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이 나가라고 등 떠밂
0.
이직했다.
다시는 내 생에 출퇴근 따위 없을 거라던 다짐대로, 출퇴근 지옥철을 타지 않아도 되는 곳으로 직장을 옮겼다. 일은 적당히 널널했고, 이전 직장과 달리 아무도 나를 감시하지 않았으며 앉고 싶을 땐 앉고, 서 있고 싶을 땐 서 있을 수 있는 최고의 환경을 갖춘 곳이다. 근처엔 바다도 있으며 업장 부대 시설도 이용할 수 있었다. 일도 어렵지 않아서 적응하는 데엔 오래 걸리지 않았다. 하루종일 모니터를 눈 빠지게 들여다 봐야 하는 일이 아니라 눈 건강도 지킬 수 있었다. 도보 거리에 기숙사가 있어 출퇴근 지옥철에 버리는 시간도 없고, 구내 식당은 한식뷔페로 나름대로 다양한 채소와 나물 반찬이 나오는 편이라 만족도도 나쁘지 않았다.
그러나 문제가 하나 있었다. 일하는 사람에 대한 존중이 없는 것 같다는 생각이 자꾸만 들었다. 인력을 최소한으로 굴리려 하는 게 눈에 훤히 보일 정도였고, 계약에 없는 근무 내용까지 즉흥적으로 추가되곤 했다. 강압적으로 다른 부서의 일까지 도우라며 말하는 상사가 있었고, 어처구니 없는 이유로 사람을 쉽게 잘랐다. 정직원인 것 같은데, 다달이 쪼개서 계약서를 쓴다는 게 영 찜찜했다. 쉽게 자르고 싶어하는 게 너무 티가 났다. 심지어 나는 입사한 지 며칠이나 지났는데 근로계약서도 쓰지 않았다. 곧 월급날인데, 이래도 되는 건가. 체계가 너무 없다는 생각에 이런 곳에서 일 해도 괜찮은 건가 싶은 걱정이 들었다.
비건을 하며 글을 쓰기에는 최적의 환경이긴 했다. 회식도 없고, 구내식당은 한식 뷔페. 기숙사가 있어 시간을 세이브할 수 있는 점. 공짜 야근 없음. 한가할 땐 매우 한가함 등등. 그러나 부서 내 상황이 너무 즉흥적으로 변한다는 데에서 안심할 수가 없었다. 사람들은 몇 달 일하고 줄퇴사하는 분위기였다. 자리에 없는 직원 욕을 하거나, (심지어 면대면으로 병신이라는 둥 씨발이라는 둥 노골적인 욕을 듣는 직원들도 있었다) 삿대질을 하는 등 군대식 문화가 만연해 있었다.
1.
이런 환경을 보면서 나는 일본 워홀의 기억을 떠올렸다. 그 때는 말귀 안 통하는 꼰대 매니저가 있긴 했어도 같이 일 하는 사람들이 모두 나를 존중해 준다는 생각이 들었다. 모르는 부서의 모르는 직원이 혼자 팝업스토어를 정리하다 다쳐도, 찬 물과 얼음을 가져다 주며 진정될 때까지 그 자리에 삼십 분 넘게 곁에 있어 주는 사람들이 있었다. 다친 직원에게 조기 퇴근을 권했고, 휴게실에 누워 있으라며 간식거리를 가져다 주는 분들도 계셨다.
신입으로 들어가 처음 일주일은 거의 하는 일도 없이 멀뚱멀뚱 보기만 했는데, 그만큼 무리해서 일을 시키려고 하지도 않았다. 큰 호텔이어서 그랬는지는 몰라도 매일 무엇을 배워야 하는지 매뉴얼이 정해져 있었다. 그 이상을 요구하지 않았다. 일주일 동안 매장이 이렇게 바쁜데 일손 하나 보태지 못해 자괴감이 들었는데, 일본은 원래 그런 곳이었다. 내가 일을 잘 모르고, 못한다고 해서 미안해 할 필요가 없었다. (한국식 마인드에 찌든 나는 -심지어 알바 첫 출근날부터 일을 주도적으로 안 한다고 잘린 기억도 있었다;;; 뭘 알고 내가 주도적으로 하는데;;- 그런 줄도 몰랐다.)
한국에선 회사는 학교가 아니니 취업을 하려면 그 전에 공부를 다 하고 들어오라는 식이라면, (취업을 위해 포폴을 공부하고 실무를 공부해야한다. 게임 업계 취업 준비를 하면서 내가 왜 이 돈을 들여가면서 이렇게 힘들게 포폴을 깎아 겨우 취업을 해야하나 싶었다. 그렇게 힘들게 입사해도 사무직은 결국 나한테 남는 실질적인 기술이 없다. 그냥 죽어라 회사의 부품으로 쓰이다가 나이 들면 버려진다.) 일본에선 당연히 미경험자를 가르쳐 일을 시키겠다는 마인드가 강하다.
이전엔 초봉을 비교하며 일본의 급여가 지나치게 박봉인 게 아니냐고 생각했는데, 일본은 대학교를 필수로 졸업하는 분위기도 아니었고, (물론 대졸자는 급여를 더 주긴 한다) 한국보다 취업이 몇 년 더 빠르다고 한다. 실질적으로 동일 연령대로 놓고 비교하면 받는 연봉은 비슷해지니 몇 년 더 빨리 벌기 시작하는 일본 쪽이 모이는 돈은 더 많단다. (실제로는 어떤지 살아보진 않아서 모르겠다.) 게다가 구인 조건을 보면 연 2회 상여금이 있고, 연 1회 승진이 있다.
실제로 지내본 결과 식료품을 벌크로 구매하기 어렵다는 점에서 식비가 꽤 비싸다는 느낌이긴 했지만, 그 외 공산품은 모두 일본쪽이 매우 저렴했다. 탄산수나 커피가 천 원, 선크림과 클렌징폼이 오천원... 세상이 다이소다...
일본을 무작정 올려치고 싶은 마음은 없다. 관료제로 인해 근무유연성이 적은 편이고, 잔업도 만연한 편이다. 그러나 근무지에서 느꼈던 개인에 대한 인격적 존중 하나는 확실히 배울 점이었다. 겉으로 보이는 것만 친절하다고 욕할 게 아니었다. 겉으로라도 친절해서 서로 상처주지 않는다면 오히려 나은 거 아닌가. 신입 교육에 대한 의지, 따뜻한 사람들이 생각 나 결국 일본 호텔에 이력서를 넣었다.
2.
그런데 문제는 역시나 먹거리였다. 최근 일본의 엔화도 오르는 추세였고, (무려 작년 워홀 출국할 때보다 100원이나 올랐다.) 쌀값도 2~3배로 폭등해서 굶어 죽을 것이 두려울 지경이었다. 한국의 네이버 쇼핑처럼 저렴하게 농산물 직거래를 할 수 있는 인터넷 쇼핑몰 플랫폼도 활성화되어 있지 않은 것 같았고 (아시는 분들 정보 공유 부탁드립니다.) 과일을 저렴하게 사다 먹을 수 있는 곳도 찾기 쉽지 않았다. 비건으로서 주곡을 많이 섭취하기에도, 다양한 채소 요리를 먹기에도 어려움이 있었다.
그러다 문득 호주가 떠올랐다. 호주에서의 생활은 어떤지 궁금해 온갖 호주 쇼핑몰을 뒤졌다. 호주의 식료품 물가는 놀랍도록 저렴했다.
https://www.fruitforall.com.au/product/potato-red-10kg-bag/
https://baxters.myfoodlink.com/lines/potatoes-10kg
일단 농산물의 종류가 다양하다. 여러 품종의 감자를 구매할 수 있고 10kg에 12~19 호주달러 (10000~17000원) 정도밖에 하지 않는다.
쌀도 장립종부터 중립종, 단립종, 야생현미, 흑미, 녹미... 여러 품종의 농산물을 인터넷으로 쉽게 구매할 수 있었다. 호주의 최저 시급은 약 21000원으로 누구나 아는 것처럼 꽤 높은 편이고, 집세가 어마어마하게 비싸다고는 해도 20시간만 아르바이트를 뛰어도 255만원을 벌 수 있었다.
일본 말고 호주를 갈까, 싶은 고민이 들기 시작했다.
3.
그러나 호주는 너무 멀었다. 일단 집에 오고 싶을 때 언제든 올 수 있는 거리가 아니었고, 타지에서 혼자 아프게 될 경우 배는 서러울 것 같았다. 파워 J인 나는 안전하게 지낼 곳과 일할 곳을 모두 마련해 두고 출국하고 싶었는데 (일단 부딪혀보는 게 무섭다.) 그러기도 쉽지 않은 것 같았다. 출국 후에 일자리도, 거처도 구하지 못하게 될 경우 어떻게 되는 거지? 국제 노숙자가 되는 것은 사양이었다.
반면 일본은 한국에서 기숙사가 있는 일자리를 내정받고 출국하는 게 그다지 어렵지 않았다. 나는 처음이 쉽고 이후가 어려운 선택을 할 것인지, 처음이 막막하지만 이후는 조금 더 편할 것 같은 선택을 할 것인지의 기로에서 망설이고 있다.
그리고 사실 내가 제일 원하는 건
떠나지 않고 한국에 남아 있는 것이다.
나는 한국이 좋다. 모험이나 도전에 설레어 하지만서도 돌발상황에 부딪히는 걸 별로 좋아하지 않는 안정 추구파인 나는, 익숙한 환경 속에 있는 것이 아무래도 편하다. 무엇보다 비건을 하기에 (아직 인식은 구리지만) 한국 땅은 천국이다. 맛있는 나물 반찬을 다양하게 만들어 먹을 수 있고, 비록 사라져가고는 있을지언정 사계절마다 나오는 다양한 농산물 종류도 나를 즐겁게 해준다. 현미를 구하는 것도 어렵지 않고, 10kg 벌크 단위로 농산물을 구입하는 것도 어렵지 않다. 재료가 간소한 통밀빵도 손쉽게 구할 수 있으며 외식만 아니라면 한국에서 비건을 실천하는 데에 어려움따위... 존재하지 않았다.
한국은 무엇보다 방사능에 피폭된 땅도 없고, 지진대나 화산대에 속하지도 않으며, 벌레 크기도 친절할 정도로 자그맣다. (호주 거미보고 기겁했다.) 단군 할아버지가 땅따먹기에서 영역 확보는 실패했을지언정, 겨울과 여름, 산과 바다가 모두 있는 알짜배기 땅을 잘 고르셨다.
한국 땅이 나에게 주는 것은 너무나도 좋았지만, 정작 그 안을 구성하고 있는 사람들이 넌덜머리나도록 싫었다. 사람들이라고 해야할지, 그들의 정신이라고 해야할지. 지나친 경쟁에 매몰되어 있고, 남과 비교하며 우열을 가리고 서열을 세우는 한국인 특유의 정신병도 싫었다. 이 천혜의 자연을 물려받고도 사람들은 환경을 오염시키기 바빴다. 회사는 사축이라는 말을 서슴없이 쓸 정도로 인간을 귀하게 여길 줄을 몰랐으며, 한국에서 노동자로 산다는 건 그야말로 노예같은 삶이나 다름없었다. 뇌가 썩을 것 같은 미디어나 소비하며 천박한 콘텐츠나 양산하는 k-어쩌구도 다 환멸났다.
나는 내 20대 청춘을, 노예 수용소 같은 직장에 내다 버리고 싶지 않았다. 미세먼지 가득한 희뿌연 공기도 마시고 싶지 않았고 인간답게, 나답게 살고 싶었다. 그러나 지금 다니는 직장은 고용 안정성을 보장해 주지도 않았고, 좁아터진 방을 2인실로 쓰게 될 언젠가의 미래도 두려웠으며, 이렇게 여유로운 직장에서 그만 두고 나면 다시는 다른 곳에서 적응하지 못할 것 같았다. 분명 가축 같은 삶에 고통받으며 정신병으로 매일 울겠지...
한국의 식생이 좋은데도, 자연식물식을 고집하기 어려울까 겁이 나는데도, 비싼 식비나 집세를 감당해야할지 모르는데도 자꾸 해외로 나가고 싶은건 악랄한 노동환경에서 벗어나고 싶기 때문이다.
https://brunch.co.kr/@dailyphilosophy/109
지난 글에서도 밝혔듯 한국은 노동자의 권리 침해를 빈번하게 일으키는 것도 모자라 인간을 아주 걸레 쥐어짜듯 하기에 여념이 없다. 이런 나라에서 누가 미쳤다고 일 하고 싶어할까. 다시 한번 말하지만 나는 나의 젊음을 일에 바치며 자유 없이 살고 싶지 않다. 그럴 마음이 추호도 없다.
한국은 인적 자원(이라는 말도 역겹긴 하다만) 밖에 없으면서, 정작 그 인간마저도 귀하게 여기지 않는다. 도대체 뭘 어쩌고 싶은 걸까? 언제까지 사람들이 이 불합리한 채찍질을 얌전히 맞아주고 있을 거라 생각하는 건지 모르겠다. 게다가 기술직이나 서비스직은 제대로 된 직장으로 인정받지도 못하며, 가정주부는 무가치한 인간으로 여기는 데다 오로지 사무직만이 천하 제일의 직업이라고 여기는 풍조도 만연하다. 그 사무직 인간들은 정작 기술직이나 서비스직 인력, 돌봄 노동 없이는 하루도 살지 못할 텐데 말이다.
아무튼 나는 보다 자유롭게 살기 위해 또 다시 떠날 궁리를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