의 재능을 짓밟고 언제나 나만이 최고가 되어야 한다는 경쟁 이데올로기는 자본주의가 심어놓은 세뇌에 불과하다. 이건 진리가 아니며, 나와 타인의 마음 모두를 괴롭게 할 뿐이다. 다같이 양질의 글을 읽고, 쓸 수 있으며 깊이 생각하고 통찰하여 토론할 수 있게 된다면 우리 사회가 얼마나 건전한 사회로 나아갈 수 있겠는가. 적어도 디지털 정크나 소비하며 뇌를 썩히는 구성원들로 가득한 사회보다 훨씬 바람직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