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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4일제보다 시급한 것

모두가 사람답게 살기위해

by 윤슬

윤석열 정권이 탄핵되고, 또다시 조기 대선 날짜가 잡혔다. 10년도 채 되지 않아 다시 맞는 조기 대선이다. 날짜는 6/3일. 결전의 날을 앞두고 대선 후보 출마 선언과 공약들이 여기저기서 튀어 나오고 있다.




주목할 만한 주 4일제 공약

눈에 띄는 것은 주 4일제 공약이었다.

드디어 한국 사람들이 과로에 시달린다는 것을 인지했는지, 국민들의 인간다운 삶을 위한다며 무려 보수당인 민주당에서 나온 공약이다. (명확히 하자. 국민의 힘은 정상적 보수 정당이 아니라 극우정당이다.)


생각해 보면 주5일제에 40시간 노동도 거진 인간 학대에 가까운 과도한 노동이다. 우선 하루 8시간 근무한다고 했을 때, 직장에서 보내는 시간만 식사를 포함해 9시간이다. 출퇴근 시간도 최소 각각 1시간씩, 왕복 2시간은 잡아야 한다. 심한 경우 왕복 3~4시간을 잡아야 하는 경우도 있다. 못해도 11시간은 집 밖에서 시간을 보내야 한다. 그러나 출퇴근이라는 게 그냥 집에서 편하게 뒹굴다 밖으로 나서기만 하면 되는 것이 아니다. 씻고, 옷을 갈아입고, 필요한 것들을 챙기고, 식사까지 하면 또 1시간 가까이 소모된다. 여기까지만 해도 벌써 하루 중 12시간, 즉 절반은 업무와 업무 준비로 시간을 날려야 하는 것이다.

나머지 12시간 중 6~8시간은 수면시간이라고 하면, 온전히 나에게 쓸 수 있는 시간은 겨우 4~6시간 밖에 되지 않는다. 그러나 육체 노동이든, 정신 노동이든, 감정 노동이든 하루에 8시간 씩 시달리다 돌아오면 그 나머지 4~6시간 동안 나를 위한 활동에 투자하기란 어렵다. 스스로에게 제대로 된 돌봄 노동을 수행할 기력도 없고, 그럴 의욕도 남아 있지 않을 때가 대부분이다. 결국 집밥을 해 먹는 대신 배달 음식을 주문하고, 청소를 하는 대신 로봇 청소기를 가동한다. 먹고 살기 위해 일하지만, 정작 먹고 사는 데에 쓸 시간도, 에너지도 없다.



그런 점을 보완하고자 주4일제로의 이행이 대두되고 있다. 확실히, 5일 동안 기게처럼 일만 하다 이틀간은 시체처럼 몸져 눕는 생활에서 벗어날 수만 있다면 천국이 따로 없을 것이다. 근로 환경이 한국보다 낫다는 호주나 캐나다도 아직까진 주5일제에 머물러 있는 실정인데, 만약 한국에서 주 4일제를 시행하게 된다면 극악의 노동 환경이 만든 노동 후진국 악명에서 벗어나 노동 선진국이 될 수 있을까.




주 4일제가 유효하려면

주 4일제가 한국에서 유의미한 효과를 내려면, 무턱대고 시행해선 안 될 것이다. 정말로 노동자 인권 증진이라는 목표를 달성하고자 한다면 주 4일제를 시행한 의미가 있도록 법적 제도와 공공 복지의 뒷받침이 우선 마련되어야 한다. 그렇지 않을 경우 한국에서 주 4일제를 시행했다가 일어날 수 있는 시나리오는 다음과 같다.


-사무직만이 주 4일제의 혜택을 본다.

-실질적으로 주 4일 근무가 지켜지는 곳은 대기업 뿐이고, 그마저도 나머지 하루 분에 대한 업무량을 나흘간 몰아서 처리하게 만들 확률이 높다. 자칫하다 9to9, 8to10등 과로-번아웃의 패턴으로 주 4일제가 시행될 가능성도 무시할 수 없다.

-중소기업(이라 ㅆ고 ㅈ소기업이라 읽는다)의 경우 기본급은 160, 170 언저리로 후려친 뒤 이런 저런 수당을 붙여 결국 200만원 초반대에 포괄임금제로 주 5일 근무를 시킬지도 모른다. (기본급 180에 식대 20, 추가 근로 수당 30만원 붙여 공짜 야근을 시키던 회사를 경험한 적이 있다.)

-서비스직은 매일 영업해야 한다는 이유로 근로 시간 단축의 혜택을 누리지 못할 수 있다.

-생산직은 매일 생산해야 한다는 이유로 근로 시간 단축의 혜택을 누리지 못할 수 있다.

-주 4일제로 여가가 늘어날 경우, 유흥 및 물품 소비가 덩달아 증가해 서비스직이 더 바빠질지 모르나 인건비를 삭감하겠다는 명목으로 추가 인원을 더 뽑는 대신 여전히 주 5~6일 근무할 확률이 높다.




이런 일을 방지하기 위해서는 주 4일제 도입 이전, 현실적으로 노동 시간을 단축하고 노동자가 보다 인간다운 살을 누릴 수 있도록 추가적인 제도를 마련해야 한다.


예컨대 포괄임금제 폐지, 주당 법정 근로 시간 32시간으로 규제 등 근로 시간을 실질적으로 줄일 수 있으면서, 부당한 공짜 노동을 하지 않도록 해야 할 것이다.


또한 급여가 줄어들어도 생활에 문제가 없도록 공공 복지가 확대되어야 한다. 돈을 쓰지 않고도 여가를 보낼 수 있는 시설이 많아져야 한다. 기후 위기에 대응할 수 있도록 공원이나 도시 텃밭 등이 확대되면 더욱 좋을 것이다. 카페나 외식을 하지 않고도 가족들, 친구들과 시간을 보낼 수 있어야 한다.


더 많은 여가는 더 많은 돌봄과 가치 있는 재생산 시간으로 이어져야 한다. 이를 테면 그 동안 하지 못했던 취미생활, 도서관에서 독서, 배우고 싶었던 것 배우기 등등. 단순히 유흥과 오락, 소비, 여행 등으로 소비 증대와 지출 증가로 이어질 뿐이라면 결국 돈에 예속된 삶을 살아야 할 뿐더러 오히려 서비스 노동자의 근로 시간 단축에도 도움이 되지 못한다.




주 4일제보다 바라는 것

사실 나는 주 4일제보다도 하루 노동 시간을 10to4 정도로 단축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직장에서 보내는 시간은 일일 6시간 정도가 적당하다고 본다. 아니면 아예 아침 7시부터 시작해 1시에 끝나는 것도 괜찮다. (직장이 바로 코앞에 있거나 기숙사가 제공될 경우에 한해서다.) 매일매일 인간다운 삶을 누릴 수 있어야 한다. 출근하는 날이 괴롭지 않아야 한다. 노동자가 아니라 인간으로 존재할 수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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